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롬의 하이부동산] 쓰러지는 청담동 하이엔드…'심폐소생' 실패한 사업장 나온다 

2024-09-24 06:00
연장 거듭하더니 결국…청담동 초고가 주택 개발사업 또 좌초

청담501이 개발될 예정이었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 131-16 토지 및 건물이 공사 중단된 채 토지 매입 문의가 붙어 있다. [사진=하나자산신탁]

청담동 일대 초고가 주택 사업이 저조한 분양률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로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으며 좌초된 사례가 또 나왔다. 지난 2022년부터 불거진 PF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강남구 청담동 도산대로, 영동대로 일대 하이엔드 주택 사업장조차 사업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부동산 PF 자금경색 장기화…사업 좌초 무마한 지 1년 만에 또다시 위기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청담동 131-16에 지어지던 '청담501(옛 리카르디 아스턴 청담)'은 오는 25일부터 최저입찰가 534억8700만원에 공매가 개시될 예정이다. 

이곳은 2022년 4월 시행사가 토지매입 계약을 체결했으나 지난해 토지 소유주와 대주단 간 갈등으로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 대주단이 공매로 출회하기도 했다. 공매는 네 차례 진행되며 유찰되다가 시행사가 토지주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며 사업 좌초는 면했다.

하지만 올해 3월 리카르디 아스턴 청담은 청담501(골든밸류)으로 소유권이 변경됐고, 이후 브리지론 만기 연장만 거듭하며 본PF 착수에 실패, 공매로 넘어갈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이번 공매는 1순위 채권자인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에서 청구했다. 세금 체납으로 강남구청과 철거업체가 신청한 가압류도 걸려있는 상태다. 가압류는 매수인이 해결하는 조건으로 공매가 진행된다. 시행사 관계자는 "공매에서 3회 이상 유찰된다면 1순위 채권단들이 공매를 취소시킬 가능성도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청담501과 시공계약을 맺었던 상지건설은 당초 이달 18일까지였던 부동산 PF 심의 기한을 오는 12월 18일로 3개월 연장했다. 이때까지 금융·신탁사의 부동산 PF 심의를 얻지 못하는 경우 계약을 해제할 예정이다.
 
리카르디 아스턴 청담 조감도 [사진=골든밸류]

부동산 시장 자금 경색이 장기화하며 초고가 주택 개발사업이 직격탄을 맞는 모습이다. 자금조달 어려움으로 본PF 전환이 여러 차례 미뤄지며 수년째 공터로 멈춰있거나, 장기간 미분양으로 대주단의 원금 회수를 위해 착공에 들어간 사업장조차 좌초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 49-8에 위치한 '루시아 청담 514 더테라스'도 또다시 사업 좌초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곳은 시행사 루시아홀딩스가 지난 2022년 12월 20일 만기였던 원리금(브리지론) 1500억원 상환에 실패하며 당시 대주단(SK증권과 메리츠화재 등)과 연장과 관련해 협의했으나 지난해 1월 10일 EOD를 통보 받았고 공매 절차를 진행한 바 있다. 이후 대주단과 브리지론 만기 연장에 합의하며 생명줄을 연장했다. 

루시아홀딩스는 2021년 부지를 매입하고 1500억원 규모 브리지론을 조달했다. 2022년 분양을 시작했지만 2년 넘게 미분양이 심각한 수준으로 파악된다. 현재 도산대로에 있는 사업장 부지는 첫 삽을 뜨지도 못한 상태로, 인근 상권의 공용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파트 25가구, 오피스텔 20실로 계획됐다. 현재 오피스텔 전용 165㎡는 분양가 120억원(3.3㎡당 2억3000만원)에 책정돼 있고 최고 분양가는 270억원에 달한다. 
 
