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러시아대사 "서로 피해 주는 것 멈춰야…관계 회복 발걸음 내딛어야"

2024-06-11 11:26
"실용적 한국인들, 젤렌스키 '평화 공식'은 무산된 계획 같다고 생각"
"韓,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시 한러 관계 심각하게 손상"
서로 상처주는 일 멈추고, 문화 인적 교류 시작으로 관계 회복 시작해야
현재 한반도 긴장 고조…군사적 상황 위험
韓 기업들, 향후 러시아 투자 가능성에 "여정은 험난할 것"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사진=주한 러시아대사관 홈페이지]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는 한국과 러시아가 서로 피해 주는 것을 멈추고 관계 회복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고 10일(이하 현지시간) 공개된 러시아 매체 RTVI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우선 15~16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제1회 우크라이나 평화정상 회의에 한국 대표단이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를 묻는 질문에 "아직 그러한 소식은 없다. 전체적으로 한국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내가 보기에 한국의 관심은 우크라이나 분쟁이 빨리 끝나는 데 있다. 그들은 예전처럼 분쟁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실리적인 한국인들은 젤렌스키가 제안한 '평화 공식'이 분쟁에 끝을 가져오지 않는 '사산된 프랑켄슈타인(무산된 계획)'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이 낮는 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고, 한국 파트너들이 러시아의 입장을 잘 이해하기를 바란다"면서도 "만일 (한국이) 이 레드라인(경계선)을 넘는다면 관계는 심각하고 장기적으로 손상될 것"이라고 경고성 목소리를 전했다. 그는 현재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난기류에 비유하며, "비행기가 난기류를 통과할 때 우선 임무는 순조롭게 비행하고 새롭게 고도를 높일 수 있도록 비행을 안정화시키는 것"이라고 관계 안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반복해서 언급했지만 우리는 국제법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준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의 관계가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지금 북한은 국제 무대에서 우리에게 가장 우호적인 국가들 중 하나이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노비예프 대사는 지난달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도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하는 "(북한과)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그야말로 이상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관계 회복 

아울러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국과 러시아가 서로를 피해 주는 일을 멈추고 문화와 인적 교류를 시작으로 관계 회복을 위한 조그마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며, 특히 한-러 간 직항편 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는 한국이 대러 제재도 중단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은 스스로의 피해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제재를 더 확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평했다.

최근 러시아는 한국에 대해 강경했던 태도를 바꿔 관계 개선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상트페테르부르크국제경제포럼(SPEIF)를 앞두고 세계 주요 뉴스 통신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은 한국에 감사를 표하며, "지난 수십 년간 이룩한 (양국) 관계 수준을 부분적으로나마 유지해 미래에 회복할 수 있기를 매우 희망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드미트리 체르니셴코 러시아 부총리 역시 SPIEF에서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및 한국 등과의 항공편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국과 러시아 간 관계가 얼마나 빨리 회복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 측은 일단 시기가 무르익으면, 즉 우크라이나 위기가 끝나는 대로 관계를 빨리 회복하기 원한다는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며 "관건은 '특별군사작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것이 언제 끝날지, 그리고 이후에 서방이 우리에게 어떤 자세를 취할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더욱 독립적이고 능동적으로, 전체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한때 다양하고, 생산적이며, 상호 호혜적이었던 우리의 전방위적 관계를 회복하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는 소망을 전했다. 
 
한반도 긴장 고조

반면 지노비예프 대사는 최근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군사적 상황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로는 한·미 동맹에서 핵 협력 가능성 및 한·미 군사 훈련에서 전략적 자산 활용 증가 등을 지목했다. 이에 북한의 군사적 역량을 확충하는 것은 한국을 점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방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북한은 한국이 원하고 있는 독일식의 흡수 통일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러한 식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며, 북한 측에서는 "우리 영토를 침범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도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한편 지노비예프 대사는 작년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매각을 비롯, 러시아 내 한국 기업들의 활동이 크게 둔화된 것과 관련해서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한국이 서방의 제재에 동참함에 따라 러시아를 상대로 비우호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국가 리스트에 포함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반복해서 말하지만 우리의 무역, 경제, 투자 및 기타 협력은 냉각된 것이지 파괴된 것이 아니다"며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RTVI는 러시아가 자체적인 자동차 및 전자 생산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해당 분야의 최대 투자국인 중국은 수출만을 선호하고 러시아 내 실제적 투자는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후 러시아 내 한국 첨단 기업들의 러시아 투자가 재개될 수 있을 지 묻는 질문에 지노비예프 대사는 "전망은 밝지만, 여정은 험난할 것"이라며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길 빈다"는 희망 섞인 답변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지노비예프 대사는 차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푸쉬킨, 체홉 등 러시아 예술가들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을 언급하며 러시아 문화를 한국에 전파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