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한일협력'에 대한 일본의 생각은

2024-07-01 06:00
북-러 밀착에 동북아 위기 높아지는데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필자는 최근 한·일협력에 대한 일본의 생각을 조사하기 위해 도쿄를 다녀온 바 있다. 6월 중하순의 도쿄는 흐린 날씨가 많았다. 장마가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은 흐렸고 때때로 사나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필자의 과거 경험으로 보면 도쿄의 여름은 정말 가혹하다. 그래서 흐리고 다소 서늘한 날씨가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도쿄에 머무는 동안 일본의 TV에서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 소식이 크게 보도되었다.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협정이 ‘동맹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냐의 문제가 크게 주목되었다. 이에 대한 일본 미디어의 분석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두 나라는 이미 이전에도 비슷한 협정을 체결한 바 있었고 어차피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나라들이라서 협정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일본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이 자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우려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대만과 한반도에서 유사 사태가 동시에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우려가 감지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일본의 정치 상황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일본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정치와 돈의 유착’ 관계를 놓고 기시다 총리가 궁지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힘있는 정치인들, 특히 자민당 의원들은 기업과 단체로부터 정치자금을 조달하고 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시 정치권력을 얻는 방식으로 권력을 재생산해왔다. 정치자금의 조달 방법이 불투명하고 왜곡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한 기시다 정부는 정치자금법을 개정하여 이 문제에 대응하였으나 ‘개악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총선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자민당 내에 확산되면서 총리 퇴진 압박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일본 사회를 이끌어 갈 정치세력의 보수성과 도덕적 병폐는 여전하였다.

경제적 사정은 어떠한가? 무엇보다도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특히 서양 관광객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도쿄 중심부의 식당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반드시 서양 관광객이 눈에 띈다. 아마도 엔화의 하락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서비스 수요에서도 관광객 영향은 매우 크게 느껴졌다. 한 택시 기사는 자기 손님의 절반 정도가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말하였다. 이제 외국인 관광객 소비 없이는 일본의 내수가 살아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그만큼 외국인의 유입과 소비는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다만 지속되는 엔저가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이지는 않다. 물가상승을 통해 일본 서민생활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서민들이 많이 찾는 ‘타코야키’가 요즘 수난을 당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엔저로 인하여 북서아프리카에서 가져 오던 문어의 수입량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본 수입업자들은 이제 문어 매입에서도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없는 처량한 처지에 몰리고 있다. 도쿄도 지사 선거에서는 유력 후보들(고이케 현지사와 렌호 후보) 사이에서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었다. 출산 장려를 중시하는 현지사와 출산 이전에 청년층의 실질소득을 높여야 한다는 후보자 간의 논쟁이다. 그만큼 저출산과 청년층의 소득환경의 악화가 경제문제의 핵심이다. 여기에 고령자들의 연금 문제가 늘 관심의 대상이다. 물가상승으로 인하여 연금의 실질가치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노후의 연금을 충분히 확보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대다수 일본 고령자들은 그나마도 빠듯한 연금이 물가상승으로 인하여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값싼 가게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어느 노인의 이야기가 애처롭다. 그는 하루에 4~5곳의 슈퍼마켓을 찾아다닌다. 상품마다 저렴한 곳이 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와 같은 여건은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입장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 조사에서 필자가 느낀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은 한국의 방위산업과 협력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은 방위산업이 아직 한국에 비해 발달해 있지 않다. 무기를 해외에 수출하기는커녕 자국 내 수요조차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산업정책을 동원하여 방위산업의 기반을 조성하려 하고 있으며 한국의 방위산업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방위비를 GDP의 1%에서 2%로 증액해 나가고 있으며 이렇게 증가한 예산을 통해 방위산업의 내수기반을 조성한다는 방침인데 여기에 한국 방위산업의 경험과 기술이 유익하다고 보는 것 같다. 실제로 협력할지 여부를 떠나 일본에 이러한 협력수요가 있다는 점은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둘째, 통화협력에 대한 일본의 수요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일본의 한 경제 전문가는 현재 100억 달러 수준의 한·일 통화스와프를 300~400억 달러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일본 거시경제환경의 악화가 있다. 일본은 이미 거액의 누적된 국가부채를 안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하여 재정적자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이는 일본 통화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일본의 경제학자들은 자국 통화가치를 방어하기 위한 장치로서 주변국과의 통화스와프가 유용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한·일 통화스와프를 강화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이다. 이처럼 한·일 통화스와프는 한·일 양국의 쌍방적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변하고 있다.

셋째, 미국의 변덕스러운 정책변화에 대해 한·일 양국이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본은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약화되면서 정책의 일관성도 약화되고 있다. 변덕스러운 미국의 정책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한·일 양국 모두 고심하고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갑작스러운 방위비 증액 요구나 대중 수출규제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나의 방안은 한국과 일본이 사전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협의하고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점에서 분명히 한국과의 협력 수요가 있음이 확인된다.

넷째, 일본은 한·일 양자협력보다도 소다자 협력에 더 많은 관심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두 나라만이 협력하는 경우보다 한·일 양국이 주도하면서 다른 국가들을 더 많이 포함시킬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개발협력에서 한·일이 공동으로 개도국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사례이다. 또한 아세안이나 호주 등에서의 탈탄소 협력에 대한 일본의 수요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외에도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경험 공유, 인구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해외 노동력 확보 경쟁의 상호 조율, 반도체 산업 생태계 강화, 공급망 취약성 공동 연구,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경험과 정책의 공유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 전문가들의 협력 수요가 제시되었다. 한·일협력을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데 참고가 되는 대목이다.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