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 고시엔 우승 100년의 꿈] 새 역사 쓴 교토국제고

2024-08-26 00:00
일제강점기, 한·일 혼성팀으로 8강 쾌거
열악한 여건에서 이뤄낸 우승···'홍익인간' 빛났다   
'동해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유명해진 교가
일본 내 한국 학교는 4곳···민족교육 속 글로벌 인재 양성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지난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우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고 있다. 교토국제고는 이날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대회) 결승전에서 간토다이이치고를 2-1로 물리치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교도·연합뉴스]


한국계 학교 교토국제고가 새 역사를 썼다. 지난 23일 폐막한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기를 거머쥐었다. 재일동포들 힘으로 교토국제고 전신인 교토조선중학교가 세워진 지 77년 만에 이뤄낸 일이다. 한국에선 이들의 선전과 함께 ‘동해바다 건너’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가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현지 일본인들은 경기에 이긴 학교 교가를 부르는 전통에 익숙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교토국제고 교가가 한국어로 흘러나오자 그 이유를 묻는 질문이 포털에 쏟아졌고, 일부에선 불편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 일본인들은 교토국제고가 재일동포가 만든 민족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승을 거머쥔 한국인과 일본인 혼성팀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외국계 학교가 고시엔 대회를 처음으로 제패하면서 역대 고시엔 대회에 출전한 한국과 대만 학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일 혼성팀으로 8강 쾌거
1915년 첫 대회를 개최한 고시엔 대회는 올해 106회를 맞았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 제7회 대회부터는 조선에서 약 30개 학교가 예선을 치르고 조선 대표를 선발해 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조선에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던 만큼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혼성팀이 대부분이었지만 휘문고등보통학교는 한국인으로만 팀을 구성했다. 학생들은 철도와 배편을 이용해 효고현 니시노미야에 위치한 고시엔 구장으로 향했다.
 
일본고교야구연맹에 따르면 1921년 고시엔 대회에 조선 대표로 첫 출전한 학교는 부산상업학교(현 부경고)다. 부산상업학교는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8강에 올랐다. 이후 경성중학교(현 서울고), 휘문고등보통학교, 부산중학교(현 부산고), 평양중학교, 대구상업학교, 경성고등상업학교(서울대 상대 전신), 선린상업학교(현 선린인터넷고), 신의주상업학교, 인천상업학교(현 인천고), 용산중학교(현 용산고)가 1940년까지 매년 참가했다. 경성중학교가 고시엔 대회 출전 5회로 최다였고, 고시엔 구장에서 홈런을 기록한 첫 한국 학교로 기록됐다. 
 
1923년엔 휘문고등보통학교, 1926년엔 경성중학교, 1934년엔 경성고등상업학교가 각각 8강에 올랐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1942년부터 일본이 패전한 1945년까지 고시엔 대회는 중단됐다.
 
열악한 여건에서 이뤄낸 우승···'홍익인간' 빛났다   
교토국제고는 지하철역과 버스 정거장에서 30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산골짜기에 위치한 학교다. 전교생 138명인 초미니 학교가 고시엔 대회를 제패하면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학교까지 운행되는 버스가 없어 등교하면서 자연스레 체력이 길러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운동장은 한국 초등학교 규모보다 작다. 운동장 길이가 70m여서 125m 안팎인 정규 규격 야구장에 훨씬 못 미친다. 100m 직선 경주도 불가능하다. 넓은 운동장이 필요한 외야 수비 연습은 아예 다른 운동장에서 해야 할 처지다. 
 
이같이 열악한 상황에서 교토국제고 야구부 고마키 감독은 선수들 개인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다른 팀들과 같은 정상적 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새까맣게 탄 선수들 피부만 봐도 선수들 훈련량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실력뿐 아니라 좋은 경기 매너와 인사성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다카라 일본 고교야구연맹 회장은 고시엔 대회 폐막식에서 "투수력과 수비력, 타격력, 기동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선수들 매너 역시 훌륭하다. 이러한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고 교토국제고를 높이 평가했다.
 
