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자도 못 피했다...임금 인상안·성과급 요구에 기업들 골머리

2024-02-17 06:00
삼성전자, 사업 불확실성에 올해 임금 인상률 2.5% 제시...노조 5~8% 요구
역대 최대 실적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와 독립된 임금 인상률 요구
LG엔솔, 현대차 등 적정 성과급 놓고 이견..."연쇄 성과급 확산에 우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임금 인상률, 성과급과 관련해 노조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해 경영 실적에서 희비가 엇갈린 계열사 간의 갈등은 물론 영업이익이 줄었는데도 무리하게 성과급을 달라고 요구하는 곳도 적지 않다.

임금 인상안과 적정 성과급 규모에서 이견이 커지면서 파업 카드를 꺼낸 노조도 많다. 특히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노조가 파업을 강행할 가능성도 높아 성과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억대 연봉 삼성전자도 임금갈등 못피했다...계열사로 불만 확산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이 참여하는 노사협의회, 대표 교섭권을 가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노조)과 올해 임금 인상률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기본 인상률을 올 예상 물가상승률 수준인 2.5%로 제시해 노동자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노사협의회가 요구하는 임금 인상률은 5.74%, 노조가 요구하는 인상률은 8.1%다. 사측 제시안과 2~3배 이상 차이가 벌어져 입장차를 좁히기 쉽지 않다. 노사협의회는 사측 안에 '수용 불가'를, 노조는 단체행동을 위한 쟁의대책위원회를 가동했다. 삼성전자는 통상 3월에 임금 협상을 마무리하지만 올해는 노사 간 견해차가 워낙 커 5월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부에서는 올해 성과급이 없었던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을 중심으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 악화로 DS 부문이 15조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DS부문은 초과이익성과급(OPI)이 0%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올해도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의 적자 지속으로 반도체 사업의 흑자 전환이 불투명하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노조 측의 8% 인상안은 무리가 있다는 게 사측 입장이다. 실제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은 지난달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DS부문 임원들의 올해 연봉을 동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강경한 입장이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삼성전자와 독립된 임금인상기준을 지정해달라는 요구가 높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임금 인상률 가이드라인으로 적정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삼성디스플레이 노조 측 입장이다.

노조는 지난 15일 사측과 5차 임금, 단체협약 협상을 진행했지만 양측간 이견이 커 최종 결렬됐다고 선언했다. 노조는 기본 임금 인상률 5%, 유급 휴가 확대, 성과급(OPI) 기준 개편 등 25가지 요구안을 제시했지만 사 측은 이를 받아들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고, 중노위가 중재에 실패할 경우 노조는 조합원 투표를 거쳐 파업을 결정한다. 앞서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는 2021년 임금협상 결렬 후 최초로 파업 한 바 있다.
 
◆사상 최대 실적 낸 기업도 보상체계 놓고 갈등

LG에너지솔루션은 전년대비 반토막난 성과급 지급에 일부 직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LG엔솔 직원 1700여명은 이달 29일까지 서울 여의도에서 3.5톤 트럭과 스피커를 이용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LG엔솔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2조원을 돌파해 사상 최대 성과를 달성했는데 성과급은 전년(기본급의 870%)의 절반 수준인 362%로 책정했다.
 
회사 측은 지난해 실적 상당수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이 차지했고, AMPC 혜택은 일시적이고,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성과 지표로 활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이를 반영한다고 해도 회사의 성과급은 목표 대비 달성도에 기반하기 때문에 올해 성과급에는 변동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LG엔솔 노조는 IRA 혜택을 위해 전 직원들이 합심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 만큼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기아도 역대 최대 수준의 성과급 지급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불만인 직원이 많다. 현대차 노조가 최근 사측에 특별성과급 지급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데 이어 일부 계열사 노조에서 현대차·기아와 성과급 규모가 차이가 난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기아 노조는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한 만큼 영업이익에 걸맞은 특별성과급을 공정분배하라"며 "조합원 노고를 외면한다면 조합원들이 공정한 성과 분배를 쟁취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특별성과급 지급 요구는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현대트랜시스, 현대로템, 현대엠시트, 현대비앤지스틸 등 계열사의 성과급 연쇄 요구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는 점에서 회사 측에는 부담 요소다.

재계에서는 연쇄 성과급 요구에 우려를 표하는 시각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개인의 성장=회사의 성장'을 동일시하던 분위기가 사라졌기 때문에 대기업 MZ 직원을 중심으로 성과급에 불만을 표출하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면서 "산업의 특성, 리스크 등을 고려하지 않고 보상만을 요구하는 태도는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참에 직무·성과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의 임금체계는 각 직원들의 생산성에 직접 연계되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이번 기회에 적절한 성과보상이 이뤄질 수 있는 임금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