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선의 D-story] 다가오는 한·일·중 정상회의…'의제 조율' 핵심 

2024-05-08 06:00
韓, 이번 회의 의장국…尹 대통령 지지율 반등하나
조태열 외교장관, 6년 반 만에 中베이징 방문 추진

지난해 11월 박진(가운데) 당시 외교부 장관,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오른쪽),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한국과 일본, 중국이 오는 26~27일 서울에서 정상회의를 여는 방안을 최종 조율하고 있다. 이번 회의가 성사된다면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회의 이후 4년 5개월 만에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마주 앉게 된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로서는 처음 맞이하는 3국 정상회의인 만큼 의장국으로서 의제 조율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북과 꾸준히 교류를 해오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미사일 도발, 지정학적 긴장 등의 문제를 의제로 다루는 데 거부감을 표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일본과의 관계는 개선되고 있지만, 최근 라인 사태, 강제징용, 독도 억지 주장 등 논의해야 할 사안은 남아있다. 
 
4년 5개월 만에 개최…尹정부 들어 처음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윤 정부 들어 처음 개최하게 될 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다. 

한·일·중 정상회의는 대한민국, 일본, 중국 3개국이 합의해 2008년부터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3자 정상회담이다. 개최국이 곧 의장국이 되며, 일본-중국-한국 순으로 돌아가며 맡는다. 지난 2019년 12월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정상회의가 개최됐기 때문에 올해 개최국은 한국이다. 

회의는 해마다 열리는 것이 정상이지만, 국제 사정에 따라 건너뛰기도 했다. 2013~2014년에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한·일 갈등,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관련된 중·일 갈등으로 열리지 못했다. 2020~2023년에는 코로나19 유행에 이어 한·일, 한·중 관계 악화의 영향으로 무산됐다. 

이후 지난해 하반기부터 3국 간 부국장급회의와 고위관리회의(SOM), 외교장관회의가 연쇄적으로 열리며 개최 동력이 살아났고, 정상회의 개최 논의를 시작한 지 약 1년 만에 열리게 됐다. 

올해 한·일·중 정상회의의 의장국이 한국인 만큼 우리 정부는 다양한 의제를 통한 성과를 기대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총선 이후 떨어지는 가운데 이번 회담에서 원하는 결과물이 나온다면 지지율 반등도 기대할 수 있다. 

3국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등을 대의제로 놓고, 과학기술 협력 및 디지털 전환, 지속가능 개발과 기후변화, 보건 및 고령화 문제, 미래세대 교류 등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양자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이 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리 총리를 만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우리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한·중 관계 물꼬 트나…외교장관회의 전망
조태열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하오펑 중국 랴오닝성 당서기가 지난달 24일 서울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이번 회의를 통해 경색됐던 한·중 관계에 다시 물꼬가 트일지도 기대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3국 정상회의 전 중국을 방문해 왕이 외교부장과 만나는 방향을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방중이 이뤄지면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선 6년 반 만의 베이징 방문이다.

앞서 왕 부장은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한·일·중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박진 전 외교부 장관과 접견했다. 약 4년 만에 열렸던 외교장관회의에서는 3국 협력 복원과 정상회의 재개 준비, 북핵 문제 등 지역·국제 정세를 논의했다. 

최근 하오펑 중국 랴오닝성 당서기의 방한을 시작으로 얼어붙었던 한·중 간 고위급 인사 교류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면서 그 연장선에서 조 장관의 방중 계획이 자연스럽게 거론돼 왔다. 

조 장관과 왕 부장은 양자 회담을 통해 한·중 관계 발전 방향과 고위급 교류의 조기 시도, 공급망 재편, 북핵 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조 장관과 왕 부장 간 첫 통화에서도 이런 의제들이 언급됐다. 

또 조 장관과 시 주석의 면담이 이뤄질지도 관심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왕 부장이 초청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예우나 일정이 주선될 것으로 본다"며 면담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일 관계 개선에도 논의할 과제는 남아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3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을 한 이후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가 늘고 일본에서 한류 붐이 강해지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양국 관계 개선 흐름이 강하다.

다만 라인 사태, 강제징용, 독도 억지 주장 등 아직 풀어야 할 사안은 남아있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간 양자회담에서 이 같은 내용을 의제로 놓고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최근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라인 지분 매각을 압박했다는 내외신 보도가 연일 잇따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일본이 지난 2018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로 2019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한 경제 보복 조치 등을 떠올리며 이번 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악성코드에 감염돼 일부 내부 시스템을 공유하던 라인야후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자 일본 총무성은 올해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통신의 비밀보호 및 사이버 보안 확보를 위한 행정지도를 실시했다. 일본 정부는 두 차례의 행정지도에서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일본은 강제징용, 야스쿠니신사 참배, 독도 억지 주장 등에 대해 퇴행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3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배상금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며 한·일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일본의 역사 인식은 되레 퇴행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주요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잇따라 참배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등의 우익 사관을 담은 교과서에 대해 검정을 통과시켰고, 도쿄 인근 군마현은 조선인 강제동원 추도비를 철거하기도 했다.

또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지난달 16일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는 '2024년판 외교청서'를 각의(국무회의)에서 보고했다. 이번 청서에는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소송에서 일본 피고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판결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