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 "세계 정상급 韓 정유산업...발전 위해 쓴소리 마다않을 것"

2024-04-16 05:00
법조·정치인서 경제인으로
'횡재세' 언급하는 정치권에 "포퓰리즘" 과감한 발언
비산유국 최대 정유국가, 한국도 전략기술분야 지정해야
글로벌 기준 합리적 세재도 시급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이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한국은 비산유국임에도 세계 최대 규모의 정제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우리 정유사들은 해외 기업과 치열한 경쟁 중이며 협회는 정유업계가 글로벌 에너지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정부 정책에 협조할 것이다."

2022년부터 국내 정유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석유협회 회장을 맡아온 박주선 회장은 지난 2년간 정치인에서 경제인으로 변모했다. 정유업계의 호황 때마다 '횡재세'를 언급해온 정치권을 향해 포퓰리즘이라는 과감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그는 이제 정유업계의 발전만이 자신의 목표라고 한다. 

1974년 사법시험을 수석 합격한 후 검찰 등 법조계와 청와대에 몸담았다가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20년간 정치적인 시각으로만 정유업계를 바라봤다며 다소 후회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가 세계 최대 정유국가로 떠오른 것을 두고 정유업계를 '수출효자'라면서 추켜세우는 데 앞장선다. 경제인으로 거듭난 그는 정유업계를 위해서라면 정부 정책에 협조하면서도 쓴소리도 과감하게 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동시에 정유업계가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도 고민 중이다. 
 
다음은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과의 일문일답. 
 
-독자들이 대한석유협회에 대해서는 생소할 수 있다. 협회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설명 부탁드린다.
 
“대한석유협회는 1980년 9월부터 1, 2차 석유위기를 겪으면서 안정적인 석유공급과 석유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유4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가 공동으로 설립해, 지난 40여 년간 정유업계의 발전을 도모하고 보호하는 싱크탱크 기능을 해왔다. 지금도 정부와 업계 간 가교 역할을 통해, 회원사의 발전과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는 논리와 전략을 개발하고 업계에 공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업계의 애로를 행정부, 입법부에 건의해 해결책을 강구하는 일을 한다.”
 
-작년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국내 정유업계가 예년보다는 어려웠다. 올해는 실적개선이 예상된다는데, 올해 정유업계 전망은 어떤가?
 
“지난해 경영실적이 저조해 보이는 이유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일시적 경영실적 호조의 기저효과로 인한 것으로, 부진했다기보다는 평년 수준의 실적으로 판단된다.
올해는 불확실성이 크긴 하지만, 대체로 지난해보다는 경영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석유시장의 수급이 타이트하고 정제마진도 양호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다만 글로벌 대외여건 불확실성은 위험요인이다. 유럽과 중동의 지정학적 이슈가 단시일 내 종료될 가능성이 낮고,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정책 및 우리 경제·산업에도 변수가 될 수 있어 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정유업계 실적이 개선되면 다시 ‘횡재세’ 이슈 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재작년부터 일각에서 유가가 오르거나 정유업계 실적이 개선되기만 하면, 정유업계가 마치 아무런 노력 없이 불로소득 비슷한 이익을 낸 것처럼 횡재세 부과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정유업계의 최대 실적만 언급하고 있으나, 사실 정유산업은 분기마다 적자와 흑자가 반복되는 등 국제유가와 글로벌 수급 변동에 따라 변동성 리스크가 매우 큰 산업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원유를 채굴하는 해외 석유 메이저의 순익규모는 우리 정유사에 비해 20배 이상 많은 반면, 국내 석유산업은 전형적인 박리다매, 저마진 구조산업이다. 고유가가 본격화된 지난 2007년부터 16년간 정유사 정유부문 영업이익률은 평균 1.8%에 불과하다.
OECD 조사가능한 23개 국가 중 석유제품 가격이 가장 저렴한 국가가 우리나라다. 
기업의 손실에는 지원이 없고 일정 이상 이익에만 중과세한다는 것은 자유시장 경제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된다. 정치권이 정유업계의 실상을 간과하거나 왜곡된 시각을 갖고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안타깝다.”

 
-유가가 상승 중이다. 진단과 전망 및 대응 방향은 무엇인가?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2월 이후 점진적으로 상승 중이며, 최근 80달러 초중반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국내물가 상승도 심상치 않고, 국제유가도 상승세여서 우려스럽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석유공급 감소에 대한 우려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정세불안과 같은 지정학적인 불안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위주로 석유수요가 증가하는 점도 유가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 등 국제기관에서는 향후 국제유가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는데, 경기침체에 따른 석유수요 감소 등 유가 하락 요인도 상존해 예측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정유업계는 세계 원유시장과 동향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으로 경제성 있는 원유를 도입하도록 대응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국내에 석유제품을 공급해 국내 물가안정과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적극 노력할 방침이다.”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로 석유수요가 줄어들어 2050년에는 일부 선박이나 건설기계에만 석유가 쓰일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정유업계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IEA의 ‘현재정책유지 시나리오’에 따르면, 석유수요는 2050년까지 연평균 0.2%씩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지고 있고, 러-우 전쟁을 통해 세계 각국과 석유기업들이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과 석유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세계적으로 노후 정제설비들이 줄줄이 폐쇄되고 있는데, 이는 규모의 경제와 품질을 갖춘 국내 정유업계에 수출시장 확대의 기회다.
2022년부터 우리나라의 최대 석유제품 수출국은 호주로서, 이는 호주 정제설비가 50% 넘게 폐쇄되자 국내 정유사가 적극 대응하여 수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시대에도 우리 정유사들은 친환경 석유제품 수출과 에너지안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며, 정부와 국민들께서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정유사들이 석유제품을 많이 수출한다고 하는데, 비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수출할 수 있는 이유 등 국내 정유업계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국내 정유사들은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했다. 그 결과, 비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정제능력은 석유산업이 태동한 1964년 이후 58년간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세계 5위 규모의 정제설비를 보유 중이며, 비산유국 중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러한 우수한 정제능력을 기반으로 정유업계는 2012년부터 원유도입액의 절반 이상을 수출로 회수해 왔는데, 거의 매년 5대 국가 주요수출품목에 포함되는 수출효자 산업이다. 지난해 국가 수출의 8.3%를 석유제품이 차지했다.”

 
-올해 대한석유협회 운영 계획 및 중점 추진 사항은?
 
“국내 정유사는 해외 정유사들과 치열한 경쟁 중이며, 이에 맞춰 협회도 회원사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경쟁력 있는 에너지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지속가능항공유(SAF) 수요가 늘고 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SAF를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과 동등한 수준에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도체, 전기차 등 7개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SAF가 제외되어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격차가 큰 만큼 SAF 기술사업의 국가전략사업 지정 등 보다 과감한 지원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세제개편이 필요하다. 일례로, 원료용 중유에 대한 개별소비세 면제를 들 수 있다. 국내 정유사는 경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 연료로만 쓰이던 중유를 수입해 석유정제원료로 활용해 휘발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제품 소비 시 부과돼야 하는 개별소비세가 원료단계에서 부과돼, 석유제품 원가에 조세부담으로 작용하고 국산과 수입 제품 간 경쟁력 차이를 초래한다. 규제합리화를 통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