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의원내각제' 일본이 한국 정치에서 배울점
2024-03-31 15:44
한국은 총선을 앞두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유권자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다.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선거를 둘러싼 상황은 참으로 다르다.
한국에서는 국정선거의 투표일이 수요일로 정해져 있어 공휴일이 되지만 일본의 국정선거는 관례적으로 일요일을 투표일로 하고 있다. 한국에 유학하고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투표를 위해 학교나 직장이 쉰다는 것, 바로 투표하는 행위가 거국적인 이벤트라는 사실에 놀라웠다. 투표일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굳이 공휴일로 만들어도 사전투표를 마치고 투표 당일은 단순한 휴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내 주변에는 모처럼의 일요일에 투표소에 간다는 게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고, 원래 투표일인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보통의 일요일처럼 하루를 보내 버리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투표일을 특별한 날로 인식시킨다는 면에서 한국처럼 평일의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제도로 생각된다.
투표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일본 선거에서는 투표를 할 때 지지하는 입후보자 이름이나 정당명을 자필로 투표용지에 써야 한다. 한국에서는 도장만 찍는 것과 큰 차이다. 과거 일본에서는 자필 투표 때문에 생긴 해프닝도 있었다. 2021년 국회 중의원 선거에서 한 선거구에 동명이인이 입후보했는데, 입헌민주당에서 출마한 가메이 아키코(亀井亜希子)와 무소속인 가메이 아키코(亀井彰子)다. 한자 표기는 다르지만 히라가나(발음)로는 표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어느 쪽 득표인지 판단이 어려운 투표용지가 속출할 우려가 발생했다. 이때 양자의 기타 득표율에 따라 모호한 투표를 분배하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명확하게 누구에게 투표한 것인지 알 수만 있다면 후보자에 대해 한자 표기든 히라가나 표기든 혹은 성씨만 표기하든 상관없다. 단, 해석이 불가한 표기나 불필요한 말이 적힌 투표용지는 어느 후보자의 득표도 되지 않아 무효표가 된다. 자필 투표라는 제도는 결과적으로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사람은 물론 신체상 이유로 글자를 쓰지 못하거나 쓰기 어려운 이들에게 권리행사의 문턱을 높이고 만다. 한국처럼 투표했다는 표시로 도장을 보여주는 ‘인증샷’도 불가능하다.
원래 한·일의 정치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은 대통령제인 반면 일본은 의원내각제다. 그런 것쯤은 상식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막상 한국의 여론을 보면 일본 총리가 교체되면 일본의 방향성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지나치게 기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물론 지난 아베 정권과 같은 장기집권 후의 총리 교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고, 사실 아베 정권 이전과 아베 정권 이후의 일본 정치가 크게 다르다는 분석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대통령이 교체되는 것과 같은 극적인 변화가 일본의 총리 교체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의원내각제에서 총리(내각총리대신)는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이 아니다. 이름 그대로 내각을 대표하는 대신(장관)에 불과한 것으로, 국회의 지명에 의해 그 자리를 맡는다. 그리고 총리에 의해 조직되는 내각은 국회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물론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는 '국권 최고기관'이므로 그 국회가 뽑은 총리가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다만, 역시 유권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리행사로 대통령을 직접 뽑는 한국과 그렇지 않은 일본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한편 한국 대통령은 비교적 여론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국정 운영에 임할 수 있다. 현행 제도상 대통령의 탄핵과 같은 일이 없는 한 임기 5년을 보장받는다. 아무리 여론의 뭇매를 맞는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을 테니 과감한 개혁도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 총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애초에 총리직은 법적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의원이 해산되고 새롭게 중의원의 구성원(의원)이 정해져 국회가 소집되면 새로운 총리로 교체할지 혹은 지금의 총리 체제로 갈지 결정된다. 국회의 다수결로 총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여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즉, 유권자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통해 총리를 간접적으로 뽑는 셈이지만 유권자가 그것을 실감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일본 국회는 양원제로 중의원과 참의원이 있다. 중의원 의원은 265명이고 임기가 4년이지만 여론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해산되고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 한편 참의원 의원은 248명이고 임기가 6년이며 해산이 없다. 그 절반은 3년마다 선거를 통해 바뀐다. 중의원이 심의한 법안에 대해 해산이 없는 안정적인 참의원이 체크하도록 되어 있어 신중한 법안 심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다. 눈앞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시야를 가진 국회 심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취지다. 다만, 중의원은 언제든지 해산될 가능성이 있어 언제 유권자의 심판을 받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총리의 입장이라는 것도 사실 불안정하며, 한국 대통령제에 비해 일본 의원내각제는 여론의 동향이 반영되기 쉬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에는 거의 1년에 1명꼴로 총리가 교체됐고, 거슬러 올라가면 2개월 만에 퇴임한 총리도 있었다. 물론 제도상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가의 자질 문제나 자유민주당(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따른 폐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일본에서도 장기집권을 자랑한 총리가 바로 아베 신조였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이루어졌을 무렵 일본에서는 ‘모리카케 문제’가 큰 화제였다. 학교법인 모리토모(森友)학원이 2016년 국유지를 파격적인 가격에 매입했고, 그 과정에 아베 총리 부부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또 아베 총리와 사적으로 친한 관계였던 가케(加計)학원 그룹이 관련 대학에 신설 학부를 설치하는 데 부당한 우대를 받은 혐의도 비슷한 시기에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에 버금가는 대스캔들이었다.
