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트렌드] 'AI 날개' 단 국내 EPR기업, 해외로 날아간다
2024-03-19 06:00
요즘 기업관리 AI로 신속하게 EPR로 간단하게
더존비즈온, AI비서 'ONE AI'로 AX 시대 열어
영림원, 아날로그의 나라 일본 시장 뚫었다
더존비즈온, AI비서 'ONE AI'로 AX 시대 열어
영림원, 아날로그의 나라 일본 시장 뚫었다
국내 전사적자원관리(ERP)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 ERP는 기업의 사업 영역 전반에 걸친 업무 절차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다. 인사·재무·영업·물류·생산 등 기업의 각종 업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 시스템별 정보와 자료를 유기적으로 공유한다. 이를 통해 기업의 빠른 의사결정과 업무 생산성을 끌어 올린다.
더존비즈온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업무협약을 맺은 데 이어 지난 6일 AI 비서 '원(ONE) AI'를 출시했다. AI를 무기 삼아 전 세계적 네트워크인 AWS를 무대로 활약하겠다는 것이다. 영림원소프트랩 역시 기존 ERP 제품보다 성능을 끌어 올린 AI 클라우드 ERP 제품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한다. 영림원은 이미 지난해 일본 현지에 법인을 세웠다. 시스템구축(SI) 분야 일본 대기업과 업무협약도 준비 중이다.
불과 10년 전쯤만 해도 국내 ERP 시장은 외국 기업에 점령된 상태였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갖춰가면서 전세가 달라졌다. 2010년 전 세계 ERP 1위 기업 SAP가 48%의 점유율을 차지했지만 2022년부터 국내 기업들이 SAP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시장에선 이 같은 변화를 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더존, AI 신규 서비스 출시 예고...글로벌 진출 가속
"더존은 이제 ERP 기업이 아니라 AI전환(AX) 기업이다." 더존은 지난 6일 인공지능 비서 ONE AI를 발표하면서 AX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ONE AI를 자사의 사업 플랫폼인 위하고에 탑재하겠다고도 발표했다. 자사 ERP 상품인 아마란스 10과 ERP 10에도 ONE AI를 적용한다. 이를 통해 더존만의 독자적인 AX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목표다.
ONE AI는 데이터 분석부터 자동화된 회계 처리, 효율적인 협업 도구까지 업무에 필요한 것을 단 하나의 플랫폼으로 제공한다. ERP에 ONE AI를 접목하면 회계·인사·법인조정·메신저·화상회의·전자결재·근태관리·메일·일정 등 기업의 핵심 업무 시스템에 AI 기술이 적용, 업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강력한 보안 기능도 갖췄다. 더존은 ONE AI에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을 접목해 민감한 데이터를 외부에 노출하지 않도록 했다. 기존의 AI 서비스가 데이터 유출과 개인정보 보호에 취약하다는 점을 보완한 것이다.
ONE AI는 정형 데이터뿐 아니라 비정형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기존의 AI와 차별점을 가진다. 정형 데이터란 엑셀처럼 표로 돼 있는 데이터를, 비정형데이터는 그렇지 않은 데이터를 말한다. 글과 비디오, 이미지 등이 대표적인 비정형데이터다. 과거엔 비정형데이터를 정형데이터로 전환하는 경우가 아니면 비정형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실무에서 ONE AI의 활용 범위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AI를 활용해 회계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고 신고 오류를 사전에 점검해 줄 뿐 아니라 예상 세액까지 예측해 준다. 팀원들 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회의 일정도 만들어주고, 회의 후 회의록 작성과 담당자의 업무 분배까지 책임진다.
AI의 고질적 문제인 이른바 '할루시네이션'도 최소화했다. 할루시네이션은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생성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업 지식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업무에 최적화된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고 더존은 설명했다.
이런 AI 기술에 힘입은 더존은 올해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미 지난해 더존은 AWS에서 '글로벌 고성장가능기업' 27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되면서 AWS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AWS는 현재 전 세계 클라우딩 컴퓨터 분야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는 회사다. 삼성전자·넷플릭스·AMD·크래프톤 등 굴지의 기업들이 AWS 고객사다.
더존은 AWS와 업무협약을 기반으로 '더존 솔루션 온(on) AWS'를 준비하고 있다. 더존 측은 해외 진출이 국지적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능할 것이라 기대한다. 더존 관계자는 "AWS는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며 "더존이 진출하는 곳은 곧 AWS를 사용하는 모든 곳"이라고 말했다.
