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면세점·의료관광·크루즈로…유커 흡수 '블랙홀' 될까

2024-05-09 06:00
시진핑의 '국제 자유무역항'…하이난성 르포
한국 대신 하이난行···싼야는 '면세 쇼핑천국'
싼야 '크루즈관광' 기지개···中 3대 크루즈 도시
'의료특구'···美 FDA 승인 특허약도 'OK' 
약·의료기기 이어 건강기능식품 개방 기대


2만1300명. 올해 중국 노동절 연휴(5월 1~5일) 첫날인 1일 하루에만 하이난성 내국인 면세점 12곳을 방문한 관광객(연인원 기준) 숫자다. 일일 매출액만 1억150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217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중국 최대 면세점 기업인 차이나듀티프리(CDF, 중몐)그룹 연간 매출의 80% 이상이 하이난성 지역 면세점에서 나왔을 정도로 하이난성은 중국인이 즐겨 찾는 ‘쇼핑 천국’이 됐다.

올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하이난성을 홍콩에 버금가는 국제 자유무역항으로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지 6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달 23일부터 3박 4일간 둘러본 하이난성은 중국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을 기반으로 면세점 쇼핑부터 크루즈·의료 관광까지 다양한 상품을 내세워 365일 중국 각지의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하이난성 연간 방문 관광객 추이 [아주경제DB]
 
한국 대신 하이난行···싼야는 '면세 쇼핑천국'
중국 하이난성 싼야 시내 CDF 싼야국제면세성 전경. [사진=배인선 기자]


노동절 연휴를 앞둔 지난 4월 25일, 하이난성 싼야시 최대 면세점인 ‘싼야국제면세성(三亞國際免稅城)’을 찾았다.

CDF 그룹이 운영하는 이 면세점은 지하 1층·지상 3층으로 총면적만 12만㎡, 축구장 17개가 넘는 크기를 자랑한다.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에 담기도 힘들다.

2014년 9월 개장 당시 단일 면세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 이곳엔 화장품·향수·액세서리부터 의류·가방·귀금속·전자제품·주류 등 45종 품목의 850여 개 이상 국내외 명품 브랜드 매장이 입점해 있다.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각종 명품 화장품 매장 계산대마다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산시성 시안에서 왔다는 한 쇼핑객은 “입점 브랜드도 다양하고 할인쿠폰 혜택 덕분에 가격도 저렴해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사실 하이난 내국인 면세점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다.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해외 여행이 막힌 중국인들이 하이난 면세점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 

중국 정부도 내수 진작 차원에서 하이난성 내국인 면세점 육성 정책을 내놓았다. 면세 한도를 연간 10만 위안(약 1880만원)으로 높이고, 구매 물품 수령 방식도 고객 편의에 맞춰 선택의 폭을 늘렸다. 공항·기차역·항구 수령은 기본이고, 집까지 택배로도 배송해 주고, 화장품 등 일부 품목은 수량 제한은 있지만 구매 후 직접 수령이 가능하게 했다. 고객이 여행을 마친 후 6개월간은 온라인 쇼핑으로 면세품 구매도 가능하다. 

현재 하이난성에만 무려 12개 면세점이 운영 중이다. 중국인 입장에선 굳이 홍콩이나 한국으로 면세품 쇼핑을 갈 필요가 줄어든 셈이다. 코로나19로 우리나라 면세점이 직격탄을 맞았을 때도 하이난성 면세점은 코로나19 특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 산하 온라인 매체 인민망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포함한 2021~2023년 기간 중 이곳 싼야국제면세성의 누적 매출액만 1064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싼야시 전체 소매판매의 72%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싼야시 관광 수입의 절반 이상이 이곳서 창출됐다.

싼야국제면세성에선 '확장 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면세점 건물 뒤편으로 2026년 완공을 목표로 CDF그룹이 운영할 호텔 2곳도 짓는 중이다. 바이쉐 CDF 싼야 내국인 면세점 부총경리는 “현재 이곳 싼야국제면세성 1곳이 CDF 그룹 연간 매출의 74%를 차지하고 있다”며 “고객이 쇼핑에서부터 식음료·엔터테인먼트·숙박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종합형 쇼핑몰을 조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싼야 '크루즈 관광' 기지개···中 3대 크루즈 도시로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펑황다오의 국제 크루즈항 터미널. 홍콩과 싼야를 오가는 약 2000명 수용 규모의 대형 크루즈선 ‘리조트 월드 원'이 정박해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싼야는 중국 정부가 국제 크루즈 도시로 육성하는 곳이기도 하다. 올 1분기 싼야는 사상 처음으로 상하이·톈진에 이어 여객량 기준 중국 3대 크루즈 기항지로 떠올랐다.

