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칼럼] '책임'은 빠진 학생인권조례 …교권과 균형 맞추자
2024-07-08 18:52
지난 6월 초 전주에서 초등 3학년 학생이 담임선생님과 교감선생님에게 욕설하고 심지어 뺨을 때리는 등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학부모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교사를 학교폭력으로 고발하겠다는 으름장도 놓았다고 한다. 작년에 서울 서이초 교사 순직 사고 후 전국 교사들의 분기로 개정되어 올해 3월부터 시행 중인 '교권 보호 4법'(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으로 교권 침해 현상이 개선될 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걸었는데 허탈할 뿐이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이 올해 스승의 날을 앞두고 실시한 '전국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서 '교권 보호 4법 개정 후 근무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는 답변은 4.1%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충남과 서울시의회가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전국 17개 시도 중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한 시도는 7곳, 주민 발의로 시행을 추진 중인 시도는 7곳, 조례 미제정 시도는 3곳이다.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침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은 인과관계를 외면하면서 시도 의회에서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지 못하도록 국회에서 법률로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도입한 학생인권조례는 모든 교육활동에서 학생 인권을 우선 보장하고, 체벌을 금지하고 두발과 복장 등에 과도한 규제를 폐지하여 긍정적 반응을 일으켰다. 각 지역마다 학생인권조례에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주요 내용으로 체벌 금지,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 강제 금지, 두발과 복장 등 자기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 휴대전화 금지 불가, 양심에 반하는 반성문과 서약 강요 금지,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이 규정되어 있다. 대부분 시도의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의 ‘권리’와 ‘자유’만 규정할 뿐 미국 등에서 규정된 학생의 ‘책임’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최근에 일부 시도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와 보호자를 포함한 ‘학교 구성원’ 또는 ‘학교 공동체’의 인권을 명시한 것은 고무적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학부모인 중장년층이 학생 시절에 교사들에게 당했던 체벌과 인권 유린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 조례가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학생인권이 개선되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의 긍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학생의 휴식권’과 ‘폭력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오남용됨으로써 교권이 추락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교사의 수업 중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우거나 학생의 비행을 훈육하여 언어폭력 및 아동학대로 고발당하거나, 학생과 학부모의 폭력에도 교사는 손발을 묶인 채 수동적인 방어만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 결과 교권이 추락 또는 실종되는 사태에 이르면서 교사의 훈육은 물론이고 교육마저 사라지고 있다. 학생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나 비행을 보고도 학폭교사로 고발당할 것을 우려하여 못 본 척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사회와 학생 및 학부모가 교사를 열정 없는 월급쟁이 지식 전달자로 만들고 있다.
작년 8월 글로벌 교육관련단체의 OECD 회원국 대상 교사 위상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은 35개국 중 6위로 높은 편이고 영국 13위, 미국 16위, 독일 21위 등이었다. 중국이 1위이고 대체로 서구권 국가에서 교사 위상이 낮은 편이었다. 이처럼 낮아지는 교사의 위상과 교권 추락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영미 등 선진국도 교권 확보에 골몰하고 있다. 영국은 2006년 '교육 및 검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학생이 수업 진행이나 안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동을 할 경우 학교와 교사가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학생에 대한 처벌, 물리력 행사 및 수색에 관한 권한을 강화하였다. 미국은 2001년 교사보호법(Teacher Protection Act)을 제정하여 심각한 교권 침해가 발생하면 가해 학생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있으며, 교사의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은 최소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학교에서 폭행당하는 교사들이 있지만 법으로 엄정하게 보호받는다. 게임기를 빼앗기고 교사를 폭행한 17살 학생은 ‘1급 가중 폭행’으로 기소되었는데, 최대 30년형이 가능한 중범죄에 해당한다. 수업 중 교사를 촬영하거나 교사가 위협받을 경우 교내에 상주하는 ‘학교 경찰’을 부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학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법을 어겼기 때문에 수갑을 채워서 연행한다. 아무런 권한도 주어지지 않은 채 교내를 순찰하는 우리나라의 ‘학교 지킴이’와는 위상과 역할에서 차원이 다르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교권, 즉 교사의 수업권과 훈육권이 실종되어 우수한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데에도 역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2023년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지난해 고2 학생의 경우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수학은 16.6%, 국어는 8.6%로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기에 누적된 학습 결손과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교사들의 소극적인 학습지도의 복합적인 결과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는 매년 중3과 고2 학생 대상으로 실시하여 우수학력, 보통학력, 기초학력, 그리고 기초학력 미달 등 4단계로 진단한다. 교권이 추락한 상황에서 수업시간에 소극적으로 지도할 수밖에 없다 보니 기초학력 저하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3월부터 시행 중인 개정된 '교권 보호 4법'에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 보호,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의 교육활동 보호,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강화, 보호자의 권리와 책임 간의 균형 의무 등을 담고 있어서 다행이다.
최근에 논란이 벌어지는 학생인권조례의 존치나 폐지가 학생 인권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여 학생 인권을 예전 상태로 되돌리자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다만 학생인권조례에 대하여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몰이해로 인하여 교권 실종에 이르게 된 현실을 개선하면 된다. 이제 학교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방안으로 교권과 학생 인권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첫째, '교권보호 4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학생과 학부모가 교권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면 엄정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미국과 같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집행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의 수업권과 훈육권이 발휘될 수 있도록 ‘사생활의 자유’와 ‘학생의 휴식권’ 등을 개정해야 한다. 둘째, 범야권이 주장하는 학생인권조례의 법제화보다 '교육공동체 3주체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서울시 등에서 시행 또는 추진 중인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와 보호자를 포함한 포괄적인 범주의 인권 조례나 법률로 개선되어야 한다.
'교권보호 4법' 등 교권 보호를 위한 법률적·제도적 보완에 이어 그것의 엄정한 집행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고수하면 교권 실종은 완결된다. 교권이 회복되어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는’ 삭막해진 학교가 다시 진정한 교육의 장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란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어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