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압류 늦어져 재산 숨기면 어쩌나"…법원 늑장 행정에 '분통'

2024-10-01 14:42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설치돼 있는 '정의의 여신상' 모습. 전통 한복 차림에 앉은 자세로 눈은 가리지 않은 채 오른손에는 칼이 아닌 법전을 들고 있는게 특징이다. 2023.12.11[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 A변호사는 최근 자신이 수임한 사건에서 함께 가압류 신청을 했다. 가압류 신청에 대한 결정이 늦어지자 초조해진 A변호사는 법원에 문의 전화를 했지만 법원에서는 "처리 중"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본안사건 소장부본이 당사자에게 송달될 때까지 가압류 신청에 대한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A변호사는 "밀행성 때문에 가압류를 신청한 건데 당사자가 본안 제기 사실을 먼저 알아버리면 가압류가 무슨 실익이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 B변호사도 금전적 피해를 입은 의뢰인이 최대한 금전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법원에 빠르게 가압류 신청을 했다. 하지만 가압류 결정이 계속 늦어져 결국 채무자가 소 제기 사실을 먼저 알게 됐다. 재판에서 채무자는 "가진 돈이 없다"고 주장했다. B변호사 의뢰인은 "그사이 재산을 빼돌려 놓은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1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최근 법원에서 가압류·가처분 등 보전처분 결정이 늦어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본소를 제기하면서 함께 보전처분 신청을 했는데 본안사건 소장부본이 당사자에게 송달될 때까지 보전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이 나오지 않는 식이다. 

가압류는 금전채권이나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채권에 관해 법원이 채권자를 위해 나중에 강제집행할 목적으로 채무자 재산을 임시로 확보하는 제도다. 채무자 재산을 압류해 처분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채무자가 본안 소송 전에 재산을 몰래 빼돌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가처분은 금전채권 이외 권리나 법률관계에 관한 확정 판결의 강제집행을 보전하기 위한 제도다. 

가압류와 가처분 등 보전처분은 그 특성상 밀행성과 긴급성이 요구된다. 재산 등이 압류된다는 사실을 채무자가 미리 알고 금전 등을 숨기게 되면 보전처분 제도의 효과를 얻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법원에서는 엄격한 증명이 아닌 소명만 있어도 인용 결정을 할 수 있고 수개월 걸리는 본안소송과 달리 신청 후 수일 내에 결정이 나온다. 

가처분 결정에 대한 기한은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통상 2주~한 달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최근 본안사건 소장부본이 당사자에게 송달되기 전에 가압류 신청에 대한 결정이 나오지 않는 사례가 발생해 가압류·가처분을 하는 의미가 전혀 없다고 변호사들은 설명한다. 변호사들은 가압류 신청에 대한 결정이 늦어져 법원에 문의 전화를 해도 법원에서는 "처리 중"이라는 기계적인 답변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A변호사는 "밀행성 때문에 가압류를 신청한 건데 당사자가 본안 제기 사실을 먼저 알아버리면 가압류가 무슨 실익이 있냐"며 "가압류를 본안사건 소장부본이 송달될 때까지 결정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의뢰인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대놓고 항의도 못한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가압류·가처분에 대한 결정은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있다. 가압류·가처분은 결정은 빠른 반면 그 결정을 취소하는 데는 장기간이 걸리는데, 채권자가 이 점을 악용해 채무자들이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등 일상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변호사는 "만일 채권자가 제도를 악용해 부당한 가압류 결정이 내려지면 채무자는 (가압류 결정에) 대비할 기회조차 없어진다"며 "예금채권, 거래채권 등은 채무자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밀행성·긴급성만 강조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