교토국제고 체육관엔 '홍익인간'이라 적힌 큰 액자가 걸려 있다. 실제로 교토국제고는 선수들에게 실력보다 인성, 결과보다 과정, 개인보다 팀을 강조한다. '인간력 넘치는 진정한 국제인'이라는 학교 교육 목표가 야구부에도 그대로 전달된 것이며 야구만 잘하는 '야구 기술자'가 아닌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야구 선수'를 길러내겠다는 학교 측 의지다. 이를 삶에서 실천하는 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누구를 만나든 인사하고, 외부 손님을 마주치더라도 인사한다. 
 
고마키 감독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고시엔 무대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끊임없이 감탄했다"며 "그저 연습과 노력을 거듭하며 우리 팀 역사를 새롭게 써준 아이들"이라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교토국제고 전경 (사진=교토국제고 페이스북 자료사진) 
 
'동해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유명해진 교가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교토국제고 교가는 이번 대회에서 대대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고시엔에선 승리한 학교 교가를 부르는 게 관례다. 교토국제고 교가는 모두 6차례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교가에 나오는 ‘동해’는 일본 내 공식 명칭이 ‘일본해(日本海)’지만 일본 공영방송이 자국 영해를 다른 나라 기준에서 부르는 명칭으로 방영돼 주목받았다.

또 교가에 나오는 '야마토'는 3~7세기에 일본에 세워진 첫 중앙정권을 뜻하는데, 야마토 정권에선 한반도에서 건너간 한국 조상들이 많은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다. 이때 꽃피운 문화가 바로 '아스카문화'다. 

'동해바다’ 외에도 교가 1절에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4절에는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이라는 구절도 나온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활약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한국계 국제학교지만 재학생은 일본인이 더 많다. 학교 측은 일본인 학생들이 한국어 교가를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까 우려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도리어 일본인 학생들은 “한국이 좋아서 입학했는데 왜 한국어 교가를 바꾸느냐”는 반응을 보여 한국어 교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교토국제고 교가 (아주경제 DB) 

일본 내 한국 학교는 4곳···민족교육 속 글로벌 인재 양성 
일본에 소재하고 한·일 양국 정부와 지자체에서 정식 인가를 받은 한국계 학교는 교토국제고를 포함해 총 4곳이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도쿄한국학교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김건희 여사가 이곳을 찾아 학생들을 격려하고 내부를 둘러보기도 했다. 도쿄한국학교는 도쿄 내 유일한 한국학교로 1954년 설립돼 도쿄도에서 학교 인가를 받았다. 이후 한국 교육부에서도 초·중·고교 정규 교육과정을 인가받았다. 현재 재학생은 초등부 716명, 중·고등부 691명으로 일본 내 한국 학교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학생들 출생지는 한국, 일본, 그리고 제3국 등 다양하다.
 
가장 많은 재일동포가 거주하는 오사카에는 한국 학교가 2개 있다. 학교법인 백두학원이 운영하는 건국한국학교와 학교법인 금강학원이 운영하는 오사카금강인터내셔널학교다. 건국한국학교는 한국계 인터내셔널스쿨로 한 부지 내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함께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정한 커리큘럼을 토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파견된 교사와 일본인 교사에게 학습을 받는다. 2022년 기준 유치원 52명, 초등학교 151명, 중학교 102명, 고등학교 177명 등 총 482명이 재학 중이다. 오사카금강인터내셔널학교는 1946년 재일동포들이 자녀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학교다. 현재는 초·중·고교로 구성된 일본 정규 사립학교이며 1961년 2월 한국 정부에서 최초로 인가받은 재외 한국 학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교토국제고는 1947년 창립된 교토조선중이 전신이며 1963년 고등부가 개교했다. 한·일 양국에서 정식 학교로 인가받은 교토국제고 교육과정은 일본 학습지도요령을 따르고 있으며 모든 수업에서 문부과학성이 인정한 검정교과서를 사용한 일본어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어능력시험' 응시를 의무화하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함양에도 힘쓰고 있다.


◆ 용어설명 <고시엔(甲子園) 구장>
올해 개장 100년을 맞은 고시엔 구장은 고교야구선수권대회 개최를 위해 1924년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개장한 야구장이다. 일본 국내에선 ‘야구의 성지’라 불리며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홈구장이다. 고시엔은 야구장이 완공된 해가 갑자년(甲子年)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수용 인원은 4만800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