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구 칼럼] 신향약을 통한 지역공동체 복원 모색

2024-08-20 15:54

[이춘구 언론인]
 


요즘 언론보도를 통해 보고 듣게 되는 소식은 온통 사건사고이다. 끔찍한 역주행사고나 층간 소음 등으로 이웃을 죽이는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음주운전으로 보행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나는 데도 음주운전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듣기에도 거북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유튜브를 들여다보면 가짜뉴스와 선정적인 콘텐츠들이 판을 친다. 가짜정보는 넘치는 데 진실된 정보는 찾기 힘들다.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길러내고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마을공동체에서부터 도의를 바르게 세우고 공민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염원을 실현하는 데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살리는 향약을 변화된 시대에 맞게 정립하는 게 시급하다고 본다.

이 같은 방향은 우리 향약연구의 대가인 박경하 향약연구원장(전 중앙대학교 교수)이 제시한 바 있다. 박경하 원장은 ‘조선시대 향약의 성격과 주민자치로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글에서 1937년 향약을 이어받은 단체가 전국적으로 3만 3천 6백여 개라고 밝혔다. 이 단체에 소속된 약원 수는 152만 7천여 명이다. 이들 향약은 시대적 변천과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 속에서 덕업상권, 예속상교, 환난상휼, 풍교개선 등 향약의 전통덕목을 실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덧붙여서 산업장려, 영농개선, 문맹퇴치 등의 사업도 펼쳤다.

향약은 예로부터 전해온 우리 민족고유의 공동체 정신과 생활에 연원을 두고 있다. 공동체는 생산력의 필요에 따라 계를 조직하고, 노동력의 집중을 위해 두레를 만들었다. 계는 계원의 상호부조·친목·통합·공동이익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규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운영된다는 점에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대부분의 계는 공동의 목적과 존립을 위해 경제활동과 식리(殖利)를 하며, 계원의 복리 및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복지적 집단이기도 하다. 계의 기원에 대해서는 20여 개의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 가운데 본 주제와 관련해서는 원시공동체적 원생조직설(原生組織說), 원시공산체적 상호부조설, 원시촌락공동체적 생산관계설, 촌락공동체 부담의 공동해결조합설, 고대촌락의회설, 고대종교의례설, 두레설, 향도설(香徒說) 등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지역공동체는 이 같은 촌계를 중심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복지를 실현해나가고 있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이르러 주자증손여씨향약이 전래되면서 향촌사회 운용체제에 변화가 일어났다. 향약을 수용하면서 퇴계, 율곡 등 선현은 자주적 입장을 견지했다. 즉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촌계의 전통을 당시 시대적 상황에 맞게 향약을 실시하도록 했다. 외래의 향약이 자생적인 계의 형식을 빌어 향약계로 발전한 것이다. 퇴계의 예안향약은 과실상규에 중점을 두었으나 실제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퇴계가 지향하고자 했던 향촌의 질서유지와 교화사상은 그 후 영남지역 향약실시에 영향을 미쳤다.

율곡은 16세기 중반 당시 민생의 어려움과 재지사족 등의 부패 등을 들어 향약 시행을 반대했다. 율곡은 지방관으로 나가 지방행정을 쇄신하고 민생 등을 돌보는 차원에서 파주향약, 서원향약, 해주향약, 사창계약속, 그리고 해주일향약속을 잇따라 시행하거나 관여했다. 사창계약속은 사창계를 가미한 복합적 성격의 주민자치활동조직의 한 형태이다. 사창계 주민조직은 오가위오제(五家爲伍制)로 하고, 약중인은 조미(造米) 1두(하인 5승)를 내 사창에 저장하고 구급(救急)하는데 사용했다. 사창계는 창곡으로 비황저축(備荒貯蓄)해 빈자에 대한 구제사업을 엄격하게 실시했다.

다음에는 향약을 통해 주민자치를 실시하며, 공동 경제활동을 바탕으로 환난상휼 공동체의 복지를 지향하고자 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첫째 명종 20년(1565)에 창설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남 영암군 구림대동계이다. 대동계는 상장상부(喪葬相扶), 혼인상자(婚姻相資), 환난상구(患難相救)에 비중을 둔 공제계(共濟契), 상부계적(喪賻契的)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동계는 논 600두락으로 사립구림보통학교를 설립했으며, 이 학교는 오늘날 구림초등학교로 유지되고 있다.

다음으로 주민자치의 원형으로서 연금복지공동체 도입가능성이 거론되는 전북 남원시 금지면 입암향약을 살핀다. 주민자치의 원형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적 의사결정과 공동재산을 바탕으로 마을공동체의 공동노동과 공동생산, 복지실시, 그리고 놀이문화 공동체로서 지속가능성 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입암향약은 그동안 알려진 1795년(정조 19년)보다 더 앞서는 1725년 이전에 시행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2025년이면 시행 300년을 맞게 되는 입암향약은 170여 세대가 공동재산을 기초로 하는 촌계 향약이다. 입암향약은 사회 변화에 맞춰 상하합계 형태로 이루어 졌으며, 오늘날 입암새마을회로 명칭을 바꾸어 운영되고 있다.

입암향약은 마을공동체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 약원들의 총회로 의결하고, 집행한다. 모든 세대가 참여하고 의사결정도 민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주민자치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입암향약은 덕업상권, 예속상교, 과실상규, 환난상휼 등 향약의 4대 덕목을 현대적으로 실천하는 방안을 게시판에 표기하고 있다. 입암향약은 노동공동체, 생활공동체, 사신공동체로서 향약의 기본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더 나아가 경제, 복지, 문화, 교육 공동체로서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입암향약의 운영 전반을 진단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하는 게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다 전북 익산시 성당포구 마을 등이 시행하고 있는 주민자치연금과 같은 공동체연금을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동체연금이 도입된다면 입암향약의 지속가능성은 더욱 더 공고해질 것이다. 촌계의 협동 상호부조하는 공동체 정신과 생활양식은 현대 주민자치의 정신적 가치로 계승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2017년 소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가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들을 활용해 공공생활의 기초단위인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풍속을 바르게 하는 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