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에 치이는 리모델링··· 조합 해산추진·시공계약 해지 잇따라
2024-06-04 17:08
리모델링 사업장 곳곳에서 시공 계약을 해지하거나 조합을 해산하고 재건축으로 선회하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밑그림이 속도를 내는 등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 기조가 확대되면서 리모델링 사업의 추진 동력이 약화된 탓이다. 정비업계에서는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의 노선 갈아타기를 두고 각각의 사업 실현 가능성과 사업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4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는 일부 소유주들을 중심으로 리모델링 조합 해산 추진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조합을 꾸리고 리모델링을 추진해 왔으나 2022년 수직증축 공법에 대한 부적합 판정을 받고 시공사가 시공권을 반납하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이달 1일 재건축준비위원회가 1차 주민설명회를 열어 준비위 출범을 알렸고, 리모델링 조합 해산 여부를 묻는 총회도 앞두고 있다. 현재 재건축 사업 동의율이 소유주 3분의 1을 넘어섰다는 게 재건축준비위의 주장이다.
지난 3월 권리변동계획 확정 총회를 마무리하며 리모델링 사업의 8부 능선을 넘은 경기 안양시 평촌 목련2단지도 일부 재건축 선회 요구에 잡음이 일고 있다. 리모델링 분담금이 당초 예상보다 2억원 가까이 늘어난 4억7900만원(전용 58㎡ 기준)으로 산정된 것이 단초가 됐다. 재건축사업추진위는 이달 1일 설명회를 열어 리모델링 조합 해산을 위한 법적 절차와 재건축 추진 방향 등을 공유했고, 리모델링 조합은 재건축 추진시에도 이 같은 분담금을 피할 수 없다며 계획된 일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성동구 옥수극동아파트 리모델링 조합도 시공사인 쌍용건설의 대여금 지원 중단으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계약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 조합은 올해 초부터 사업을 대신 맡을 다른 시공사들과 접촉해 왔으나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모델링을 추진해 오던 단지에서 잡음이 이어지고 있는 데는 올들어 정부와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에 집중된 규제 개선책을 내놓고 있는 데다 ‘1기 신도시 특별법’으로 불리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며 리모델링 사업의 추진 동력이 떨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현장에서는 기존 리모델링 추진하던 단지 곳곳에서 갈등이 심화되며 정비사업 진행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사비 급등으로 재건축 사업도 추진이 어려워지고 있어 사업장마다 적합한 정비방식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관련 인센티브가 많아지며 사업 방향을 선회하려는 움직임이 대두되지만, 사업성 악화로 재건축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은 것도 현실”이라며 "또 지금까지 추진해온 것을 뒤엎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그만큼 사업 기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에서 용적률, 대지지분 등을 바탕으로 재건축 사업이 가능한지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모델링 주택조합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을 하려면 보통 용적률 200% 이하, 대지지분 15평 이상을 충족해야 하는데,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인 곳은 이를 갖춘 경우가 드물다"며 "주거환경 개선 측면에서 리모델링이 한계가 더 크지만 리모델링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