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기관투자자,'밸류업' 역할론과 불편한 온도차
2024-03-17 17:53
정부가 기관투자자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야심차게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맞춰 스튜어드십 코드를 개정하면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타인의 자산을 운용하는 수탁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할 행동 지침이다. 2017년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현재 국민연금 등 연기금 4곳을 포함해 은행·보험·기관 등 222곳이 가입돼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7가지 원칙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세 번째 원칙인 '투자대상회사의 중장기적 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주기적 점검 실시'라는 원칙에 '투자대상회사가 기업가치를 중장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시행·소통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기관투자자가 투자대상회사가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그렇지 않으면 참여를 독려하는 구체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정부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지원 방안에 동참하도록 독려하는 건 일본 증시 부양에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일본공적기금(GPIF)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가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일본 선례를 보면 GPIF는 일본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을 2010년 말 11.5%에서 2023년 말 24.7%로 2배 이상 늘리며 일본 상장사들의 기업가치 제고를 도왔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도입됐다. 국내 증시에서 영향력이 큰 투자자는 외국인이다. 결국 '큰손'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시장이 돼야 한다. 정부는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기업들의 주주환원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은 투명성이 낮은 지배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내 상장사는 대주주가 일반 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결정을 하더라도 견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존 주주에게 불리한 쪼개기 상장, 오너일가의 주가 누르기 등 지배주주가 비지배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많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2~2023년 대만, 독일, 미국, 싱가포르, 일본 홍콩 등 해외 주요국들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정책을 펼쳤다. 공통점은 사외이사의 견제 역할 강화, 임원 책임경영 유도 등 상장사 지배구조 개선이 담겼다는 점이다. 기업가치 제고를 시도하는 정부의 노력은 칭찬할 만 하다. 그러나 기업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한 소극적인 방식, 기관 자금에 기대는 의존적 방식으로 증시 밸류가 높아질 수 있을까.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를 기대하는 정부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