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재난관리도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2024-08-23 06:00
정근영 규제혁신추진단 전문위원
곡돌사신(曲突徙薪)이라는 말이 있다. 한서(漢書) '곽광전'에서 유래한 말로 '굴뚝을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부엌 아궁이 옆에 있는 섶나무를 먼 곳으로 옮긴다'는 의미로 화근을 미리 없애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도 '위령공' 편에서 "사람이 먼 장래를 걱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미래에 근심걱정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토끼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만드는 것처럼 재난안전도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재난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에서 획일적으로 관리할 게 아니라 지역별·자치단체별로 특성에 맞게 자율성을 부여해 합리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왜냐하면 지역별로 특성도 다르고 재난 발생 가능성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재난은 반드시 과거에 일어났고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재난을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면 경상도 쪽은 지진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강원도는 산불이나 산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타 지역보다 높으며 제주도는 자연재난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특성을 감안해 훈련도 하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훈련은 어떤 중앙의 지침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 특성화해야 하며 사전에 계획하고 하는 훈련이 아닌 불시에 실시해 실질적 현장 대응능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재난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재난관리의 기존 생각과 사고에서 벗어나 이제는 발생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우리는 규제를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과거 씨랜드 화재 때도 그랬지만 근로자들이 어둠 속에서 대피로를 찾지 못해 피해가 컸다. 평소 안전교육 때 반드시 대피로를 숙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연재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사유지라서 장마철을 앞두고 보수·보강 등 손을 못 대는 일이 있는데 주인이 반대해 땅값이 떨어진다고 땅주인이 거부하면 손을 못 대는 현실이 많다. 만약 그런 취지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결국 피해가 커지게 되는데 과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필자는 몇 년 전 일본 도쿄도의 대심도 터널을 시찰할 때 질문을 하면서 겸연쩍었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대규모의 시설물을 설치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갔을 텐데 어떻게 예산을 확보했는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어리석은 질문'이라며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안전을 볼 때는 시(視)가 아닌 관(觀)과 찰(察)의 안목으로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한번 지적된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추적해 조치해야 한다.
최근 건축물에 이아소 핑크라는 단열재가 있다. 쉽게 설명하면 극장에서 많이 사 먹고 있는 팝콘을 떠올리면 된다. 안에 들어 있는 팝콘이 스티로폼을 뻥튀기한 것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난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게 문제다. 세종시에 지은 일부 정부청사에도 쓰였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반드시 검사받은 단열제품으로 시공해야 하며 내화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조금 싸다고 해서 사용하면 훗날 그에 따른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후손에게 안전을 물려주려면 지금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야 한다. 재난관리라는 표현을 우리는 쓰고 있는데 재난을 관리한다는 말은 결국 준비한다는 말이다.
과거 '재난은 100년 빈도' 이런 말을 쓰곤 했는데 오늘날은 이 말이 맞지 않는다. 빈도 개념을 바꿔 근본적인 개선을 해야 한다.
아울러 재난은 잊고 있을 때 발생하는데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고 노력하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 그럴 때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여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