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칼럼] 기술전쟁 시대, 한국의 '최후 보루'는 반도체

2024-08-23 06:00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반도체는 미국의 안보, 중국의 심장
미국의 세계 반도체 생산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소비점유율은 28%인 반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63%나 된다. 반도체에서 기술은 미국이 최고지만, 생산과 시장은 이미 아시아로 넘어갔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 외주화는 중국의 부상이 없었을 때까지는 ROE를 높여주는 최고의 경영전략이었지만 미·중이 기술전쟁을 시작하고 AI시대가 도래하면서 반도체 생산 문제는 중요한 국가안보 문제로 떠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를 '안보산업'으로 규정하고 527억 달러(약 76조원)의 천문학적 보조금을 반도체 생산기업에 지원한다.

중국의 시진핑은 반도체는 '인체의 심장'과 같다고 강조하면서 반도체 국산화에 2014년부터 2차례에 걸쳐 3431억 위안(약 64조원)을 지원했고 2024년에 다시 3번째로 3440억 위안(약 65조원)을 지원하는 반도체국가펀드를 만들었다.

미·중의 기술전쟁의 종착역이 반도체가 되었다. AI는 4차 산업혁명의 종결자지만 AI에 들어가는 첨단 반도체가 아킬레스건이다. AI용 첨단 반도체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순간 4차 산업혁명에서 미국의 승리는 장담 못한다.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중국의 AI굴기를 막아야 한다.

정보화시대 반도체는 '모든 산업의 쌀'이다. 가전기기부터 첨단 전투기와 AI까지 반도체 없이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 과거에는 석유를 장악하는 것이 세계를 장악하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반도체를 장악하는 것이 국가의 힘이다.

통상 한국 대통령이 당선되면 미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1개월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첫 일정은 항상 DMZ였는데 이번 바이든 대통령은 DMZ가 아니라 삼성 반도체 공장을 갔다. 이는 미·중 기술전쟁시대에 한국의 인계철선이 DMZ에서 반도체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외교의 수명, 반도체 수명과 같이 간다?
전자기기에 있어 반도체와 배터리는 인체로 치면 두뇌와 심장인데 미국은 5㎚ 이하의 첨단 반도체와 배터리를 만들 공장이 없다. 5㎚ 이하의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는 대만에 의존하고 배터리는 한국에 의존한다.

2022년 7월 미국의 옐런 재무장관도 방한 첫 일정으로 마곡에 있는 엘지화학 배터리전시관을 방문했다. 바이든과 옐런의 한국 방문에서 보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진짜 관심은 바로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와 배터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이 시작한 공급망 전쟁에서 미국은 5㎚ 이하 첨단 반도체의 자체 생산능력이 없다 보니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파운드리 없이는 4차 산업혁명에서 패권도, 미·중 기술전쟁에서 승리도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의 아킬레스건도 반도체다. 14억의 인구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반도체 국산화를 마음먹으면 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문제다. 미국이 일본, 한국, 대만과 CHIP4 동맹을 통해 반도체장비, 소재, 기술, 제품을 통제하자 중국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칩4(CHIP4) 동맹 중 가장 약한 고리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반도체 국산화를 위한 협력 파트너로 한국의 중요성이 커졌다. 지금 한국은 보복의 대상이 아닌 어떤 형태로든 반도체 국산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협력의 대상이다.

미·중이 한국을 이렇게 중요하게 보는 시기가 없었다. 그러나 미·중이 첨단 반도체 생산 국산화를 하는 순간 한국의 대미, 대중 외교의 협상력은 끝난다. 미국과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기술격차, 중국과는 통제 범위 내에서 기술협력을 통한 실리 추구가 한국이 외교력을 높일 수 있는 지렛대다.

반도체산업 지원, 발상의 전환이 필요
정쟁에만 몰두하던 국회에서 여야가 반도체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몇 %를 주나'를 얘기하기 전에 국회의 반도체산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 먼저다. 반도체산업 지원을 재벌기업에 정부 돈 퍼 주기로 인식하면 실패한다.

기술전쟁시대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총알이다. 미·중의 반도체 FAB 짓기는 군비 확장이고, 미·중의 천문학적 보조금은 국방비이다. 반도체는 지금 기술전쟁에서 한국을 지키는 최종병기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반도체 지원은 보조금+투자세액감면+법인세감면+정책대출의 패키지로 이뤄진다. 미국은 보조금, 세액감면, 정책대출의 패키지로, 중국은 보조금, 법인세, 정책대출 패키지로 지원한다. 하지만 한국은 투자세액감면과 정책대출 패키지만 고려하고 있다.

한국은 정부도 정치권도 직접보조금을 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든 것을 미국 따라하면서 반도체 지원은 미국을 따라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미국은 2024년 8월까지 25개 프로젝트에 직접보조금 313억 달러를 지원하는 대신 3630억 달러를 투자 유치해 보조금 대비 11.7배 효과를 보았다.

첨단 3㎚ 파운드리 공장 한 개 건설에 200억 달러 이상이 들어간다. 트렌드포스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022년 파운드리 매출액은 216억 달러였다. 삼성전자가 세계 2위라고는 하지만 11% 점유율의 파운드리 매출로는 첨단 반도체공장 한 개 지을 능력도 안 된다. 삼성과 경쟁관계인 애플, 콸컴 등 첨단 파운드리의 최대 고객들은 경쟁자인 삼성전자에 파운드리 주문을 주기 어렵다.

대안은 중국처럼 반도체 FAB별로 별도 자회사로 만들어 모회사, 정부와 연기금, 민간투자기관이 3.3.3 공동으로 투자하는 국민기업을 만들어 보조금 지원하고 IPO를 한다면 직접보조금의 정치적 부담을 덜 수도 있고 고객 확보도 가능하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이유로 반도체 지원을 국회안보다 낮게 설정하는데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모두 만성적 재정적자국이지만 반도체만은 파격적인 지원을 한다. 재정적자라고 국방비 지출을 안 하는 경우는 없다.

파격이 없으면 신화는 없다. 정치권도 정부안보다 몇 %를 '더 올렸네'를 자랑할 일이 아니고 미·중·일·유럽과 비교한 수치를 보고 자랑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가 철저하게 작용하는 반도체산업에서 남들보다 적게 주고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그리고 명품의 가치는 디테일에 있다. 반도체 지원을 '두루뭉실 몇 %' '소부장 포함' 이런 식은 의미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5㎚ 이하 첨단 파운드리 생산과 기술 소재 장비이고 여기에 정확히 포커스한 지원책이어야 한다. 많이 퍼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정교하게 지원해야 한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금을 받으면 제출해야 하는 서류에 엑셀시트 양식까지 들어 있다.

한국은 달러를 의대가 아니라 반도체가 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반도체 인력 육성이다. 의료복지도 시급하지만 이공대 지원자가 의대로 몰리면 4년 뒤면 반도체 인력의 자질 문제가 불거진다. 대학의 이해관계로 반도체 정원의 확대가 어렵다면 반도체공대를 설립하는 것도 추진해야 한다. 공장 지어 놓고도 공장에 일할 사람이 없으면 더 큰일이다.

반도체산업에 영원한 1등은 없다. '1등의 저주'에 빠진 인텔의 오늘이 한국 반도체업체의 미래가 되면 안 된다. 반도체에서 국가 간 '쩐(錢)의 전쟁'이 붙었는데 한국은 찔끔찔끔 주다 결국 떠밀려서 다 주고 타이밍도 놓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