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숙 칼럼] 대학 경쟁력 강화…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2024-08-18 16:31

[임혜숙 이화여자대학교 전자전기공학전공 교수]


캠퍼스를 가로질러 연구실까지 걸어 올라오는 출근길에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봄에는 영춘화로 출발하여 백목련, 자목련, 벚꽃, 배꽃, 개나리, 진달래, 산철쭉을 만난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캠퍼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캠퍼스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놓으신 명예교수님 덕분에 이름을 알게 된 산수유, 황매화, 큰금계국, 살구나무꽃, 능소화들을 또한 만나고, 여전히 이름 모를 풀꽃들도 만난다. 초여름 연두색 신록의 아름다움과 캠퍼스를 온통 진한 초록으로 물들이는 한여름 나무의 생명력에 감탄하기도 한다. 지금은 속히 무더위가 가고 노란 은행잎이 캠퍼스를 뒤덮을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대학 캠퍼스로 출근하는 일상은 축복이지만, 대학이 처한 현실에 암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해 정부가 기초연구사업 예산 삭감을 단행한 여파가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연구비가 감액되거나 갑자기 과제가 종료된 교수들은 새로운 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제안서에 매달리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연구개발 사업의 경쟁률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상당수의 교수들이 연구인력 인건비가 없어서 대학원생의 인건비를 감액하거나 연구 재료비가 없어서 진행하던 연구를 중단하고 있다. 연구비가 없어서 대학원 신입생을 받을 수 없는 교수도 있어서 석·박사과정 진학이 좌절된 학생들도 생겼다. 한번 중단된 연구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많은 연구자가 연구를 포기할 것이 매우 우려된다. 이런 어려운 때에 대학에서 교내 연구비 등을 통해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지만, 국내 대학의 재정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다.
 
국내 대학의 재정 악화는 실질등록금(실제 고지서에 찍힌 금액인 명목 등록금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금액) 감소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4년제 사립대 연평균 실질등록금은 2008년 914만원, 2012년 805만원, 2015년 775만원, 2018년 750만원, 2022년 700만원으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2022년의 실질등록금은 2008년 대비 76.6%에 불과하여 15년간 크게 인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분석한 ‘2023년 학교급별 사립학교 교육비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 151곳의 1인당 연평균 교육비는 732만원이었다. 이를 유·초·중·고 사립 교육 기관이 한 학생당 받은 비용과 비교하면, 영어 유치원(2093만원), 사립초(918만원), 국제중(1280만원), 자율형사립고(905만원), 특목고(1018만원), 국제고(2847만원)이다. 영어 유치원을 비롯하여 초중고 기관들이 받은 비용은 모두 대학 등록금을 훌쩍 뛰어넘는다.
 
2020년 미국 공립대학 등록금은 10년 전인 2010년보다 약 10% 인상되었으며, 사립대는 같은 기간 19% 올랐다. 2022년 기준 미국 공립 4년제 대학들의 평균 등록금은 약 1464만원이고, 사립 4년제 대학 평균 등록금은 약 5273만원이다. 우리나라의 사립대학과 비교하여 미국 공립대학은 2배, 사립대학은 7.5배의 등록금을 받는 것이다. 영국 또한 등록금을 정부가 규제하고 있긴 하지만 금액의 허용 범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넓다. 2022년 등록금 상한액은 연 1545만원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는 2012년부터 매년 최대한도로 등록금을 책정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실험실습비 예산은 2011년 2144억원에서 2021년 1501억원으로 30%가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019년 기준 22.6명으로, 이러한 인원수는 OECD 평균인 15명과 EU22개국의 14명을 훨씬 뛰어넘는다. 우리나라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2225달러로, OECD 평균인 1만8105달러의 67.5% 수준에 불과하다. 그 원인을 찾는다면 공교육비의 60~90%가량에 해당하는 등록금(명목 등록금)이 15년간 동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5년간 동결된 등록금은 국내 대부분 대학의 재정 상황을 매우 열악하게 만들었다. 정년퇴임으로 빈자리가 생겨도 교수를 충원하지 않고, 충원을 한다고 해도 비정년 계열 교수나 특임교수, 겸임교수를 임용하여 업무를 대신하게 한다. 학생들은 오래된 기자재와 장비를 이용하여 실험·실습을 한다. 강의당 수강인원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수업의 질은 저하되고 있다. 많은 학생이 적지 않은 사교육 비용을 치르고 입학한 대학 현장에서는 정작 교육 및 연구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학 행정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과중한 업무로 지쳐가고 있다. 퇴직이나 휴직으로 결원이 생겨도 직원 채용은 이루어지지 않고, 가능한 계약직으로 대체하여 인건비를 줄이고자 한다. 특히 학과사무실은 오래전부터 2년 단기 계약직 직원이 근무하여 업무 연속성이 끊어졌고, 이는 학생지원 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한 직원이 담당하던 많은 업무가 학과장 교수에게 전가되어 학과장의 업무는 가중되었고, 학과장은 기피 보직이 되어 버렸다. 단과대학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턱없이 줄어들어서 과거 단과대학 별로 진행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교수 워크숍, 대학원생 워크숍, 진로 및 취업 관련 학생지원 프로그램, 해외 대학과의 교류 프로그램 등은 모두 매우 축소되거나 자취를 감추었다.
 
소비자물가가 지난 15년간 132.8% 인상된 것에 반하여, 15년간 연 2% 내외의 연봉 인상 처우를 감내해 온 대학 교수와 직원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대기업이나 연구소와의 연봉 격차는 점점 더 심화하여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자들은 더 이상 대학교수가 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는 인공지능, 반도체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 우수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7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2024년 국가경쟁력은 67개국 중 20위로, 2023년에 64개국 중 28위였던 것에 비하여 크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교육경쟁력’은 2023년 49위, 2024년 46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대학교육경쟁력 46위는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에 비하여 대학에서 받을 수 있는 교육 수준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2021년 글로벌 양대 대학평가기관의 대학평가 종합순위 300위 내 우리나라의 대학 수를 살펴보면, QS 대학 종합평가로는 9개, 상해교통대 대학 종합평가로는 6개에 불과하다. 이는 주요국 중 최하위에 속하는 것으로 대학의 열악한 재정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고등교육법에는 등록금 인상 한도를 최근 3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장학금을 빌미로 정부는 지난 15년간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도록 대학을 규제해왔다. 법으로 정해진 인상 한도 내에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등록금을 책정할 수 있도록 하여 등록금이 물가상승률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최대 38%였던 대학 기부금에 대한 세금 공제율이 2014년 이후 15%로 축소되어 대학으로 들어오는 기부금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기부금에 대한 공제율을 확대하는 등의 세법 개정으로 기부를 또한 활성화하여 대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여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의 핵심적인 역할이 대학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저출산이 학령인구 감소로 이어져 세계의 대학과 경쟁할 기초체력마저 고갈시켜가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이 현재와 같은 글로벌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경쟁력 강화는 필수요건이다. 열악한 대학 재정 상황의 획기적 개선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전자전기공학전공 교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 제50대 대한전자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