루시아 청담 514 더테라스 개발사업 부지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박새롬 기자]

이 사업장은 부실 우려가 높아지며 대주단 구성이 수차례 바뀌었다. 당초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은 BNK캐피탈과 함께 1순위 우선수익자로 참여했으나 지난해 6월 사업에서 발을 뺐다. 지금은 선순위 채권자로 부실채권(NPL) 전문투자기관인 하나엔프앤아이가 만든 특수목적법인 에이치에프씨엘삼일유동화전문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대주단 구성이 바뀌고 새롭게 브리지론 연장계약을 맺으면서 1~2년 최저 6~7%대였던 대출금리도 현재는 12~14%대로 훌쩍 올랐다. 

과거 대주단으로 참여했던 금융사 관계자는 "사업성이 낮다고 보고 자금 회수 우려가 높아 정리한 것으로 안다"며 "지금 상황대로라면 본PF 착수는 물론이고 브리지론 이자 납부도 어려운 상황으로, 공매 또는 재구조화를 통해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루시아홀딩스는 지난해 말 연간 사업보고서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으로부터 '의견거절'을 받았다. 청담 514 더테라스의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루시아청담피에프브이의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작년 말 기준 당기순손실 176억원을 기록했으며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487억원 이상 많고, 회사의 총부채가 총자산보다 481억원 초과했다"며 "계속기업으로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이 제기된다"고 공시했다.
 
강남권 하이엔드 주택 개발사업 곳곳 자금조달 못해 좌초 우려 
루시아 청담 514 더테라스 조감도 [사진=루시아홀딩스]

이밖에 강남권 초호화주택 개발사업 곳곳이 PF 경색으로 좌초 위기에 처해 있다. 강남구 논현동 114 '포도 프라이빗 레지던스 서울-인테리어 바이 펜디 까사'는 당초 시행사가 이달 착공을 목표로 했으나 본PF 전환 가능성이 낮아 시장에서는 사업 재구조화 논의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곳은 공동주택 전용 248㎡ 29가구, 전용 281㎡ 오피스텔 6실 등 총 35가구 규모로 분양가는 200억원부터 시작한다. 

강남구 신사동 633-3 일원에 26가구의 초고급 주택을 건설하는 '더피크도산'도 내달 브리지론 만기를 앞두고 본PF를 추진하고 있다. 시행사 알피에스디·알비디케이(RBDK)는 2022년 6월 2200억원 한도의 대출약정(브리지론)을 맺고 작년 6월 건축허가를 받았지만 본PF 조달이 어려워 착공이 미뤄지고 있다. 당초 지난해 말까지였던 대출 만기를 2개월씩 두 차례 연장하고 지난 4월에는 6개월 연장하는 등 본PF 전환이 수월치 않은 모습이다. 분양가는 150억~500억원 수준이다. 

이곳 외에도 청담동 일대에는 디아포제 502, 레이어청담, 디아포제 522, 루시아청담 546 등 하이엔드 오피스텔 개발사업이 내년 7~9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청담사거리 일대 하이엔드 주택 공사 현장 [사진=박새롬 기자]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지난 2020~2022년 강남권에 초고가 하이엔드 주택을 짓는 개발사업이 유행하며 우후죽순 부지 매입이 이뤄졌다"며 "이 때 땅을 매입한 시행사들이 금융권으로부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며 착공을 몇 년째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금융권의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에 따른 재구조화·정리계획으로 향후 정리될 부실 사업장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말 발표한 '부동산PF에 대한 금융회사의 사업성 평가결과'에 따르면 1차 평가대상(33조7000억원) 가운데 유의·부실 우려에 해당하는 비중은 21조원으로 전체 PF 익스포저(216조5000억원)의 9.7%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브리지론 만기연장을 두 차례 넘기면 '유의', 세 차례 초과하면 '부실' 등급으로 사업장을 분류해 부실 사업장부터 경·공매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여신 만기를 4번 연장했거나, 연체이자를 내지 못하고 만기를 연장했거나, 경매나 공매에서 3회 이상 유찰된 사업장이 구조조정 대상 우선순위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