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칼럼] 베이비 부머 대이동…위기일까, 기회일까

2024-07-15 06:00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MZ세대가 청년세대를 대표하고 있듯이 고령세대의 중심에 베이비 부머가 있다. 대한민국 성장의 중심 세대였던 베이비 부머가 대거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면서 생산시장과 소비시장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국가적 대응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6·25전쟁 이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20년간 고출산 시대가 있었고, 이들 세대를 베이비 부머로 분류한다. 1955∼1963년생을 1차 베이비 부머, 1964∼1974년생을 2차 베이비 부머로 나눌 수 있고, 1차 베이비 부머 705만명, 2차 베이비 부머 954만명 합하면 전체 인구 중 32.3%인 1660만명에 이르는 거대 인구집단이다.
 
베이비 부머는 큰 규모 때문에 끊임없는 생존경쟁에 시달리면서 경제성장의 흐름을 타고 현대화된 세대이다. 고소비의 상징인 마이카 시대와 아파트 시대를 활짝 연 세대도 이들이다. 이들이 가는 곳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거리에는 차가 넘쳐나고, 소득수준에 따라 아파트도 넓어졌다. 음식점과 술집, 최근의 트로트 바람도 이들의 취향에 흔들렸다. 또 이들이 머물고 있는 자리에는 인사 적체가 발생해 조직구조도 피라미드형 수직 조직을 다이아몬드형 혹은 수평형 팀제로 전환했다. 베이비 부머의 인구 이동으로 생산연령 인구는 감소하고 소비연령 인구는 늘어난다. 베이비 부머가 젊은 층이었을 때는 생산인구 비중이 높았다가 베이비 부머가 노년층이 되면서 노년 인구가 전체 인구의 중심 세력이 되는 것이다. 즉, 생산의 중심 인구인 베이비 부머가 소비가 중심인 노년계층으로 대이동하는 것이다. 

베이비 부머의 거대한 이동도 인구구조상으로 특별한데, 베이비 부머 이후 합계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현재는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하락했다. 베이비 부머가 주도하는 인구구조 변화의 문제는 이들을 받쳐줄 신세대 인구수가 빠르게 감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이후 출산율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2030년경 신규 노동시장 진입 인력은 극단적으로 최저선으로 하락하는 반면에 베이비 부머는 노년층으로 접어든다. 초저출산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2070년대까지 이러한 극단적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베이비 부머의 인구 이동과 관련해 일본에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베이비 부머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부동산시장의 버블 붕괴가 촉진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버블붕괴가 발생할 것인지 여부가 부동산시장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1차 베이비 부머의 은퇴가 끝나가는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다시 요동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차 베이비 부머의 은퇴가 시작되면 어떻게 될까? 베이비 부머가 자산의 유동화를 위하여 부동산을 처분하면 부동산 가격 하락도 걱정될 수 있는데 다행히 베이비 부머의 부동산 교체 움직임은 특별히 감지되지 않고 있다.
 
베이비 부머가 생산인구에서 소비인구로 전환될 때 GDP는 어떻게 됳까?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에서는 2차 베이비 부머의 은퇴로 2024∼2034년 기간 중 경제성장률이 0.3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노동력을 주요 독립변수로 보는 생산함수에서 베이비 부머의 은퇴는 당연히 GDP를 감소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베이비 부머가 은퇴연령을 늦추면 GDP 감소를 완화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가능하자면 베이비 부머가 생산적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을 때이다. 최근 6월의 고용동향이 보여주듯 청년층과 40대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가정은 무모한 것이 될 수 있다. 정부 예산으로 만드는 노인 일자리라면 더더욱 큰 의미가 없다.
 
심각한 저축률 감소도 우려되는 현상 중 하나다. 가계순저축률이 2015년 7.5%에서 2018년 4.6%까지 하락했다가 2020년에는 다시 11.4%로 늘어났다. 이후 다시 반전을 보여 2023년에는 4.0%로 뚝 떨어졌다. 일반적으로는 노인인구비율이 늘어나면 저축률은 하락한다. 저축률의 하락이 노인인구비율에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베이비 부머가 소비인구로 전환되면 저축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는 낮다. 저축률의 하락이 소비성향이 높아짐을 의미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베이비 부머의 소비여력이 과거 노년세대보다는 높겠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소비를 꽁꽁 얼어붙게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베이비 부머의 이동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국민연금은 아직 적립기금이 있어 2050년대까지는 현행 제도를 유지해도 연금 지급이 가능하지만 이후에 적립기금이 소진되면 초저출산에 따른 청장년인구의 급감으로 당시 근로세대의 노년부양부담은 폭발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과 같이 적립금이 아예 준비되지 않은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부담은 더욱 심각하다. 지금부터 이에 대비해도 늦은 감이 있는데 연금개혁의 진척 속도는 하세월이고, 건강보험 등 제도는 근본적 개혁의 움직임조차 미약하다.
 
베이비 부머의 은퇴로 악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이비 부머가 은퇴하면 일자리 공백이 생긴다. 베이비 부머가 차지하고 있던 엄청난 일자리가 쏟아져 나온다. 인사 적체가 풀리고, 만성적 청년 실업 문제가 해소되고, 조직구조가 활력을 찾을 수도 있다. 단카이 세대가 은퇴한 이후 일본의 대졸 실업 문제가 일소되기도 했다. 다만 경제가 계속 잘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만성적인 경기 침체에 빠지면 이것도 기대난이다. 산업에서도 새로운 트렌드가 조성될 전망이다. 베이비 부머의 은퇴와 함께 여행, 스포츠, 예술 등 여가 생활 및 보건의료부문의 소비 비중이 확대될 것이다. 이른바 고령친화산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향후 20년은 베이비 부머가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주도적 세력이 계속 유지될 것이다. 베이비 부머는 고도 성장을 주도했고 대량 소비 사회를 열었다. 그리고 베이비 부머가 우리나라를 위해 할 일은 아직 남아 있다. 우리나라를 성장 지속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마무리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 세대의 이해를 과감히 버리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해 그리고 미래 한국을 위해 베이비 부머의 부모가 그랬던 것과 같이 또 한 번 더 희생하는 과정을 통하여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