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연의 B스토리] 5000번 우승한 이탈리아의 야생마...스포츠카의 끝판왕 '페라리'

2024-06-27 06:00

"우리(포드)는 페라리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페라리 1년치 생산량이 우리 하루 생산량보다 적어요. 우리가 휴지에 쓰는 돈만 해도 페라리 총생산량보다 많을 걸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엔초 페라리를 최고의 자동차 개발자로 기억할 겁니다. 차를 많이 팔아서일까요? 아닙니다. 그 차의 의미 때문이죠. '페라리는 르망을 재패한다.' 사람들은, 바로 그런 우승을 원하죠."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틸컷 [사진=네이버 이미지 검색]

2019년 영화 '포드V페라리' 속 명대사다. 세계 3대 레이싱 대회인 르망24에서 포드가 페라리를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긴 순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페라리가 왜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인지, 그리고 당시 세계 자동차 패권을 장악한 포드가 왜 페라리를 꺾기 위해 광적으로 집착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페라리는 수억원을 호가하는 가격과 고성능 스포츠카라는 이미지 때문에 분명 쉬운 브랜드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자동차보다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성 향수 브랜드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페라리는 섹시한(?) 남성들의 향기라는 이미지가 있다). 평범한 레이싱 선수에서 출발해 서킷 밖으로 뛰쳐나와 세계 스포츠카 시장을 재패한 '이탈리아의 야생마', 페라리(Ferrari)가 궁금하다.
 
[사진=페라리]

◆레이싱 대회 5000번 우승의 기록...이탈리아의 '도약하는 말'
 
페라리는 레이스와 자동차에 평생을 바친 엔초 페라리가 1947년 창립했다. 1898년 2월 18일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모데나에서 태어난 페라리는 1920년부터 레이서로 활동했고, 1929년 본인의 이름을 딴 경주팀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를 창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F1을 비롯한 전 세계 레이스에서 5000회 이상 우승하는 등 경이로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수천번의 레이싱을 통해 얻은 주행 기술력은 최고의 차를 만드는 데 고스란히 반영된다.

페라리의 상징은 뛰어오르는 듯한 모양의 말을 형상화한 '도약하는 말'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국가적 영웅이었던 전투기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자신의 비행기에 그려 넣었던 것으로, '바라카의 말(Baracca’s Cavallino)'로 불린다. 엔초 페라리가 1923년 사비오(Savio) 레이스에서 첫 우승을 한 모습을 본 부모님이 그의 행운을 기원하며 도약하는 말 휘장을 선물한 것에서 유래했다. 
 
엔초 페라리는 말의 꼬리를 올리고 배경에는 그의 고향 모데나를 상징하는 노랑색을 칠해 브랜드 로고를 만들었다. 검은 테두리 위에는 초록과 흰색, 빨간색을 더해 페라리가 이탈리아 출신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레이싱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상징하는 알파벳 'SF'도 새겼다. 로고는 1932년 엔초 페라리가 출전한 경기에서 처음 사용됐고, 이후 페라리 125S(1947년)에 현재의 사각 프레임 엠블럼이 처음으로 사용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 설립자인 엔초 페라리(Enzo Ferrari)와 페라리의 엠블럼 [사진=페라리]

◆성능에 대한 광적인 집착...예술품으로 진화한 스포츠카

 페라리의 매력은 독보적은 주행 성능과 아름다운 외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차량 개발에 몰두한 엔초 페라리는 1947년 차체 디자인 및 제작업체 '카로체리아 스칼리에티(Carrozzeria Scaglietti)'와 파트너십을 맺고 페라리만의 견고한 차체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해 5월 페라리 이름을 단 첫 번째 차량이자 12기통 모델인 '페라리 125S'가 탄생했다. 이 차량은 페라리 12기통 엔진의 시초이자 페라리가 레이싱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상징적인 모델이다. 페라리 125S는 레이싱 데뷔 2주 만에 로마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1952년에는 스포츠카의 거장이자 당대 최고의 자동차 디자인 기업으로 꼽히는 '피닌파리나'와 손잡고 스포츠카를 예술품이자 명품 브랜드로 진화시켰다. 1972년에는 페라리의 모든 경주용 차량 및 로드카의 성능을 극한의 조건에서 테스트하는 '피오라노 트랙(Fiorano Track)'을 만들기도 했다.

설립자인 엔초 페라리는 피오라노 서킷 개막식에서 서킷 내 주행 테스트를 높은 점수로 통과하지 못한 페라리 차량을 트랙에 올리거나 양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완성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죽을 때까지 기술력에 집착한 그는 1987년 창립 40주년 기념 모델이자 유작인 'F40'을 출시한 후 생을 마감했다.

페라리는 2011년 브랜드 최초의 사륜구동 모델 'FF', 2013년 브랜드 최초의 슈퍼카이자 하이브리드 모델 '라페라'를 내놓으면서 한 단계 점프한다. 페라리의 모든 차량은 마라넬로에 위치한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으며, 슈퍼카의 명성 답게 개개인의 취향과 특성을 살려 주문 제작하는 오랜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페라리 e-빌딩 전경 [사진=페라리]

◆전동화로 제2의 도약...2030년까지 내연기관 비율 20% 미만 축소
 
페라리는 오는 2030년 완전 탄소중립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완성한다는 전략이다. 전체 탄소 배출량의 15%가 공정 단계에서 발생하는 만큼 2030년까지 기존 생산공장을 탄소중립 공장으로 전환한다. 이를 위해 마라넬로 공장 내 1㎿ 규모의 고체산화물 연료전지공장이 건립됐다. 이 공장은 페라리 생산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5%를 공급하는 동시에 연료 소비량과 배출량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CHP(Combined Heat and Power) 열 병합발전 시스템과 비교해 가스 요구량이 약 20% 절감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체 에너지 생산을 확대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마라넬로 공장 옥상에 새로운 태양광 발전 시스템도 구축했다. 최근 4개 중 첫 번째 섹션의 설치가 완료돼 운영을 시작했다. 4개 섹션의 설치가 완료될 경우 총 3800개의 태양광 패널이 최대 1535㎾p의 전력을 공급한다.

모든 태양열 설비 시스템이 완전히 가동될 경우 페라리는 연간 162만6802㎾h의 에너지를 자체 생산할 수 있고, 연간 740톤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페라리는 향후 25년 동안 1만8500톤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페라리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확대해 2030년까지 차량 한 대당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최소 50% 감축한다는 목표다. 구체적으로 2026년까지 전체 라인업의 40%를 내연기관 모델로, 나머지 60%는 하이브리드 및 순수 전기 차량으로 구성한다. 2030년까지는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 파워트레인 비율을 각 40%로 확대하고, 내연기관 비율은 20%로 줄일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