‘모리카케 문제’는 국회에서 오랜 시간 논의되었고, 문서 조작이나 정보 은폐가 의심되는 정황까지 밝혀졌다.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실무직 공무원이 자살로 내몰리는 상황까지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결국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여론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거나 적어도 의문에 대해 결백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 스캔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것 같다. 결국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채 당시 아베 정권은 연명했을 뿐 아니라 이후 2020년까지 집권하며 장기집권 기록을 경신했다.
아베 정권은 2019년에도 ‘벚꽃 스캔들’이라고 불리는, 역시 자신의 지지자를 위해서 공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그 당시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자민당 내 정치자금 유용 문제는 2024년 현재 큰 문제가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2017년에 있었던 정치비리 의혹만큼이나 유권자의 불신을 키우는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으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그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의원내각제가 나라의 지도자를 직접 뽑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투표를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무력감이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나 저조한 투표율 등은 한국에서도 지적되고 있지만 일본의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로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원래 정치를 자신과는 먼 일로 생각하는 감각이 뿌리 깊다. 일본어로 '오카미(お上)'라는 말이 있는데, 위정자나 정부를 '윗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치는 윗사람이 해 '주는' 것이고, 스스로 바꿔가는 것이라는 의식이 희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교 교육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부터 만 18세 이상이 선거권을 갖게 되었는데, 한편으로 학교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며 교내에서는 정치적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교외에서 선거운동에 참여할 때는 사전신고를 요구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일본 사회다. 예부터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해온 일본에서는 대립을 낳는 주장은 삼가는 것이 마치 미덕처럼 인식된다. 정치뿐만 아니라 자기 주장을 숨기는 경향이 강한 사회에서는 좀처럼 투표라고 하는 정치 참가를 스스로의 권리로 행사한다는 인식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어른들 세계에 이르러서는 주의·주장을 밝히고 ‘화합’을 깨는 언행은 어른답지 않기에 피해야 한다는 규범이 일본 사회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애당초 정치 이야기는 어렵다, 귀찮다, 나와는 관계없다, 어차피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등 냉소적 태도를 낳는 분위기마저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는 일이었고, 정치 참여가 자신의 권리와 자유에 직결돼 있다는 사회적 경험이 존재한다. 반면 패전 후 일본에서는 그러한 사회적 성공 체험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큰 차이로 여겨진다.
이번 한국 총선 투표일은 4월 10일이지만 이미 재외국민투표는 3월 27일부터 시작되었다. 시차 관계로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있는 한국대사관과 오클랜드 총영사관에서 시작한 뒤 세계 115개 국가와 지역에 있는 220개 투표소에서 4월 1일까지 실시된다고 한다. 이렇게 해외 거주 유권자가 투표할 수 있는 재외선거제도도 일본에서는 1998년 도입된 것에 비해 한국에 도입된 시기는 2012년(2009년 법 개정)이었다. 일본 사회에서 지방참정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있던 재일코리안 이건우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끝에 쟁취한 권리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 결과로 일본에 정착하게 된 한반도 출신자들의 후손에게 특별영주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재일코리안들에게 지방참정권이라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2005년부터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런 재일코리안들이 모국의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 2012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표라는 것을 했다고 기뻐하며 흥분하는 재일코리안 친구들을 목격하고 내가 당연하게 누려온 참정권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경험이 있다. 곧 결과가 나올 한국의 총선에서 사회적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기존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나는 유학 당시 한국 친구들에게 “왜 한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느냐. 한국 정치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곤 했는데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쟁취해 온 사회에서 일본 사회가 배워야 할 것은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 주요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