[아주초대석] 권재한 농진청장 "농업분야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 육종에 달려"

2024-10-10 06:00
금사과·금배추 먹거리 수급불안 해마다 반복
신품종 개발에 빅데이터·AI 활용…유전자원 보호 '4중 안전장치'
아프리카에 우리쌀 재배기술 전수…'K-농업' 글로벌 주목

권재한 농촌진흥청장이 8일 전주 본청 집무실에서 아주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사진=농진청]
기후 변화로 폭염, 혹한, 폭우와 같은 기상 이변이 잦아지면서 우리 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올초 금(金)사과 사태에 이어 최근 김장철을 앞두고 가격이 폭등한 배추와 같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농작물의 수급 불안은 기후 변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우리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은 기상 환경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다른 산업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농업기술 발전을 이끄는 농촌진흥청의 수장 권재한 청장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농업 분야 기술개발 과제로 △예측 △적응 △피해경감 △온실가스 감축을 꼽았다. 기후 변화로 달라지는 각 농작물의 재배 환경을 예측하면서 이에 적응하는 품종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또 기상 이변을 미리 예측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기후 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농업분야 기술 개발에도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8일 전주 농진청 본청에서 아주경제신문과 만난 권 청장은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우리 농업 기술이 청년농 육성, 밭농업 기계화, 스마트 농업, 푸드테크, 그린 바이오, 디지털 육종 등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농업을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가·소비자 등 정책 고객의 복잡하고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각 분야별 세분화된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여러 추진 전략 중 그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디지털 육종'이다. '육종'은 새로운 품종 개발을 위해 작물에서 특정한 형질을 선별하는 기술을 뜻한다. 농진청은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 인공지능(AI)과 같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인력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를 위해 슈퍼컴퓨터 등을 활용, 식물의 유전체·표현체 정보 등을 빅데이터 기반의 딥러닝 AI를 활용해 분석하는 기술이 현재 개발 단계에 있다. 이 기술은 각 품종의 개체가 갖고 있는 유전적 특성을 파악해 재배환경에 맞는 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신젠타, 바이엘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앞서 있는 분야다. 

디지털 육종은 대량으로 분석된 유전체 데이터와 표현체 데이터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농진청은 2017년부터 스마트온실에 가시광, 근적외선, 형광을 구분하는 센서와 컨베이어 시설, 로보틱 자동화 장비 등을 갖춘 표현체 연구동을 가동 중이다. 

표현체 연구동에서 확보한 각종 자료는 농진청이 보유한 슈퍼컴퓨터에 의해 처리된다. 농진청은 지난해 9월 기상청으로부터 관리전환 받은 슈퍼컴퓨터 2호기를 들여와 총사업비 148억원을 투입해 슈퍼컴퓨팅센터를 준공했다. 슈퍼컴퓨터의 빠른 처리 속도 덕에 일반 서버 컴퓨터가 2년이 넘게 걸리는 분석 작업을 2주 정도로 단축하며 디지털 육종 기술 개발을 앞당길 수 있었다. 

권 청장은 "디지털 육종에 활용 가능한 양질의 빅데이터를 생산,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를 민간 수요자가 공동 활용하도록 데이터 공유·개방, 서비스 제공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8만개 식품 유전자원 보유…세계 5위 수준
디지털 육종 기술 개발 과정에서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만큼 중요한 것이 원천 재료가 되는 식물 유전자원이다. 신품종 개발을 위해 높은 수량성과 품질을 갖춘 유전자원이 아버지(부본)와 어머니(모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전쟁, 천재지변 등으로 세계 각국이 보유한 유전자원이 소실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식물유전자원센터가 러시아의 포격 피해를 입은 것과 2006년 필리핀 국립종자은행이 태풍 두리안 피해로 모든 종자가 완전 소실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외 협력을 통해 세계 5위 수준인 28만 자원의 식물 유전자원을 보유한 농진청은 국가 재난 상황을 대비해 4중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국내 전주와 수원, 봉화에 유전자원을 분산·중복 보존하고 핵전쟁에도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도 4만여 자원을 보존 중이다. 

이밖에 해외로 반출된 한반도 원산 토종 식물자원에 대한 지속적인 반환 요구에도 앞장서고 있다. 2007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일본, 러시아로부터 8911개 유전자원을 되돌려 받았으며 2025년까지 16개국, 1240자원에 대한 반환을 추진 중이다. 

권 청장은 "유전자원에 원하는 유용한 형질이 없으면 교배를 해도 원하는 좋은 형질을 얻기 어렵다"며 "국외의 여러 유전자원을 도입하고 확보해 잘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최초 농림위성 발사…실시간 작황·재해 감시
권 청장은 디지털 육종 기술 개발과 유전자원 보호를 강화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기후 변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배추값이 폭등하고 벼멸구가 확산되는 등 농업 환경이 해마다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사전에 예측하고 피해를 줄이면서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하는 품종을 개발하는 과제가 요구되고 있다.

농진청은 이 같은 기후 변화가 수십년간 진행될 경우 농업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50년까지 지금의 속도로 기후가 바뀔 때 고랭지 배추를 어느 지역까지 재배할 수 있는지 예측해 각 작물별 최적의 재배지를 찾겠다는 복안이다. 

또 고온에 잘 견디는 배추, 더위에도 빨갛게 잘 익는 사과와 같은 품종을 개발하고 애플망고와 같은 아열대 작물의 재배 기술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갑자기 발생하는 기상 이변에 대처하기 위해 지번 단위로 현재 기상재해 정보를 제공하는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서비스’도 고도화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최초의 농림 인공위성도 띄운다. 농림위성은 농·산림 상황 관측, 홍수·가뭄 등 재해 대응을 위해 농진청과 산림청, 우주항공청이 공동으로 개발한 농림분야 특화 위성이다. 현재 농진청과 산림청은 농림위성 개발과 위성 자료 수집, 영상 분석·배포 등을 전담할 위성활용센터를 구축하는 등 위성정보의 생산·활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무병묘 씨감자, 파키스탄 식량자급률 제고
한류 열풍에 힘입어 글로벌 시장에서 K-농업기술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식량이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에 우리 쌀 재배기술을 보급하는 K-라이스벨트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농진청은 우리나라 농업 발전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 개도국의 농업 문제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양자·다자 협력을 추진 중이다. 특히 3대륙 22개 국가에 설치된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 센터를 중심으로 국가별 맞춤형 농업기술을 개발, 실증, 보급하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에 전수한 농진청의 무병 씨감자 기술은 현지 식량 자급률 제고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씨감자가 여러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최고 80%까지 수량이 감소하는데 이런 씨감자 재배 기술이 없는 파키스탄은 매년 1100만 달러 정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권 청장은 "농진청의 무병 씨감자 기술을 전수받은 파키스탄은 향후 5년간 소요량의 30%인 16만t을 자급할 계획"이라며 "기존 씨감자 대비 20배 이상의 생산성 향상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K-라이스벨트 사업의 경우 2027년부터 벼 우량종자 1만을 매년 공급할 계획"이라며 "지난 8월 14개국이 신규로 가입해 37개국으로 확대되는 등 아프리카 국가 70%가 참여하여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