지난 25일 취재진이 찾은 싼야 펑황다오에 위치한 국제 크루즈항 터미널. 때마침 이날 오전 ‘리조트 월드 원(名勝世界壹號)’ 크루즈선이 정박했다. 홍콩에서 싼야를 오가는 이 크루즈선에 타고 있던 홍콩 관광객 2000여 명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터미널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여행사 가이드부터 택시 기사까지 승객을 향한 호객 행위가 한창이다. 주차장에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수십여대의 40인승 관광버스가 가득 들어서 있다. 크루즈선이 이날 저녁 출항하기 전 싼야를 둘러봐야 하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분주해 보였다. 난산 풍경구, 싼야 면세점 등이 주요 관광 코스다.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펑황다오의 국제 크루즈항 터미널에 정박해 있는 대형 크루즈선 ‘리조트 월드 원'  [사진=배인선 기자]

싼야 중앙상업지구(CBD) 관리국에 따르면 올 1분기에만 이곳에 모두 80회가 넘는 국내외 크루즈선이 입출항하며 총 10만명이 다녀갔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5배 늘어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입항이 금지됐던 국제 크루즈선은 지난해 9월 말 운항이 재개된 이후 올해 4월 24일까지 약 7개월간 모두 68차례 국제 크루즈선이 입출항했으며, 출입국한 승객만 15만5000명에 달했다.

가오융닝 싼야 중앙상업지구(CBD) 관리국 크루즈 관광 책임자는 "싼야에서는 홍콩을 비롯해 베트남 하롱베이(하노이), 나트랑(냐짱), 다낭, 후에 등을 오가는 국제 크루즈 노선이 운항되고 있고, 싱가포르·필리핀·마닐라까지 항해하는 장거리 노선 개척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크루즈 관광이 지역 경제에 가져오는 파급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크루즈선이 한번 정박할 때마다 2000여 명의 승객이 현지에서 보고 먹고 마시고 쇼핑하면서 실질적 소비를 창출하는 만큼 지역 경제 발전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싼야가 크루즈선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정책 혜택을 내놓는 배경이다. 가오 책임자는 “올해 하이난성 정부는 싼야에 입주한 크루즈 선사에 1회 항해할 때마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의료특구'···美 FDA 승인 특허약 사용 'OK' 
하이난성 충하이시 보아오 '러청 의료특구'에 소재한 한 고급 요양시설. 연간 회비만 56만 위안(약 1억원)에 달하지만 중국 전국에 40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하이난성이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국제 의료특구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취재진은 하이난성 하이커우시에서 약 2시간 거리에 떨어진 충하이시 보아오진을 찾았다. 보아오는 매년 봄 ‘아시아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는 보아오 포럼이 열리는 인구 3만명의 소도시로 유명한데, 이곳에 중국 유일한 의료 특구인 ‘러청(樂城) 국제 의료관광 시범구’가 둥지를 틀고 있다.

2013년 중국 국무원의 승인을 받아 설립한 이곳은 특허약 및 의료기기, 요양 및 헬스케어, 뷰티미용, 항노화 등 관련 의료 산업을 중심으로 고급 의료 관광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하이난성이 국제 자유무역항으로 지정된 2018년부터 의료관광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국무원은 특허약과 의료기기 판매 허가권을 하이난성 정부에 이양함으로써 러청 의료특구에 파격적인 우대 조건을 제공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수입 약이나 의료기기는 중국 약품감독관리국(NMPA) 허가가 아직 나지 않았더라도 러청 의료특구에서만큼은 미리 시범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현재 중국 내에서 유일하게 러청의료특구 의료기관에서만 사용 가능한 수입 의약품 의료기기가 390종이 넘는다.

환자들의 걸림돌인 비싼 수입 약값 문제도 해결했다. 러청 의료특구 정부와 국내외 보험사가 협업해 매달 수십 위안의 보험료만 내면 이곳서 사용 가능한 고가의 특허약이나 의료기기 비용을 보험으로 커버할 수 있는 상품도 출시한 것이다. 각종 우대 정책에 힘입어 이곳에 입주한 병원, 요양센터 등 국내외 의료기업만 28곳이다. 지난해 러청 의료특구를 찾은 의료 관광객 수만 3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옌루카이 하이난 보아오 러청 국제의료관광선행구 관리국 선전부장은 “올해엔 러청 의료특구에서 의약품, 의료기기뿐만 아니라 건강기능성 식품 개방도 검토 중”이라며 “중국 당국의 승인을 아직 받지 못한 건강기능성 식품도 이곳서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정책이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해외 직구로만 구매가 가능했던 해외 건강기능성 식품을 러청 의료특구에서도 살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리나라 한 식품회사도 현재 러청 의료특구 정부와 건강기능성 식품 현지 판매를 적극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하이난성이 면세 쇼핑, 의료 관광, 크루즈 관광으로 자국민 관광객 유치엔 성공했지만, 아직까지 외국인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은 듯 보였다. 중국 정부가 59개국 무비자 입국 등과 같은 우대 정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국제선 항공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도 이유다. 실제로 러청 의료특구나 싼야국제면세성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 미만에 불과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홍콩에 버금가는 국제자유무역항을 조성하겠다는 하이난성이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더 많은 유인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싼야시 랜드마크 격인 7성급 아틀란티스 호텔의 저우징 마케팅 홍보 부총재는 "외국인 투숙객 비중은 2~3%에 불과한 상황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항공편 회복 등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전경 [사진=배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