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 기자의 C] 'R의 공포'로 위축된 미술시장… '프리즈 서울'로 기지개 켤까

2024-08-26 00:00
국내 9개 경매사 상반기 낙찰총액 -13%… 해외 경매시장도 -26.9% 
중화권 큰손 투자 감소에 코로나 기간 팔린 물량 한꺼번에 풀린 탓 
업계선 럭셔리 품목 강화·부동산 분양권 경매 등 불황 극복 안간힘
키아프-프리즈 서울로 세계 컬렉터들 유입 기대… 금리 인하도 변수 


지난해 9월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글로벌 브랜드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을 찾은 관람객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한국은행이라면 모를까···.”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미술시장까지 덮쳤다. 세계 경제가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미술시장도 끝 모를 혹한의 터널 속을 헤매고 있다. 팬데믹 초기 단기 수익을 기대하며 미술시장으로 몰려들었던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다 고금리 장기화로 글로벌 큰손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영향이다. 특히 미술시장을 보여주는 척도인 경매시장은 단기간에 회복이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그러나 시장을 반전시킬 카드가 남아 있다는 기대도 있다. 아트바젤 홍콩과 함께 아시아 양대 아트페어로 손꼽히는 키아프-프리즈 서울이 9월 첫 주에 열리는 만큼 세계 주요 컬렉터들이 서울로 몰려올 것이란 희망이다. 이에 발맞춰 경매사를 포함한 미술 업계 전반은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선보이는 등 불황 타개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경매시장 위축···불황에 큰손 지갑 닫아 
 

25일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 따르면 국내 9개 경매사(서울옥션, 케이옥션, 마이아트옥션, 아이옥션, 에이옥션, 헤럴드옥션, 라이즈아트, 칸옥션, 토탈아트옥션)의 올해 상반기 낙찰총액은 695억7100만원으로 전년 동기(803억8100만원) 대비 13% 감소했다.
 
미술시장은 경기 침체 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지만 다른 자산시장에 비해 회복이 더딘 경향이 있다. 경기 악화 국면에서는 자산가들이 그림 구매를 먼저 중단하기 때문이다.
 
해외 경매시장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글로벌 경매사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42억4500만 달러(약 5조6000억원)로 전년 동기 58억1200만 달러(약 7조7000억원) 대비 26.9% 줄었다.
 
경매시장 불황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서 비롯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과 더불어 미술시장 양대 축인 중국 또한 부동산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을 주도했던 중화권 큰손들이 움츠러들면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을 포함해 세계 미술시장이 역대급 불황을 겪고 있다. 올해 상반기 홍콩의 현대미술 경매 매출은 소더비 기준(저녁 경매)으로 전년 대비 약 39% 감소했다.
 
이로 인해 미술시장 향방은 한국은행 손에 달려 있다는 게 경매 업계의 전반적인 평이다.

다만 국내 경매시장을 이끄는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상반기 낙찰총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6% 하락하는 데 그친 점은 긍정적이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두 회사는 20년 넘는 노하우와 각각 연계된 화랑들이 버텨준 덕분에 비교적 선방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옥션은 가나아트갤러리, 케이옥션은 갤러리현대와 협력 관계다.
 
코로나 호황의 부메랑   
코로나 시기의 호황이 독이 됐다는 지적도 인다. 당시 일부 작가들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작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대량 판매에 나섰다. 그러나 불황이 닥치자 그 당시 작품을 구매했던 컬렉터들이 급매에 나서며 가격이 폭락했다. 파티가 끝난 것이다.
 
경매 업계 관계자는 “젊은 작가 중 작품 가격이 바닥을 친 이들이 있다”며 “코로나 때 컬렉팅이 유행처럼 번지며 대거 팔렸던 물량들이 시장에 한꺼번에 풀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외신에 따르면 호황기에 작품 값이 치솟았던 신진 작가 중 일부는 올해 들어 작품 가치가 증발했다. 2021년 경매에서 10만7100달러(약 1억5000만원)에 팔렸던 아마니 루이스의 그림은 올해 6월 경매에서 90%나 폭락한 1만80달러(약 1340만원)에 낙찰됐다. 에마뉘엘 타쿠의 작품은 2021년 18만900달러(약 2억5137만원)에서 올해 3월 1만160달러(약 1351만원)로, 이샤크 이스마일의 초상화는 2022년 36만7000달러(약 4억8900만원)에서 최근 2만 달러(2569만원) 이하로 폭락했다.
 
'R의 공포' 이겨낼까···프리즈 서울 맞춰 안간힘 
서울옥션 ‘더 컨시어지’ 부스 내부 [사진=서울옥션]

경매 업계는 ‘R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 중이다. 우선 고객 저변 확대를 위해 럭셔리 부문에 힘을 주고 있다. 미술품 구매자들이 명품에도 관심이 많다는 점에 착안한 전략이다. 서울옥션은 지난달 럭셔리 품목 종합 케어 서비스 ‘더 컨시어지’를 정식 출시하고 에르메스, 샤넬 등 품목을 선보였다. 케이옥션도 이달 경매에서 에르메스 가방, 까르띠에 시계 등을 경매에 출품했다. 에르메스 벌킨백(30A)은 1500만원에서 시작해 2600만원에 낙찰됐다.
 
6월에는 부동산 분양권이 국내 미술품 경매에 최초로 등장했다. 서울옥션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에 참여한 ‘더 팰리스 73’의 분양권 1건을 출품했다. 160억원부터 시작한 이 분양권은 219억원에 낙찰됐다.
 
글로벌 미술계 시선이 쏠리는 키아프-프리즈 서울에 맞춰 다양한 전시도 준비됐다. 서울옥션은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인 요시토모 나라의 개인전 ‘요시토모 나라’와 도예가 박영숙과 단색화 거장 이우환의 2인전 ‘마인드풀니스’를 선보인다. 또한 다음 달 10일에는 ‘컨템포러리 아트 세일’의 경매 프리뷰 전시를 통해 국내 거장들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요시토모 나라의 'Green Eyes' [사진=서울옥션] 

필립스옥션도 ‘Azure Horizons: 푸른 세계로의 여정’을 연다. 아울러 필립스옥션 홍콩 근현대 미술 부문 가을 메인 경매에 출품할 창위와 피에르 술라주 등 20세기 거장들 작품을 선보인다.
 
갤러리들도 통상 비수기로 여겨졌던 9월에 주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경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컬렉터들의 눈에 들어야 한국 작가들의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프리즈 서울만으로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역부족이란 게 중론이다. 또 다른 경매 업계 관계자는 “미술계 관심이 집중되고 작품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시기지만 미술시장 역시 거시경제 흐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금리 측면에서 미술시장이 반등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아시아권 바이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프리즈 서울을 비롯한 한국 미술시장 전반의 분위기를 좌우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EMI연구소가 낸 2024년 상반기 미술시장분석보고서는 “프리즈 서울이 지속하려면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일본 등 바이어들이 적극 서울로 날아와 작품을 구매하거나 중동,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큰손들이 대거 유입돼야 한다”고 봤다.
 
피에르 술라주의 Peinture 202 x 143㎝, 25 septembre 1967 [사진=필립스옥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