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인생한방'에 날린 주식 리딩방 체험기

2024-05-19 17:47
한줄 링크로 시작..."주식으로 큰 성공해 봉사" 라더니
비상장주식 매입 권유 안 따르자 '본색'
돈·목숨 잃은 50대 가장 '남 얘기' 아니었다

 
명진규 증권부 부장

네이버 게시판 댓글에 있던 <저도 큰 도움 받았습니다. 추천드립니다>라는 메시지와 한줄의 링크가 시작이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연결된 리딩방은 대단한 정보를 준 것은 아니었지만 재치 있는 입담이 일품이었다. 매일 오후 2시에 그날의 뉴스, 증시를 정리하며 종목을 추천하는 그 성실함이 마음에 들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추천하는 종목들도 급등했다. 정부 정책이나 글로벌 증시에서 주목 받는 테마들의 그래프를 띄워가며 어느 정도 떨어지면 매수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수익이 났으면 인증해 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의 계좌 수익률을 캡처해 보내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리딩방 회원수도 늘었다.

이쯤 되자 운영진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운영진은 어떤 종목을 함께 매수하자고 권하거나 어디에 투자하자고 얘기도 하지 않는다. 매일 뉴스와 종목을 분석하고 진단한 결과만 얘기한다. 왜 이런 일을 하냐는 질문에 주식으로 큰 성공을 거둬, 이제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머리로는 믿지 않았지만 귀는 솔깃해진다. 리딩방 사기로 세상이 시끄럽지만 나는 당할 리 없다는 자기 확증 편향도 시작됐다.

그러던 어느 날 결말은 찾아왔다. 지금의 10~30% 수익에 만족할 것이냐며 리딩방 운영진이 장광설을 풀어 놓는다. 관심이 있다면 큰 거 한방을 개인톡으로 알려주겠다고 한다. 누가 인생 한방을 싫어할까. 개인톡으로 전달된 내용은 조만간 상장할 비상장주식을 사라는 얘기였다. 장외에서 200원 정도에 거래되는데 2000원에 사란다.

권유에 응하지 않자 본색을 드러낸다. 리딩방 입장료란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 뭘 믿고 사겠냐고 하자 자신을 믿지 않는 이와 함께 할 수 없다며 방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결국 강퇴로 결말을 맞았다.

몇 개월간의 리딩방 체험을 되짚어봤다. 하루 추천하는 종목은 10~20여 개로 이 중 3~4개는 급등했다. 이렇게 급등한 종목은 다음날 자세하게 분석하고 여기서 더 오르면 내 말이 맞지 않냐며 큰소리를 치며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실제 적중률은 10% 내외일 뿐이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주식의 신처럼 보이게 한다.

추천했던 비상장주식은 어떠한가. 즐비한 해외 수주 뉴스는 돈만 있다면 누구든지 기사를 낼 수 있는 곳에서 작성했다. 제대로 된 감사보고서는 2020년이 마지막이다. 수년 전 20명에 달했던 직원 수는 이제 5명도 남지 않았다. 망해가는 곳이다. 수법은 이렇다. 액면가 유상증자를 통해 망해가는 회사의 비상장 지분을 확보한다.

이후 이 지분을 리딩방을 통해 각 개인들에게 팔아치운다. 액면가 100원에 유상증자한 지분을 2000원에 팔려고 했으니 앉은 자리에서 20배를 버는 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법을 짚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주식을 매매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는 피해도 확정되지 않았다. 망해가는 회사가 상장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만 한 사업이 없다. 매일 오후 1시간 정도 떠들기만 하면 투자금의 20배가 넘는 돈을 벌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불법 리딩방은 사라지지 않는다. 제목만 봐도 피식 웃게 만드는 유명인 사칭 피싱과 달리 은밀하고 교묘하게 우리 삶을 파고 든다.

최근 주식 리딩방 사기로 2억원의 재산을 날린 50대 가장이 숨졌다. 얘기를 들어보니 비슷하다. 의심이 믿음으로 바뀌고 믿음이 확신이 됐을 때 그들은 본색을 드러낸다. 주식으로 큰 성공을 이뤄 봉사 차원에서 리딩을 한다는 말을 끝까지 믿었던 것이 그의 유일한 잘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