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이공계 국가석학조차 떠나보내는 대한민국
2024-07-08 06:00
"정년이 없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 올해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인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는 수상 소감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과학계에선 정년이 다시금 큰 화두다. '국가석학'인 이기명 고등과학원 부원장이 다음 달에 중국 베이징수리과학·응용연구소(BIMSA)로 자리를 옮기다는 소식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부원장은 우주 기원을 연구하는 '초끈이론' 전문가이자 국내에서 손꼽히는 이론물리학 석학이다. 빼어난 연구 성과와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국가석학(Star Faculty)으로 선정됐고, 2014년에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이 부원장이 중국으로 터전을 옮기는 이유는 정년 때문이다. 1959년생인 이 부원장은 여전히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년 제도 탓에 더는 고등과학원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없다. 국가석학·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도 소용없었다.
이런 상황은 국제 보고서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유출 지수는 △2020년 5.46점(28위) △2021년 5.28점(24위) △2022년 4.81점(33위) △2023년 4.66점(36위)으로 점차 악화하고 있다. 두뇌유출 지수는 최대 점수가 10점이다. 0에 가까워질수록 고급인력 유출이 심각한 것으로 해석한다. 수준급 엔지니어 공급 정도 역시 2020년 25위에서 2021년, 2022년과 2023년에는 42위로 내려앉았다.
최근 우리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인공지능(AI)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지난 4월 AI 3대 국가(G3) 도약을 목표로 'AI 반도체 이니셔티브'를 수립했다. 이를 뒷받침할 '디지털 100만 인재 양성' 계획도 일찌감치 내놨다. 하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는 지난해 기준 한국이 인도와 이스라엘에 이어 AI 인재 유출이 가장 많은 나라로 꼽았다. 미 시카고대 폴슨연구소 산하 싱크탱크 매크로폴로는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 가운데 40%가 다른 나라로 떠난다고 했다.
투자는 성과를 내고 있다. 폴슨연구소가 2022년 세계 상위 2%에 해당하는 AI 엘리트 연구자 국적을 분석한 결과 중국 출신이 26%로 미국(28%)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전반적인 과학 수준도 마찬가지다. 네이처의 '네이처 인덱스 셰어'를 보면 지난해 자연과학 연구 영향력에서 중국은 전년보다 21.4% 증가한 1만9373점을 받았다. 미국은 6.9% 줄어든 1만7610점으로 중국에 뒤처졌다.
정부는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기초연구 홀대라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5년도 주요 R&D 예산은 지난해 수준으로 사실상 '원복'했다. 이것만으로 떠나려는 과학인재를 잡을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첨단 과학기술 인재들에게 대한민국 미래가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와 신진 연구자의 성장을 전폭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조만간 이공계 인력 지원 계획이 나온다. 8월에는 정부 R&D 예산안을 확정한다. 정부가 윤 대통령의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킬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