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학 인사이드] 다시 돌아온 원전시대...韓, 1650조 세계시장 기회 잡을까

2024-09-25 06:00
세계 원전시장 2032년 1650조까지 성장 전망
친원전 흐름탄 韓, 원전 강국 명성 되찾나

지난 2011년 9월 27일(현지시간) 체코 두코바니의 원자력 발전소 4개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 이후 외면받던 원전 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전기차 등 첨단산업 전력수요가 커지며 전 세계적으로 대형 원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된 결과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최근 8년 만에 신한울 3·4호기 착공을 허가하는 등 친원전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끊어졌던 ‘글로벌 원전 강국’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세계 주요국 '친원전' 행보...K-원전도 기대감↑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탈(脫)원전을 선언했던 국가들이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탈원전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을 확대하고 있다.

원전은 우라늄 등 원자핵에 중성자를 쏘아 핵분열을 유발하고 그 에너지로 발전을 하는 발전소를 뜻한다. 소비 에너지 대비 발전 효율이 좋다는 것이 특징이다.

수력발전 의존도가 50%가 넘는 ‘친환경 에너지 강국’ 스위스는 지난 8월 탈원전 정책을 공식 철회했다. 탈원전 1세대로 꼽히는 이탈리아도 올해 7월 원전 재도입을 공식화했다. 이외에도 스웨덴, 벨기에, 프랑스, 일본 등이 원전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내년까지 원전 폐로를 진행 중인 대만 역시 최근엔 블랙아웃(대정전) 위험에다 TSMC 등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전기가 갈수록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탈원전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현재 완벽한 탈원전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주요국 중 독일이 유일하다. 독일은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한 상태다.

한국 정부도 친원전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지난 12일 경북 울진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을 8년 만에 허가하며 탈원전 정책 폐기와 동시에 신규 원전 추가 계획도 밝혔다.

2024년 기준 한국에는 6곳의 원자력 발전소와 24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이다. 발전량 기준으로는 세계 6위이며, 회사 단위로는 세계 2위의 원자력발전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있다. 원전은 한국 내 전체 전기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친원전 흐름의 배경은 ‘에너지 안보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석탄 및 가스 공급에 차질을 겪자 태양광 풍력과 함께 원자력발전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실제 원전은 타 에너지 대비 값이 싸고 날씨나 자연조건, 국제 정세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오는 2035년 글로벌 원전 시장 규모는 165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규모와 함께 원전 설비 시장 규모도 커진다. 서치앤마켓이 지난달 발간한 원자력발전소 및 설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9조4000억원 규모였던 원자력발전소 및 설비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 136조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 체코서 잭팟 'K-원전', 유럽 원전 수출길 열리나
한국 정부도 이러한 시장 변화에 발맞춰 생태계 정상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과 일자리 10만개 창출을 목표로 내걸고 원전 사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노력의 결과는 수주 낭보로 이어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 24조원대로 추산되는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에 역대 두 번째 원전 수출을 앞두게 됐다.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은 현지 두코바니·테멜린 지역에 최대 4기(전체 사업비 30조원 규모)의 원전을 짓는 프로젝트다. 체코 정부는 우선 두코바니에 원전 2기 건설을 확정하고, 테멜린 지역 2기에 대해선 5년 안에 건설 여부를 결정짓기로 했다.

이번에 확정된 두코바니 원전 2기 건설비는 약 24조원에 달한다. 최종 계약은 2025년 3월 체결 예정이며 2029년 건설에 착수해 2036년부터 상업 가동에 돌입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은 프랑스 전력공사(EDF)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막판까지 경쟁했지만 검증된 원전 기술력과 수년간 체코와 다져온 ‘원전 스킨십’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아 프로젝트를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원전은 높은 품질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단가,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정해진 예산으로 적기 시공)’ 등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WN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는 ㎾당 3571달러로 프랑스(7931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팀코리아에는 한수원과 한전기술, 한국원자력연료, 한전KPS,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이 참여했다. 주계약은 한수원이 맡고 전력 관련은 한전, 관련 기기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시공은 대우건설 등이 맡는 구조다.

이번 체코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은 추후 이어질 유럽 원전 수주전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 유럽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탄소 중립 및 안정적 전력 수급을 위해 신규 원전을 계획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체코 수주를 통해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이 가속화돼 신규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협력 중소기업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한국은 신규 원전건설을 추진하는 많은 국가의 원전 수주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