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대한민국 산업 AI 대전환의 최강국 만들기

2024-09-30 06:00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AI(인공지능)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2022년 말 미국의 오픈AI사가 생성형 AI인 챗(Chat)GPT를 발표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사용자 1억명을 돌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에 AI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 등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천문학적 투자를 거듭하며 매달 새로운 AI 기술을 쏟아내고 있어 발전 속도가 가히 어지러울 정도다. AI는 이제 세계인의 생활은 물론 산업,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예술 등 사실상 모든 분야를 인류가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경지로 바꿔갈 전망이다. 획기적 생산성 및 효율성 제고, 문제 해결 및 기술 혁신 촉진, 새로운 가치 창출 등 순기능도 많으나 AI 윤리 및 안전 문제, 일자리 감축, 가짜뉴스 양산 및 민주주의 후퇴 등 역기능도 많아 인류의 AI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이 중요해지고 있다.
 
AI가 최근 세계적으로 초미의 키워드가 되었으나 처음 소개된 지 70년에 이르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 그간의 발전 경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AI라는 용어는 1956년 미국 컴퓨터과학 분야 대가들인 존 매카시, 마빈 민스키, 너대니얼 로체스터, 클로드 섀넌 등이 다트머스대학에서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제안되었다. 초기에는 인류의 미래 기술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컴퓨터 성능 및 실용적 기술 미흡, 연구개발 투자 부족 등으로 두 차례에 걸친 AI 암흑기를 거치며 세간의 관심과 투자가 급감하고 기술 발전도 정체되었다. 2016년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벌인 대국에서 압도적 승리를 하면서 AI 기술의 잠재력이 재조명되고 다양한 분야에서 AI 응용 가능성이 입증됨에 따라 AI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급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알파고 사건은 딥러닝과 강화학습의 결합이라는 기술 혁신이 큰 역할을 했고 분류형 및 예측형 AI의 심화 발전을 이끌어냈다. 2022년 말 챗GPT 발표로 생성형 AI 시대가 시작되며 AI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특이점(Singularity)이 임박했다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따라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와 관심이 커지며 엄청난 투자가 몰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는 AI에 거의 묻지마급 천문학적 투자를 거듭해 왔다. 최근 막대한 투자 대비 낮은 수익성, 실질적 혁신 효과 미흡, 버블 우려 등에 따라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회의론이 부상하고 있으나 AI 산업의 장기적 잠재력과 수요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최근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이 수천 일 안에 등장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도 "전환기에는 과소 투자가 과잉 투자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말하며 지속적 투자를 천명했다.
 
대전환 시대에 AI가 기업은 물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면서 AI 전략 및 정책은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주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발족하며 AI 3대 강국을 목표로 4대 프로젝트 등 정책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국가적 역량을 모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염원을 담아 대한민국 AI 정책의 전략적 방향과 보완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강·약점을 고려한 대한민국 특유의 AI 전략이 중요하다.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지만 사실상 양강인 미국과 중국의 압도적 물량 공세 속에서 3위의 실질적 의미가 크지 않다. 양 진영에서 1·2위가 독식하는 상황에서 제3진영 전략도 유효할 수 있으나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리 정부 계획에 따르면 현재 엔비디아 GPU H-100 2000개 수준인 미약한 AI 컴퓨팅 인프라를 2030년까지 3만개 수준으로 15배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메타 한 회사의 H-100 보유 규모가 35만개이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대규모 구매를 추진하는 등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쩐(錢)의 전쟁’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면 승부는 사실상 승산이 없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대함대를 상대로 대양이 아닌 울돌목이라는 좁은 해협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로 이끌었듯이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AI의 모든 분야로 전선을 넓히기보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절대적 열세 국면에서 골고루 잘하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잘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는 AI 기술 자체보다 AX라 불리는 AI 대전환에 국가적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즉 생성형, 초거대, 멀티모달 등 AI 기술은 글로벌 협력과 추격자 전략을 쓰고 AI 기술의 활용 분야에 집중하여 선도자가 되자는 의미다. 특히 산업의 AI 대전환(AX)이 우리의 전략적 승부처다. 우리가 AI 기술보다 AX 경쟁에서 승산이 큰 이유는 바로 데이터의 중요성 때문이다. 산업 AX의 성공은 AI 기술보다 양질의 대규모 산업 데이터 확보에 달려 있다.
 
산업 중에서도 제조업의 AX는 우리나라가 반드시 세계 최강으로서 세계를 선도해야 할 분야다. 제조업은 현재는 물론 미래의 대한민국 주력 산업이다. 우리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ICT, 휴대폰, 자동차, 로봇, 배터리, 바이오, 항공우주 등 주력 산업 모두가 제조업임은 우리에게 큰 힘이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수출의 90%도 제조업에서 나온다. 연결, 데이터, AI가 새로운 가치와 성장동력을 만드는 디지털 대전환(DX)이 진전되면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에너지, 건설, 콘텐츠 등 연관 산업이 융·복합되는 추세에 따라 제조업의 중요성은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다. 선진국들도 모두 제조업 재무장에 나서는 이유다.
 
세계 최강의 제조업 AX를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하게 많이 보유하고 있는 양질의 제조 데이터 및 노하우의 생성, 수집, 가공, 분석, 폐기 등 전 주기 관리와 함께 데이터 구조 및 모델링, 표준화, 활용 사례 발굴, 데이터 거래 체계 수립 등 데이터 생태계 구축에 올인해야 한다. 데이터 생태계는 제조 산업 및 업종별로 데이터 구조가 달라 전체 단일 생태계보다 각 산업 및 업종별로 특화된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따라서 일반적 초거대 AI, 즉 거대 언어모델(LLM)보다 훨씬 가벼운 소형 언어모델(SLM)이 효과적이다. 미국과 중국 대비 절대 열세인 AI 컴퓨팅 인프라로도 절대 우위인 데이터를 활용하여 제조업 AX에서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독일이 전 분야 대상의 가이아-X 생태계 대신 그들이 강점이 있는 자동차 산업에서 카테나-X라는 전용 데이터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있고 항공, 화학, 로봇 분야로 확산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산업 AX의 세계 최강국이 되려면 정부 부처 간 협력 강화가 매우 중요하다. 제조업 AX를 위해서는 제조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책임하에 AI를 주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을 주관하는 중소벤처기업부, AI 인재 육성을 맡는 교육부 등 관련 부처 간 협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방위산업 AX는 국방부, 의료·바이오산업 AX는 보건복지부, 농업 AX는 농림부, 문화산업 AX는 문화체육부, 금융산업 AX는 금융위원회 등 분야별 소관 부처 책임하에 모든 관련 부처가 협력하는 새로운 정부 거버넌스 체제가 시급하다. 현재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는 중요한 AI 인재 양성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도 여야는 물론 상임위 간 협력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과방위가 정부의 AI 기본법을 다룰 때 AX의 각 분야 소관 상임위와 협력하는 게 필요하다. 산자위의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은 산업의 디지털 대전환(DX)을 촉진하기 위한 법인데, DX의 핵심이 AX인 점을 감안하여 AI기본법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AX 최강국 전략 등 대한민국 특화 전략으로 명실상부한 AI 3대 강국의 목표를 이루길 기원한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