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위기설' 속 잇따른 법정관리행···중견·중소 건설사 유동성 위기 현실화?

2024-03-06 15:58

[사진=연합뉴스]

올해 건설 경기 악화로 중견·중소 건설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로 재무 리스크가 커지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총선이 마무리되는 다음 달에 건설사들이 유동성 위기로 줄도산할 것이라는 ‘4월 위기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법정관리 신청 후 법원으로부터 포괄적 금지 명령을 받은 건설사가 7곳에 이른다. 포괄적 금지 명령은 회생절차 개시가 결정되기 전까지 채권자의 강제집행가압류 절차를 금지하는 명령이다. 법정관리에 돌입한 건설사 중에는 새천년종합건설(시공능력평가 105위)이나 선원건설(122위) 등 업력이 20년이 넘은 중견 건설사도 포함됐다.

지난해 말 태영건설(16위)의 워크아웃 선언 이후 100위권 건설사들이 하나둘씩 법정관리에 돌입하면서 줄도산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총선이 마무리되고 건설사들의 외부감사 보고서가 제출되는 다음 달 더는 부실을 감추지 못한 중견 건설사들이 잇달아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라는 풍문이다.

이를 의식하듯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태영건설처럼 유동설 위기를 겪을 건설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10위권 내에는 없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발언이지만, 일각에서는 기초 체력이 취약한 10위권 밖의 중소건설사들은 유동성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나온다. 위기설을 확산시킨 ‘4월 법정관리 건설사 17곳 리스트’ 지라시에 거론된 건설사들 가운데 1곳을 제외한 16곳이 시공능력평가 20위 안에 들지 못한 중견·중소 건설사들이다. 

일선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경기 침체와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견이 다수다. 지난달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500대 건설기업 102곳을 대상으로 이자 비용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76.4%가 '현재 기준금리 수준(3.5%)에서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고 답했다. '여유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17.7%에 불과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4월 위기설을 부추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물량은 올해 1월 6만2489가구로 지난해 11월 5만7925가구에서 2개월 만에 4564가구(7.9%) 불어났다.

특히 지방의 미분양이 심각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구가 1만245여 가구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경북(8800가구), 충남(5436가구), 강원(3996가구), 경남(3727가구) 등에도 많은 미분양 물량이 적체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견·중소 건설사가 지방 사업에 많이 뛰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한계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주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업계에 회자되는 4월 위기설이 일정 부분 맞을 수 있다"며 "10위권에 속하지 못한 중견사들도 어려운 곳이 많고, 규모가 훨씬 작은 중소 건설사들은 대개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다른 계열사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굉장히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일부 건설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파장은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진단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현재 건설업계가 어려운 상황은 맞지만 정부가 충분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어 4월 위기설이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건설사의 법정관리가 실물 경제에 어느 정도 파급이 있을지는 확실치 않지만, 과거 레고랜드 사태와 유사한 수준은 아닐 것 같다"고 관측했다.

전문가들은 중소건설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우려가 높은 만큼 다각도의 정책을 속도감 있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우선 회생 가능성이 높은 건설사를 분별해 적기에 유동성을 공급해줄 수 있는 직접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대구 등 지역을 주택법상 청약위축(조정대상) 지역으로 지정해 금융·세제 혜택을 부여하거나 미분양 매입 리츠를 운영하는 등 미분양 물량을 단기간에 크게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부동산 경기 침체 등 복합적 요인으로 건설사의 금융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됐다"며 "건설업계가 한계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금리·수수료 부담 완화, 원자재 가격 안정화, 준공기한의 연장 등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