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리는 50조 '철도지하화'... 지역개발 기대 속 전문가들 "사업성 따져 선별 추진해야"
2024-02-14 17:51
주요 도시 도심을 단절시키는 지상 철도를 지하로 내리고,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를 개발하는 '철도 지하화' 사업이 닻을 올렸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철도 지하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지역 민심 잡기에 나섰고, 지난달엔 관련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정부 역시 교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50조원을 투입해 전국 주요 도시 철도의 지상 구간을 지화하한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사업 실현 가능성을 두고는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업 특성상 대규모 사업비가 필요하고, 사업 기간도 10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철도 지하화 사업과 관련해 가장 큰 과제로 ‘사업성 확보’를 꼽고 선별적인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4일 정부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달 중 철도 지하화 관련 종합계획 용역을 발주해 3월부터 철도 지하화 종합계획 수립에 착수할 계획이다. 오는 9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후보 시절 공약했던 사업 등을 중심으로 지자체 제안을 받고, 완결성이 높은 구간은 올해 12월까지 선도 사업으로 지정한다. 전체적인 지하화 대상 철도 노선은 내년 말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현재 지하화가 검토되는 구간은 서울(경부선·경인선·경원선), 부산(경부선), 대구(경부선), 인천(경인선), 대전(경부·호남선), 광주선·경의중앙선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 지하화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지하로 옮기고 지상 철도부지와 인근 부지를 함께 개발하는 사업이다. 역세권은 고밀·복합 개발하고, 선로 주변 노후 지역은 통합 재정비하겠다는 구상이다. 그간 예비타당성 조사와 막대한 사업비용 등이 걸림돌로 작용해 관련 사업이 지지부진했으나 '철도 지하화 특별법'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서민호 국토연구원 도시정책·환경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철로가 도심을 관통하며 양분해 공간을 차단하고, 주변이 낙후 지역으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지하화는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로 인한 지역 경제 발전 등 경제적 파급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철도 지하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2013년 서울시 용역 결과에 따르면 지하철 1·2호선 구간과 경인선·경부선·경의선 등 86.4㎞ 구간을 지하화하는 데 38조원가량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국토부도 지난달 '교통 3대 전략' 발표에서 철도 지하화 관련 사업비가 5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정부는 별도 재정은 투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철도 용지를 사업시행자에게 현물로 출자하고, 시행자가 채권 발행을 통해 재원을 우선 조달한 뒤 상부 개발 이익으로 사업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상부 개발 이익만으로 철도를 지하로 옮기는 비용을 전부 감당할 수 있을지다. 이에 상당수 지역에서는 사실상 사업 추진이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지방은 수도권과 패키지로 개발하거나 추가 출자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사업비를 감안하면 결국 상부 부동산 개발이 원활히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와 건설 경기 침체를 감안할 때 조속한 추진은 어려워 보인다"며 "지방은 수도권과 달리 자금 조달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업비 대비 낮은 사업성도 문제다. 철도부지 특성상 대부분 좁고 기다란 '선형'이라 대규모 개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철도 주변에 이미 주택과 건물 등이 많아 이들을 수용해서 개발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는 평가다.
민재홍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도연) 기획조정본부장은 "철도 지하화는 특별법이 없어서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것이 아니라 결국 사업성 문제였다"며 "대규모 지하화 사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사업성과 필요성 등을 정밀하게 분석해 선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대규모 사업이 진행되면 사업 추진 동력이 약화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 연구위원은 "철도 지하화를 하려면 사회경제적 타당성이 충분하고, 재원 조달에도 문제가 없는 구간들을 선별해 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단기적 개발이 아닌 향후 수십 년을 바라보는 계획인 만큼 차분히 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