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반복되는 '물가 타령'에 경쟁력 잃어가는 한전

2024-02-22 05:00

또 물가 타령이다. 지겨운 돌림노래다.

'역대급 적자', '최악의 경영난'은 이제 한국전력 앞에 붙는 필수 수식어가 됐다.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에 따른 한전 누적 적자는 47조원 규모. 매일 내야 하는 이자 비용만 70억원 이상이다. 벼랑 끝에 몰린 한전을 구할 길은 전기요금 인상뿐이다. 

한전이 빚더미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는데도 정치권과 주무 부처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당장 4월 총선을 앞둔 터라 괜히 민심을 자극해 선거 패배로 이어질까 두려워하는 눈치다. 한전의 생사보다 선거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상황.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기조는 '전기요금 현실화'다. 앞서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이미 (전기요금을) 5번 올렸고 계속 현실화하는 과정에 있다"며 "어느 시점에 얼마만큼 할지의 문제인데 올해도 상황을 봐서 (요금 현실화) 노력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인상 폭은 밝히지 않았다. 총선 이후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얘기다.

전기요금 인상은 한전의 적자 탈출 해법에 그치지 않는다. 여론 살피고 혹은 정치적 고려라는 명분으로 전기요금을 원가보다 낮게 책정해 온 탓에 한전의 기업가치도 위협 받고 있다. 밑지는 장사를 반복하는 행태에 지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전 주식을 팔고 떠나가는 이유다. 

한전 외국인 투자자 비율은 2019년 28%대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14%대로 불과 5년 만에 반토막 났다. 외국인 투자 규모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한전의 이미지 훼손은 물론 국가 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안전한 투자처로 믿고 국내 상장 공기업에 투자했는데 돌아온 건 3년째 '무배당'이다. 

매번 반복되는 '물가 자극 우려, 서민 경제 부담' 구호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 뒤에 숨어 한 표라도 더 챙겨보려는 꼼수에 가깝다. 주먹구구식 땜질 처방보다 원가주의에 기반한 요금 정상화가 시급하다. 원가주의 원칙만 따른다면 한전 역시 팔수록 손해인 역마진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물가 고공 행진에 뿔난 서민들을 달래는 한편 전기요금 인상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한전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 '물가 타령'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다.
 
조아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