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28년 '형제경영' 막 내리나...박정원 장기집권 독주 태세

2024-03-11 05:00
28일 주총서 박정원 3연임 안건
2016년 형제경영 결정 이후 최장수 회장

선대부터 이어온 두산그룹의 '형제 경영'이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지주사 ㈜ 두산의 총수로 장기집권하면서 독주 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열리는 주주총회를 통해 임기 10년을 확정하면 사실상 1인 총수 체제를 굳히게 된다. '형제 경영' 전환 이후 최장기 집권이다.

하지만 박정원 회장이 독주 체제를 굳히기에는 지주사 지분 보유율이 다소 낮다는 평가다. 특히 동생인 박지원 부회장(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이 지분을 계속 확대하면서, 향후 두산의 1인자 자리를 둔 형제간 표 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3년 재선임 안건 상정···사실상 1인 총수 체제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두산그룹의 지주사 ㈜두산은 오는 28일 열리는 주주총회 안건으로 박정원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임기는 3년으로 2027년까지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 7년간 두산그룹 회장을 지냈으며, 주총에서 해당 안건이 통과하면 10년 임기 회장에 오르게 된다. 형제간 경영이 시작된 후 가장 긴 기간이다.
 
두산그룹은 1993년 (故) 박용곤 명예회장이 총수가 된 이후 용오, 용성, 용현, 용만 형제가 번갈아 가면서 그룹을 맡았다.

본격적인 형제 경영이 시작된 때는 1996년 박용오 전 회장이 취임한 해다. 당시 두산그룹은 1991년 발생한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면서 OB맥주, 코카콜라, 버거킹, KFC 등 유통사업이 위기를 맞았다. 물을 더럽혔다는 이미지가 식음료 사업에 막대한 타격을 준 것이다. 

이 여파로 1996년 박용곤 명예회장이 총수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가족회의를 통해 형제간 공동 경영을 결정했다. 이후 박용오 회장이 유통사업부문 매각 및 중공업 사업 진출을 맡으면서 2005년까지 만 9년간 회장을 지냈다. 이후 약속대로 형제들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줬으며, 박용성 전 회장 취임 이후 박용현, 박용만 전 회장까지 3~4년마다 회장이 교체됐다. 

하지만 2016년부터 박정원 회장의 3세 경영이 시작되면서는 3~4년마다 형제에게 회장자리를 양보하는 그룹 문화가 사라졌다. 박정원 회장은 연임을 통해 올해까지 7년간 두산그룹의 회장을 맡았으며, 올해 주총에서 사내이사 안건이 통과하면 10년 임기로 형제경영 이후 최장수 회장이 된다. 

사실상 형제경영이 막을 내렸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대신 핵심 사업부인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이후 그룹을 크게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나눴는데, 박정원 회장은 지주사 회장으로서 투자를 담당하고 박지원 부회장은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으로서 사업부문을 담당하는 체제를 굳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역할분담은 4세 경영인에게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정원 회장의 장남 박상수씨는 지난해 9월 지주사 ㈜두산의 지주부문 신사업전략팀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난해부터 반도체, 전기차 등 분야 투자를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해 투자처를 모색 중이다. 박상수씨가 신사업전략팀에서 근무하는 만큼 4세 경영인으로 세대교체가 올 시기에는 자연스럽게 그룹의 투자를 담당할 위치에 앉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대조되게 박지원 회장의 장남 박상우씨는 그룹의 수소분야 자회사 하이엑시엄에서 사업개발 업무를 하고 있다.
 
◆지분율 늘리는 박지원···축소되는 지분 差

경영 분담이 순조롭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룹의 최대주주는 7.6% 지분을 가진 박정원 회장이지만 동생 박지원 부회장(5.5%)과의 지분격차가 크지 않고, 삼촌인 박용성·박용현 전 회장들의 지지에 따라 두산그룹의 주인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현 전 회장은 각각 3.48%, 3.44%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지분을 정리한 다른 형제들과 달리 여전히 의결권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두 회장 중 한 명만 박지원 부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돌아서면 최대주주가 바뀐다. 박지원 부회장이 경쟁적으로 지분확대에 나선 것도 박정원 회장 1인 체제 구축의 불안감으로 남아있다.
 
2019년 사망한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분은 세 자녀인 박정원 회장과 박지원 부회장, 박혜원 두산매거진 부회장에게 50대 33대 17 비율로 상속됐다. 당시 박정원 회장의 지분율은 7.41%였으며, 박지원 부회장은 4.94%에 불과했다. 지난 5년간 박정원 회장의 지분율은 0.19% 증가한 것과 비교해 박지원 회장은 0.56%가 늘었다. 박 부회장은 지난해에도 10월 한달간 10억원대 지분매입을 추진하면서, 연간 75억원을 지분매입에 사용하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촌들이 지분정리를 하지 않고 있어 두산그룹의 지분구조는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기 쉬운 형태”라며 “당장은 착실히 업무부담을 하고 있지만 박정원 회장 1인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박용성, 박용현 회장이 하루빨리 지분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왼쪽)과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박정원 회장은 오는 28일 열리는 지주사 (주)두산의 주주총회에서 3년 임기의 회장을 연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