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금융당국 "우리 기업 CEO 왜 투자자와 직접 소통 안하나"…기업들 '좌불안석'

2024-08-20 06:34
국내 CEO들, '최대 이벤트' 콘퍼런스콜·주주총회도 매번 빠져
로드맵 공개로 직접 주가 부양 나서는 美 빅테크 CEO들과 대비
투자업계 "투자자 앞에 나서는 것도 경영진 의무… 인식 바꿔야

[그래픽=김효곤 기자]

금융당국이 가치 제고(밸류업) 정책 일환으로 주주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요구하고 나섰다. 테슬라, 엔비디아 등 유명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처럼 왜 소통하지 않냐는 것이다. 국내 기업 콘퍼런스콜, 주주총회 등에서는 기업 실제 오너 혹은 대주주는 물론 전문경영인조차 좀처럼 얼굴을 비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기업밸류업 상장기업 간담회’에서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에게 성공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주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기업들 입장을 주로 경청했다"면서도 "산업별 특성을 감안해 밸류업 공시를 이행할 수 있지만, 기업들이 주주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며 기업들의 밸류업 참여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최근 금융당국의 시선은 단순히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 부양이 아닌 기업들의 소액주주에 대한 ‘소통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 오너와 경영진이 주주와 직접 소통하는 모습이 밸류업 정책과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그 비교 대상은 일론 머스크(테슬라), 젠슨 황(엔비디아), 팀 쿡(애플) 등 시가총액 수천조원에 달하는 미국의 빅테크 CEO들이다. 미국의 주요 기업 CEO들은 매 분기마다 콘퍼런스콜과 주주총회에 참석해 주주들의 질문에 답한다. 

매 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는 엔비디아 기업이 대표적이다. 젠슨황 CEO는 발표에 나설 때마다 중장기 사업 로드맵을 주주들에게 알리며 직접 주가 부양에 나서고 있다. 최근 그는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해 발표를 통해 사업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주주들에게 알리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밸류업은 단순히 주가 부양에만 목적을 둔 정책이 아니다"면서 "국내 기업 오너와 CEO도 미국처럼 사업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알리며 주주와 적극적인 소통을 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계자는 "국내 CEO들은 주주와의 소통에 너무 소극적"이라면서 "이를 원치 않으면 애초부터 비상장기업으로 남아있으면 된다"고 비판했다.

국내 CEO들은 콘퍼런스콜, 이사회, 주주총회 등 어디서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2분기 콘퍼런스콜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현대차 등 시가총액 상위 기업 모두 CEO급 대신 주요 실무진만 참석했다. 삼성전자만 다니엘 오 부사장과 김재준 부사장이 참석했고, 나머지 기업들도 최고재무책임자(CFO)만 참석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해외 콘퍼런스콜과 달리 국내 콘퍼런스콜에는 기업설명(IR) 팀장이 나온다"면서 "이사회, 콘퍼런스콜, 주주총회 등 CEO들이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더 심각하다는 반응이다. 해당 관계자는 "일부 기업들 이사회는 이사회에 참석도 안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아가는 사내 이사들이 있다"면서 "수십년째 자리 유지만 하는 미등기 이사들이 여전히 많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콘퍼런스콜은 주주들에게 기업 실적을 얘기해주고 향후 전망을 얘기해주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다"라면서 "1년에 4번 있는 이벤트에 CEO가 나와서 주주들과 소통하는 사례를 찾아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밸류업 정책 추진 이후 저PBR주로 가장 수혜를 받은 금융주 역시 자사주 소각에는 적극적이지만, 주주와의 소통은 아직까지 소극적인 모습이다. 국내 10대 증권사 중 증권사 은행 금융지주사만 통합 콘퍼런스콜로 진행하고 있다. 이 중 메리츠금융지주만 지난 1분기부터 ‘주주와의 대화’ 코너를 개설해, 질문을 미리 받아 일부만 답변하고 있다.

주요 증권사 역시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비공개 콘퍼런스콜에 최고재무책임자(CFO)만 참석한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비공개 콘퍼런스콜을 공개로 변경하고 CEO 참석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를 확정한 곳은 없다. 

기업들은 경영진의 역할이 주주와의 소통이 아닌 경영 그 자체라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진의 주요 업무는 주주와의 소통이 아닌 경영성과를 내는 것"이라며 "콘콜과 주주총회 등에 경영진이 참석을 안 한다고 문제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투자업계 관계자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고 인식 자체가 부끄럽다"며 "미국의 CEO들이 경영을 못해서 주주총회와 콘퍼런스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 앞에 나서는 것이 경영진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