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하거나 떠나거나] 순익 '반토막'에도 투자 늘리는 中반도체 기업

2024-02-10 06:00
中파운드리 SMIC…지난해 순익 50%↓
글로벌 수요 부진, 공급과잉 등 배경
국가전략 부응…공격적 '투자'
中반도체 '인해전술' 우려
美 제재 뚫고 5나노칩 제조소식도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중신궈지(中芯國際, SMIC)가 지난해 글로벌 수요 부진과 공급과잉으로 순익이 반토막으로 급감했는데도, 5나노(㎚=10억분의1m)의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을 짓는 등 중국 반도체 전략과 제조업 강화 정책에 발맞춰 아낌없이 투자를 퍼붓고 있다. 
 
순익 '반토막'에도···공격적인 투자 단행
SMIC가 6일 발표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순익이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4.7% 감소한 1억7500만 달러(약 2316억원)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매출은 3.5% 증가한 16억7800만 달러였다.

이로써 SMIC는 지난해 전체 63억2000만 달러 매출을 거둬들였다. 이는 전년과 비교해 13% 감소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순익은 9억250만 달러로, 전년의 반토막 수준이었다.

SMIC는 지난해 반도체 경기가 저조해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막대한 재고 물량을 소진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경쟁도 치열해 생산가동률이 낮아지고 제품 포트폴리오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막대한 투자는 감가상각 비용 증가로 이어져 4분기 영업비용이 전년 동기 대비 27.3%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는 같은 기간 매출 증가율(3.5%)을 훌쩍 뛰어넘어 재무제표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지난해 4분기 SMIC의 영업이익률은 16.4%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5.6%포인트(p) 하락했다. 같은 기간 생산가동률도 76.8%로, 2.7%p 떨어졌다.

SMIC는 불확실한 글로벌 환경 속 올해 매출 전망도 신중했다. SMIC는 올해 1분기 매출이 전 분기보다 2% 소폭 증가한 17억1000만 달러로, 영업이익률도 전분기보다 최소 5.4%p 낮은 9~11%에 그칠 것으로 관측했다. 

그럼에도 SMIC는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할 것이란 의지는 강력히 내비쳤다. 지난해 SMIC 자본지출은 74억70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매출을 훌쩍 웃돌았는데, 올해도 지난해와 동일한 액수를 설비 투자에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SMIC 지난해에만 광둥성 선전, 베이징, 상하이, 톈진 등 4곳에서 12인치 웨이퍼 공장 신규 설립을 추진하는 등 반도체 생산라인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다.
SMIC의 공격적인 설비투자
 
中 국가전략에 부응···반도체 '인해전술' 우려도
흥미로운 점은 SMIC가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공급 과잉 현상을 우려하면서도 생산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SMIC는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 후 브리핑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전 세계적으로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강화하도록 만들어 공급과잉을 조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SMIC 공동 CEO 자오 하이준은 "글로벌 관점에서 볼 때 반도체 생산 능력이 과도하다"며 "최근 몇 년 사이 구축된 제조설비 용량을 소화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SMIC를 비롯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공급망 균열 등 불확실한 지정학적 국제 환경 속에서 현재 반도체 경기 사이클보다는 중국 국가 정책에 부응해 국산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강화하고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 개발 속도는 늦춰졌지만, 범용 반도체를 위한 성숙공정 시장 수요가 여전히 막대한 만큼 이 부분에서 자체 생산력을 강화해 국산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게다가 최근엔 SMIC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5나노의 첨단 반도체 생산 공정에 돌입할 것이란 보도도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 SMIC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납품할 최첨단 5나노 칩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상하이에 신규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했다고 보도됐다. FT는 5나노 칩은 화웨이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최신 버전에 탑재될 예정이라며 이는 미국의 반도체 기술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반도체 산업이 여전히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도 짚었다.

일각에선 중국이 반도체 저가 물량 공세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잠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학 교수는 지난달 말 FT 기고문에서 중국산 태양광 패널의 저가 공세로 미국·유럽 업체들이 줄도산한 사태가 저가 반도체 시장에서 재현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반도체 전쟁(CHIP WAR)' 저자이기도 한 밀러 교수는 "반도체 공급 과잉 속에서도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다"며 세계 1위 파운드리 TSMC도 중국의 반도체 '인해전술'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