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외면한 위험, 예고된 참사
2024-09-05 06:00
전기차, 호텔 화재, 딥페이크···. 최근 각 언론사 사회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이슈들이다. 이들 이슈에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사전에 충분한 사회적 경고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지나쳤고, 그 결과가 오늘의 사회면으로 나오고 있다.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역설적으로 대책의 속도는 그 충격의 크기에 비례한다. 흡사 전기차 화재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정부 부처, 지자체, 기업까지 저마다 해결책을 얘기한다.
사실 2018년부터 전기차 화재는 있었다. 그 후 매년 급증해 작년에만 72건이나 발생했다. 그사이 등록된 전기차는 60만대를 넘겼다. ‘이동식 수조가 아니면 답이 없다’ ‘기존 소화기로는 진화가 어렵다’ 같은 경고 목소리는 전기차 대세론 속에 묻혔다.
7명의 사망자를 낸 부천 호텔 화재 이전에도 숙박업소 화재는 적지 않았다. 2018년 종로 여관 화재, 같은 해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2019년 광주 모텔 화재 당시에도 적지 않은 희생자를 낳으며 스프링클러 설치가 해법으로 제기됐지만 이후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현실적 한계’로 치부됐을 뿐이다.
광주시는 2019년 모텔 화재를 계기로 국토교통부에 5층 이하 건물도 배연설비 설치를 의무화하자며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건의했다. 광주시의 건의는 지금까지 외면당했고 그사이 비슷한 화재 사고가 1843건 발생해 32명이 숨졌다.
딥페이크가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같지만, 딥페이크 이전에 N번방 사건이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9년 즈음 텔레그램을 통한 성착취물 제작·유포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2020년 들어선 요즘 못지않게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용두사미였다. ‘N번방 방지법’이 2021년 만들어졌지만 정작 불법 성착취물 유통 경로인 텔레그램은 법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법무부는 2021년 디지털성범죄 대응 TF를 야심 차게 만들었지만 정권이 바뀐 후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전담 부처나 다름없는 여가부의 현재 처지를 본다면 2024년 딥페이크 창궐 현상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다. 여가부 산하에 있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근무하는 직원 수는 2020년에 비해 약 절반에 불과하다. 그사이 불법 촬영물 삭제요청 건수는 15만건에서 24만건으로 크게 늘었다.
2022년 5월 발간된 디지털성범죄 TF 책자를 보면 딥페이크에 대한 언급이 18번 등장한다. 아예 TF 주요 업무로 ‘딥페이크 범죄 대응 대책 연구’로 규정한다. 피해 영상물 확산을 막고자 삭제·차단 조치를 할 수 있는 응급조치 규정 마련을 권고하기도 했다. 만약 법적·기술적 해법을 깊이 있게 끝까지 논의했다면 우리의 오늘은 조금 달라졌을지 모른다.
우리가 일상에 매몰되며 무심코 지나친 작은 사건·사고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큰 피해로 우리를 뒤흔든다. 우리가 더 큰 재난과 참사를 막는 방법은 보다 작은 사건·사고에 민감해지고, 사회의 사각지대나 이면에서 발생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