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리창 데뷔무대' 중국 양회 …'시진핑 원톱체제'만 과시
2024-03-12 16:01
중국 정치 일정의 시작을 알리는 최대 연례 행사인 제14기 정치협상회의(정협) 2차 회의와 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2차 회의, 즉 올해의 ‘양회(兩會)’가 각각 일주일간의 회기를 마치고 폐막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더불어 제헌 국회 역할을 했던 정협은 중국 공산당 일당 체제에서 민주당파로 불리는 제도권 정당 간의 ‘협치’와 주요 단체 등 집단 간의 연대와 협력을 도모하는 통일전선 기구로 국정 자문 역할을 한다. 각 분야 직능 대표로 구성되는 전인대는 헌법상 최고권력기구로 중국 중앙정부인 국무원과 산하 25개 부·위원회, 법원·검찰 등 사법기구를 관장하며, 입법 기능을 갖고 있다. 정협에 의해 전인대가 탄생했기 때문에, 두 회의는 항상 같이 개최되어 한해 중국 정치의 시작을 알린다.
두 회의가 동시에 개최되지만 정협은 의결이나 심의 권한 없이 토론과 제안에 중점을 두는 반면, 전인대는 국무원 총리가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한해 중국의 시정 방침과 청사진을 국내외에 공표한다. 이 보고는 세계적 주목을 받는 중국의 경제 성장률, 올해의 중점 발전 및 사업 방향과 예산 편성, 대외 방침 등을 담고 있다. 이번 회의는 리창(李强) 총리의 데뷔 무대이기도 했고, 중국공산당 제20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3중전회)도 건너뛰는 등 기존의 관례를 벗어나 열렸다. 특히 지속되는 미·중 전략 갈등과 부동산 경기 침체, 주식 시장 불황, 내수 부진과 과도한 지방정부 부채 및 높은 실업률, 디플레이션 우려 등 복합적인 경제 위기를 제어할 구체적 방안에 대한 해결책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관심을 끌었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난해 5.2%의 경제 성장률을 보인 중국은 올해 목표치로 역시 5% 내외를 제시하면서 안정적인 통화정책 유지와 적절한 유동성 공급을 위한 유연한 재정정책을 제시했다. 5%의 성장률 유지는 2050년 세계 제일의 영향력 국가 건설을 위한 기본 요건이며, 또한 국내총생산(GDP) 1%당 약 250만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므로 1200만개 이상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또한 재정 확대를 위해 적자율을 3%로 정해 4조600억 위안(약 751조원)을 배정하고, 특별 국채 1조 위안(약 185조원)의 우선 발행을 천명했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작년 전인대와 12월에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의 결정과 대동소이하여 시장 관찰자들의 과감한 경기부양책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과학기술로 무장된 사회주의(科技社會主義) 국가 건설의 야심도 숨기지 않았다. 여기에는 당연히 미국과의 경쟁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 과거 경제 성장 견인차였던 부동산 개발과 인프라 투자 대신 전기자동차·배터리·태양광 등 '3대 신(新)성장동력'을 고품질 발전의 축으로 삼고, 바이오 제조 및 상업용 우주 비행과 같은 신흥 분야가 앞으로 중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임을 밝혔다. 특히 2024년 중국 정부 업무 10대 임무에 과학과 기술에서 중국의 자립과 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명시하고, 예산 우선순위에 배치해 올해 과학기술 투자를 10% 늘려 총 52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해 중국 경제를 고품질로 변화시키고 서방, 특히 미국이 부과한 제재에 대처하기로 한 점도 눈에 띈다.
이러한 중국이 봉착한 어려움은 과거 발전방식의 역사적 유산으로 중국 정부의 고민거리다. 이 상황에서 본래 ‘당 총서기와 국무원 총리’ 체제인 중국 정치에서 총리의 권한이 축소된 점은 우려스럽다. 한 국가의 정치체제는 효율성 제고를 위해 해당 국가가 결정할 일이기는 하지만 ‘시진핑 사상’을 지도 사상으로 명문화한 국무원 조직법의 통과로 20차 당 대회 이후 구축된 시 주석 중심의 ‘당의 일원화 영도’가 전인대에서도 그대로 구현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33년의 역사를 지닌 총리의 폐막 기자회견이 사라지고,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증권 당국 보고를 직접 챙기고, 내수 진작과 부동산 경기 활성화 문제 등을 다룬 중앙 재경위원회나 중앙 전면심화 개혁위원회를 직접 주재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중국은 또 이번에도 국방예산을 7.2% 증액했다. 게다가 시 주석은 군부 대표 회의에 참석해 AI(인공지능)전, 사이버전, 우주전, 무인전, 해양 정찰 능력 강화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군사작전 역량인 신흥영역 전략 능력 제고를 강조했다. 군사 안보는 물론 중국 경제사회의 고품질 발전, 중국식 현대화 강국 건설, 민족 부흥을 이루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안보(security)로서의 '국가 안전'과 안전(safety)으로서의 '사회 안정'을 포괄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유의할 만하다. 게다가 지난달 27일에는 ‘공개 시 확실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업무에서 발생한 문제’를 '국가기밀'로 확대 규정한 국가 비밀 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반간첩법과 더불어 대 중국 접근 심리를 저해하는 조치가 아닌지 우려된다.
또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과의 장기 경쟁에서 중국이 유리하며, 브릭스나 상하이 협력기구 및 100여 개국이 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중국의 힘을 투사할 것임을 밝혀 공세적 외교 확대를 밝혔다. 안타까운 것은 중국의 북핵과 북한에 대한 인식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을 우회적으로 질책하면서 한반도 긴장 고조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길은 평화 협상을 재개해 각 당사자, 특히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북핵 고도화 및 지속되는 도발에 따른 한국의 안보 우려는 언급하지 않고 북한도 동조하지 않는 비핵화와 북미평화협정을 동시 추진하자는 쌍궤병진(雙軌竝進)과 단계적·동시적 원칙을 재확인했다.
사실 양회는 중국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중국식 조치와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철저하게 중국의 선택이다. 당연히 우리는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적 방향성을 해석하고 대비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의 AI+ 사업에 따른 파장에 유의해야 하며, 안보적 측면에서는 북핵을 둘러싼 한·중 갈등의 근본 문제를 양자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개진할 필요가 있음을 웅변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중국 역시 글로벌 국가로서의 위상 정립이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염두에 둔다면 주변국과 호흡할 수 있도록 보다 가시적이고 접근 가능한 방식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