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디스카운트 해소 못믿어"...개미들 韓 주식 8조 팔고 美·日로 눈돌려

2024-02-23 08:11
밸류업 기대 코스피 반짝 상승에
2월 8.1조 팔아치워 차익실현 후
미국 빅테크·일본증시 투자나서

 

정부가 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였지만 개인투자자들 반응은 싸늘하다. 증시 하락으로 물려 있던 종목들이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감에 오르자 일제히 팔아치우고 미국·일본 증시로 향했다. 미국 증시 상승세를 주도하는 엔비디아에 투자하는가 하면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엔화로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이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 3주간 8조168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1월만 해도 순매수를 기록했지만 2월부터 매도세로 돌아섰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의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장기간 저평가를 받았던 종목을 보유한 개인들은 주가가 오르자 차익 실현에 나섰다. 순매도 상위권에 포진한 종목도 현대차, 삼성물산, 기아 등 저평가 가치주다.

국내 주식시장을 떠난 투자자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지난 21일까지 미국 주식시장에서 11억8771만 달러(약 1조58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억2744만 달러어치를 순매도한 것과 대비된다. 일본 주식시장에서도 6209만 달러(약 827억원) 규모를 순매수했다. 반면 전년 동기엔 1310만달러어치를 내다 팔았다.

미국과 일본 증시는 연초부터 고공 행진하고 있다. 반면 국내 증시는 1월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후 저PBR 테마에 힘입어 국내 증시가 회복됐지만 추가 상승을 기대하는 대신 갖고 있던 주식을 처분하고 상승 기대감이 더 큰 해외 시장으로 몰려간 것으로 해석된다. 

투자자들은 미국 시장에선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을 주목하고 있다. 여전한 '테슬라 사랑'도 보여줬다. 이달 들어 21일까지 사들인 엔비디아 주식은 3억511만 달러(약 4061억원) 규모다. 이어 테슬라 2억9888만 달러(약 3978억원), 마이크로소프트 1억4361만 달러(약 1912억원) 순으로 순매수했다.

일본 시장에선 8977만 달러 규모를 사들인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채 헤지' ETF가 순매수 1위다. 이 ETF는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면서 달러 환율 변동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환노출 ETF로, 엔화 강세와 미국 금리 하락에 동시에 베팅하는 상품이다. 이어 엔화로 미국 7~10년 국고채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코어 7-10년채 미국채 엔화 헤지' ETF가 순매수 2위, 도쿄일렉트론이 3위, 화낙이 4위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이미 주가가 크게 오른 엔비디아 추격 매수에 나서고 있다. 미국채 가격 상승도 기대한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는 강한 주가 상승세도 불구하고 이익 전망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주가 멀티플 부담이 크지 않다"며 "거시경제 변수들이 성장주에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AI 시장 성장 전망과 강한 독점력을 바탕으로 엔비디아는 장기 주가 상승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화로 미국 장기채에 투자할 때는 미국 기준금리가 중요하다.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 가격이 올라가 ETF 수익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미국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가 여전히 높다는 점에서 채권 가격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전문가는 금리 인하를 두고 시장 기대감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제시한 수준(연 3회 인하)까지 정상화 됐다고 진단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 6회 이상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반영하던 채권 선물시장은 3.7회 정도로 기대감이 낮아졌다"며 "이제 인하 기대감이 더 축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