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확증편향과 '세기의 이혼'

2024-06-10 14:40

[사진=아주경제DB]


올해 초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는 '2024년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확증 편향’을 선정·발표한 바 있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지만, 자신의 견해를 반박하는 증거는 찾으려 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흔히 통용되는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는 말과 같은 셈이다.
 
해당 학회가 확증 편향을 선정·발표한 이유는 총선 등 국내 정치 상황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을 보고, 확증 편향이 지배하고 있는 곳은 어쩌면 재판부일 수도 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먼저 노태우 대통령이 SK그룹 측에 전달했다는 비자금 300억 부분이다. 과거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했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사실을 쪽지 몇 장과 어음으로 ‘사실’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명제 중 하나가 ‘없는 것을 없다고 증명하는 것’인데, 받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받았다’고 판단한 부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동안 유행했던 조세호의 항변이 떠오른다.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최종현 선대회장이 최 회장에게 증여한 대한텔레콤 인수 자금 2억8000만원을 부정한 것은 더욱 가관이다. 과세당국에 ‘증여세’를 납부한 사실까지 존재한다고 알려졌음에도, 단순히 인출 시점의 차이와 물리적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증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상 어느 누가 증여 받은 재산도 아닌데 증여세를 납부하겠는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판단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자금이 유입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불법 자금을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시킨 점, 이혼 당사자가 아닌 부친의 비자금으로 형성된 재산에 대해 딸의 기여를 인정한 점 등 일일이 열거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많다.
 
어쩌면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노 관장 측 주장을 그대로 적용한 것은 아닌지, 확증 편향에 빠져 한쪽 입장에 치우친 판결을 한 건 아닌지 강하게 의심이 드는 이유이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소송의 양 당사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덤으로 사법부는 불법 자금을 보유한 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주고, 잠재적 지지까지 얻었다.
 
사법부에서 꼭 유념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해당 학회에서 당부한 사항으로 대신한다.
 
"확증 편향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확증 편향의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 이후에는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증거에 반대되는 증거를 찾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인다면, 보다 올바르고 균형 잡힌 판단과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