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아니다"...1252일 만에 사법리스크 벗은 이재용

2024-02-05 16:3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검찰이 2020년 9월 1일 이 회장을 기소한 지 1252일, 약 3년 5개월 만이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불법 경영권 승계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한 지 1252일, 약 3년5개월 만에 나온 법원의 1심 판단이다. 합병비율 조작, 중요정보 은폐,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불법로비 등 검찰이 제기한 대부분의 혐의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국정농단 이후 거듭돼 온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본격적으로 해소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구형은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이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짙은 회색 정장을 입고,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재판을 지켜보던 이 회장은 무죄가 선고되자 비로소 옅은 미소를 띠었다. 별도의 소감 없이 법원을 빠져나온 이 회장을 대신해 변호인단은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 등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1일 기소됐다.

당시 그는 그룹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제일모직의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낮추기 위해 이 같은 부정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두 회사 합병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공시·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계는 삼성의 경영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 상황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점은 매우 다행"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글로벌 기업 삼성의 사법리스크가 해소돼 결과적으로 한국의 수출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