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화웨이의 부활이 미국을 경악시킨 이유
2024-10-07 13:03
[대전환기 중국 제대로 읽기] ④
2019년 5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및 70개 계열사를 거래금지 명단(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중국 정부가 화웨이 통신장비에 해킹도구를 설치해 기밀을 빼간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고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과의 거래도 전면 금지되었다. 이듬해 미국은 또다시 중국을 공격한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뿐 아니라 외국 기업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팔려면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을 고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사실상 화웨이에 대한 사망 선고였다. 모든 주력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첨단 반도체 구입이 불가능해진 화웨이는 이듬해(2021년) 매출이 30%나 급감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트럼프 정부의 집중 공격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화웨이의 중저가폰이 중국에서 승승장구 했지만 워낙 삼성 제품이 세계적으로 잘나가던 시절이라 스마트폰 분야에서 그 존재감은 위협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거세지면서 생사의 기로에 선 화웨이의 부활은 상당기간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 기적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화웨이를 전 세계는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화웨이의 부활은 중국의 공급망 대전환 정책의 성공적 사례이다. 미국의 제재를 돌파해내는 기술 자급 노력이 성과를 보이면서 중국 기업과 정책 입안자들은 미국과의 결투에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미국의 제재는 화웨이를 중국 반도체 공급망 구축의 중심축으로 이동시켰다. 중국 정부는 2015년 반도체 산업을 10대 전략 산업의 1순위로 선택한 이후 자국의 반도체 자급률을 당시 10% 수준에서 내년까지 70%로 끌어올리려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 미국 엔비디아 제품 대신 중국산 인공지능(AI) 칩을 구매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화웨이는 인공지능(AI)용 칩을 새로 개발해 바이두를 비롯한 중국의 빅테크 고객들을 상대로 테스트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든든한 지원 속에 자체 거대 언어모델(LLM) ‘판구 3.0’ 등 AI 인공지능(AI) 생태계 조성을 향해 달리고 있다. 전기차와 전기차 충전 사업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선 화웨이는 자율주행 시스템도 대량 상품화해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 전기차에 탑재할 예정이다.
화웨이 부활 신호탄이 된 5G 스마트폰 '메이트 60'의 깜짝 공개
지난해 8월 말 화웨이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력으로 만든 5G 스마트폰 '메이트 60'을 깜짝 공개했다. 이 스마트폰에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가 제조한 7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린 9000'이 탑재되고 OS 역시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하모니(Harmony)가 채택되었다. 네덜란드 반도장비 업체인 ASML이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며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에 수출을 금지하자 EUV보다 한 단계 낮은 심자외선(DUV) 장비를 사용해 7nm 반도체를 제조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가 첨단 반도체 기술 및 장비에 대한 규제를 뚫고 7나노미터 반도체 칩을 자체 생산하는 기술자립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지난해 10월 상원 상무위원회 청문회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라고 실토할 정도였다.
