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이사 충실의무 확대' 상법 개정, 회사법 근간 흔들 것"

2024-06-10 14:35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를 넘어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추진되는 상법 개정이 현실화하면 국내 회사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의뢰해 작성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전제로 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인정 여부 검토' 보고서를 10일 공개했다.

정부는 이달 의견수렴에 이어 이사의 충실의무가 규정된 상법 제382조3을 개정할 계획이다. 현행법은 이사의 의무에 대해 '법령과 정관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미국 모범회사법과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의 회사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개정 작업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이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하긴 했지만 이는 회사 이익이 곧 주주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문구에 불과하다. 이사가 회사 이익과 별개로 주주 이익에 충실해야 하는 규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현행법 체계상 이사가 회사와는 별도로 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를 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상법상 이사는 주주총회 결의로 회사가 임용한 회사의 대리인이고, 이사의 보수도 정관이나 주총 결의로 회사가 지급한다. 결국 민법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는 위임계약을 맺은 회사에만 한정된다.

개정에 따라 다양한 경영상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소수 주주는 배당 확대나 당장의 이익 분배를 요구하고 지배주주의 경우 이익을 회사에 장기간 유보할 것을 주장하는 등 주주 간 이해관계 상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가 이러한 이해충돌을 합치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이사는 다양한 주주들로부터 충실의무 불이행을 빌미로 손해배상소송을 당할 수 있다.

다수 주주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주식회사 경영권은 '자본 다수결 원칙'에 따라 출자 비중이 높은 주주가 주로 갖는데 현재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은 이러한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소수 주주가 누리는 이익이 이들의 주식 지분보다 과대평가될 수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권 교수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장은 현실화시킬 수 없는 이상적 관념에 불과하다"며 "이를 상법에서 강제할 경우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경영 판단을 지연시켜 기업 경쟁력이 저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한국경제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