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마케팅에 눈 뜬 LG

2024-08-26 06:00
렌탈 브랜드명 '가전구독' 바꾸고 적극 홍보
'전략가' 조주완 대표 부임 후 마케팅 효과 톡톡

이성진 산업부 산업팀 기자
글로벌 생활가전 업계 1위인 '가전 명가' LG전자가 최근 '구독'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지난주 기관투자자 및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한 '인베스터 포럼'에서 조주완 LG전자 대표(사장)는 "가전구독의 경우 이미 지난해 연매출 1조원을 넘기면서 '유니콘 사업' 위상을 확보했고, 올해는 전년 대비 약 60% 증가한 1조8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소비자들이 '렌탈'과 '구독'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것이 LG전자의 가전구독 대표 개념인 '할부+서비스'가 이미 정수기를 중심으로 한 렌탈 사업에서도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LG전자는 지난해 개인 맞춤형 제품과 생활 서비스를 결합한 UP가전 2.0을 선보였고, 렌탈 브랜드명을 '가전구독'으로 변경했다. LG전자의 구독은 사실상 렌탈인 셈이다. 그러면서 소형가전 중심의 기존 렌탈사업의 틀을 깨고, 냉장고와 세탁기 등 대형 가전으로 품목을 확대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이에 따른 이미지 개선 효과도 노렸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LG전자는 2009년 정수기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렌탈에 입문할 당시 중견·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렌탈의 범위를 자사의 주력 사업인 대형 가전까지 확장하고 '구독'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신사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LG전자의 '구독 마케팅'은 대성공이다. 가전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꿈과 동시에 기존 제품을 판매 방식만 바꾸면서 새로운 사업처럼 둔갑했다. 렌탈이 '가전구독'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로 성장하면서 LG전자는 '음식물처리기' 사업 진출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LG전자의 이같은 행보에 경쟁사 삼성전자도 가전구독 서비스를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경쟁사들이 LG전자 제품을 벤치마킹한 사례는 있어도, 사업 방식을 따라가는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구독 마케팅 중심에는 조 대표가 있었다. 가전구독은 조 대표 취임 후 생겨났다. 조 대표는 1987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해 해외 주요 시장을 거치며 글로벌 감각과 사업전략 역량을 쌓았다. 기존 CEO들이 엔지니어 위주였던 것과 달리 조 대표는 '전략가' 타입에 가깝다. 대외 활동도 적극 펼치면서 그룹 내에서는 '스타 CEO'로 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 대표의 등장으로 그간 '부실 마케팅' 오명을 받아온 LG전자의 이미지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LG전자는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스마트폰 기술 개발 대신 피처폰 마케팅에 집중하면서 시장 지위를 뺏겼고, 이는 BTS도 구해내지 못했다. 공간 인테리어 가전 '오브제'도 소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사이 삼성전자 '비스포크'가 빠르게 성장하며, 소비자 사이에서는 'LG가 삼성을 따라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초 삼성전자에서 'AI가전=삼성'으로 적극 홍보하자 조 대표는 "AI 가전의 시초는 우리가 만들어낸 업(UP) 가전"이라고 맞받아치면서 "제품 경쟁력은 우리가 갖고 있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만 LG전자의 이번 구독 마케팅이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빠르게 진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렌탈업계 한 관계자는 "LG전자가 가전구독을 내놓으면서 렌탈 시장이 전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글로벌 기업인 LG가 해외 성과를 내지 못하고 국내에서만 안주한다면 '중소기업 시장 침범'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