지난해 '메이트 60'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화웨이는 올해 9월 16일 미국의 애플이 아이폰 16을 공개한 날에 맞추어 세계 최초로 두번 접는(트리폴드) 스마트폰(메이트 XT)을 출시했다. 메이트 X는 3단 디스플레이를 모두 펼치면 크기가 10.2인치의 태블릿 PC에 준하는 사이즈로 아이폰보다 가격이 2배 정도 비싼 최고가 제품으로 현재 중국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주목을 받는 것은 디자인뿐 아니다. 많은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태블릿 PC의 대체재로 보고 있다. 기업 경쟁력은 고객을 향한 혁신에 달려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2019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폴더블폰을 출시했을 때 화웨이는 삼성전자를 추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5년 후인 2024년 화웨이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폴더블폰 시장에서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폴더블폰뿐 아니라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 분야에서도 화웨이는 올해 애플과 삼성을 추월했다. 화웨이가 조만간 출시할 '메이트 70'은 SMIC가 5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칩이 장착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미국이 우방과 손잡고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제외시키려고 필사적이지만 화웨이 사태를 겪은 중국은 전혀 휘청거리지 않고 제2차 반도체 굴기에 나서고 있다.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화웨이의 성공에 힘입어 다른 중국 기업들도 트리폴드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프리미엄 휴대폰으로 오랫동안 중국인들의 인기가 높은 미국의 애플은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상반기 애플은 14% 점유율로 화웨이, 샤오미, 비보, 오포, 아너 등 중국산 브랜드에 밀려있다. 중국의 대도시 애플 매장에서 새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매장 앞에서 줄을 서던 열성 팬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있다. 올해 중국 운영체제(OS) 시장 점유율에서 화웨이는 이미 애플의 iOS를 제쳤다. 현재 구글 안드로이드 OS가 중국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화웨이는 스마트폰·PC·자동차 등을 연결하는 하모니의 기본 애플리케이션(앱) 생태계 구축을 통해 안드로이드와 완전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
화웨이의 부활 요인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은 연구개발(R&D)에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투입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꼽고 있다. 화웨이는 2022년 실적 보고서에서 전체 매출의 25% 이상인 1615억 위안을 R&D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치다. 전체 직원 20여 만명 중에서 반 이상이 연구인력이다. 자연스럽게 특허건수도 부동의 세계 1위이다.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은 1987년 직원 5명이던 스타트업 기업을 기술과 고객을 중시하는 경영 전략과 뚝심으로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조직중심의 '늑대문화'
화웨이가 중국 '첨단 기술 굴기'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성공 비결로 소위 '늑대 문화'로 불리는 특유의 조직중심적 기업문화를 꼽는 사람이 많다. 5~6년 전 필자는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화웨이를 비롯한 각종 IT 기업들이 밀집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Shenzhen)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여의도 면적의 광활한 캠퍼스에 40여 동의 건물이 위치한 선전의 화웨이 본사를 들렀을 때, 회사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인사제도를 소개한 책자인 'dedication(헌신)'을 방문 기념으로 받았다.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 창업자 런정페이는 시간이 지나고 위기가 닥쳐도 '고객 중심'과 '자기반성을 통한 성장' '끈기 있게 싸울 줄 아는 용기와 힘" 등 기업 핵심가치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간부와 직원들에게 '돌격 앞으로'를 계속해서 주문한다.
화웨이의 인사제도를 보면 서구의 대표적 기업들과 비교해도 성과우선주의 색채가 매우 강렬하다. 상시 구조조정이 실시되어 성과가 낮은 직원은 도태된다. 하지만 종업원 주주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성과에 대한 보상은 파격적이다. 오래전부터 360도 평가 등 서구적 인사 시스템을 도입해 역동적이고 투명한 기업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모든 간부들에 대한 업무평가표까지 회사 직원들에게 공개되기도 한다. 2004년 여럿의 회사 임원들이 번갈아가며 CEO를 맡는 순환제까지 도입했다. 뛰어난 직원이 무능한 관리자 밑에서 빛을 보지 못하거나 한 사람이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집단의 능력과 지혜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화웨이의 고속성장을 이끈 독특한 기업문화는 우리나라의 70, 80년대 '근면 성실 문화'와 유사한 면도 있다. 최근 중국 베이징의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아들의 동료가 화웨이의 고액 연봉 오퍼를 받아 입사했다가 문화의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금방 퇴사를 했다. 과거와 달리 느슨해진 한국 기업들의 문화에 익숙해 있다가 화웨이의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경쟁과 업무 강도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결과였다. 현재 많은 젊은이들이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시대이지만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의 많은 기업들은 미국의 통상 압박과 내부 경쟁 심화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보다 한 발짝 두 발짝 더 뛰면서 경쟁력과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한 수 아래라고만 여겼던 중국 제품들은 가격 경쟁력은 물론 기술 측면에서 한국을 추월한 분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중국은 ‘제조업 최강국’에서 이제는 ‘신품질 생산력’이란 슬로건을 내걸며 국가 전략 차원에서 기업들을 육성하며 미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고 총력전이다. 중국 기업들이 한층 공격적인 경영과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약진'은 우리에게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략적 사고의 대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이다. 우리 다음 세대에게 암울한 미래를 물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