올해 1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실제 더존은 AWS와 협약을 맺은 지난해 4분기에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1032억원, 229억원으로 이는 전년 4분기보다 각각 35.2%, 200.9% 증가했다.
더존 측은 "ERP와 그룹웨어 등 기업 내부 데이터를 활용한 AI 서비스뿐 아니라 산업·공공·의료 영역 등에서도 데이터를 수집·분석·가공해 AI 기반 혁신 플랫폼을 선보일 것"이라 했다. 이어 "AWS와 연계한 글로벌 프로젝트가 가시화한 만큼 빅테크 기업과 함께 글로벌 AX 시장 대응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영림원, AI 기반 기술 고도화로 서비스 고부가가치화
영림원은 지난해 11월 일본 현지에 법인인 '에버재팬'을 세워 화제를 일으켰다. 일본 시장은 다른 나라 기업이 유독 공략하기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전 세계 200년이 넘는 장수기업 5500여 개 중 약 56%가 일본에 있는 등 특유의 내수 시장이 견고하게 형성돼 있다. 더구나 정보기술(IT) 기업은 더욱 진출하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영림원의 일본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에 이미 진출을 시도했지만 당시 파트너사가 파산하면서 제품 두 개만 팔고 사업을 접었다. 그럼에도 영림원은 다시 한번 일본 시장 문을 두드렸다. 일본에서 성공해야 아시아 1위 ERP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을 공략하는 핵심 무기는 '시스템에버'다. 시스템에버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방식의 AI 클라우드 ERP다. 시스템에버가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만큼 시스템에버를 사용하는 기업들은 별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 비용도 저렴하다. 월 사용료로 30만~120만원만 내면 된다.
이 점이 일본 시장에서 제대로 먹혀들었다. 기존의 구축형 ERP는 통상 초기 비용으로 1억~2억원이 든다. 현지 중견·중소기업들이 부담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일본 기업들은 실적이 없는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강한데, 영림원은 중견·중소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일본에서 인지도를 계속해서 쌓고 있다. 올해는 일본의 대기업들에도 ERP 납품을 할 예정이다.
마에다 도모오 에버재팬 법인장은 "일본 경제를 지탱하려는 중소기업을 건강하게 하려면 디지털전환이 필수적"이라며 "에버재팬은 AI 기반 ERP를 통해 아직도 수작업에 익숙한 일본 제조업의 ERP 방안을 디지털화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는 디지털화에 나선 일본 정부 방침과도 맞닿는 부분이다.
영림원 최종 목표는 100년 기업이 되는 것이다. 권영범 영림원 대표는 이를 위한 중간 목표로 2030년까지 △매출 1억 달러(약 1300억원) △주가 10만원 △평균 연봉 1억원 △아시아 ERP 시장 1위 달성을 내세웠다. 권 대표는 "일본에는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는 기업만 해도 3만여 개가 있지만 한국은 8개에 불과하다"면서 "교세라·무라타제작소·닌텐도·일본전산 등의 장수기업과 강소기업에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림원은 클라우드 ERP만이 아니라 자사의 주력 제품인 구축형 ERP 'K 시스템 에이스'에도 AI를 접목시켰다. 바로 'K 시스템 AI'다. K 시스템 에이스는 영림원소프트랩이 30년간 닦아온 ERP 전문기술이 녹아든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국내·외 2000여 개 고객사가 K 시스템 에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K 시스템 에이스에 AI를 결합한 K 시스템 AI는 ERP 내부 데이터와 시장·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경영 관련 지표를 활용해 기업이 다양한 상황을 예측하고 환경 변화에 대비할 수 있게 한다.
K 시스템 AI는 K 시스템에 축적된 실제 ERP 데이터에 영림원이 자체 개발한 AI 표준모델을 적용해 기업이 데이터 기반 경영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영림원은 기업 운영 관리와 회계, 영업·수출, 인사·급여, 생산, 구매·수입, 자재·물류, 원가, 경영기획 등 20개 항목에 AI를 적용하는 'AI 개발 로드맵'을 실행해 나갈 계획이다.
기업문화 혁신이라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섬으로써 사업 모델 다각화도 시도한다. 영림원은 지난해 첫 주자로 '플렉스튜디오 1.0'을 발표했다. 플렉스튜디오 1.0은 IT 업체에 부족한 인프라에서도 기업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경쟁력 있게 만들 수 있도록 로우코드를 지원한다. 지난해엔 '플렉스튜디오 2.0'도 출시했다. AI 자동생성 기능을 더함으로써 일반 기업에서도 모바일 앱 개발과 운영을 가능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