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엔진 결함' 인정했지만..."무상수리는 안돼"

2024-02-01 05:00
자동차 종합검사 중 엔진 파손 무상수리 요구
최근 3년간 서비스센터에 신고된 건수 5배 증가
"앤진 결함 인정에도 발뺌...한국 고객에 대한 기만"

"엔진 결함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무상 수리는 불가능합니다."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유명한 수입차 브랜드 랜드로버가 자사 차량 주인에게 밝힌 입장이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일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2021~2023) 랜드로버 차량 품질에 대한 피해구제 접수 주요사례'에 따르면, 랜드로버는 자사 차량 주인 A씨에게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 3.0D 차주 A씨는 2022년 8월 22일 자동차 검사 대행업체를 통해 차량 정기 종합검사를 받았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차량 엔진오일 게이지가 L(최소선)에 위치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틀 뒤 엔진오일 교체 후 대행업체를 통해 재검사를 받았으나 게이지가 다시 최소선에 위치했고 '무부하 급가속 검사' 도중 엔진이 파손됐다. 

디젤차는 정기검사에서 배출가스를 측정하기 위해 무부하 급가속 검사를 진행한다. 변속기를 중립에 두고 가속 페달을 최대로 밟아 최고 rpm(분당회전수)에 도달시키고, 이때 배출되는 매연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랜드로버는 무부하 급가속 검사 과정에서 엔진이 손상되는 사례가 잦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 대행업체는 A씨에게 "점검 과실이 아닌 차량 엔진의 결함"이라고 전했다. 이에 랜드로버 측은 "차량 엔진 결함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무상수리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랜드로버의 이 같은 태도가 국내법을 악용하는 전형적인 외제차 브랜드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소송 과정에서 자금력이나 정보의 격차 등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부분을 이용해 횡포를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문제는 일명 '한국형 레몬법'이라 불리는 자동차 교환·환불 중재제도의 허점 때문이다. 교환·환불 중재제도는 2019년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됐다. 구입 후 하자가 지속 발생하는 자동차에 대해 소비자가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제도 시행 이후 교환·환불 판정을 받은 사례는 극히 일부로, 실효성에 의문이 따르고 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김민기 민주당 의원은 현 제도의 실효성이 미미한 원인이 입증책임에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은 차량 인도 후 6개월이 경과한 경우, 결함이 구입 당시부터 있었음을 소비자가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는 뒤늦게 지난 25일 하자 추정기간이 기존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업계 관계자도 "(수입차 브랜드들이) 변호사 선임이나 정보의 질에서 소송에 유리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사실상 국산업체들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배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랜드로버의 무책임한 정비 서비스는 지난 3년간 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4건에서 2023년에는 20건으로 늘었다. 3년 새 접수된 불만 건수는 총 40건이다.

A씨 사례와 같은 수리·보수 불만이 3년간 24건으로 가장 많았고, 정보제공이 7건, 처리 중인 사건이 3건으로 뒤를 이었다. 그 외에 배상, 환급, 조정신청이 각각 2건이었다.

이후 AS(사후관리)를 하고도 소비자가 재차 불만을 느낀 건수가 같은 기간 총 8건이었다. 2021년엔 0건이었지만,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4건씩 발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자사 차량 엔진의 결함을 인정하고도 무상수리를 못한다고 발뺌하는 것은 한국 고객에 대한 기만으로 볼 수 있다"며 "이 같은 문제는 정부도 보다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레인지로버 벨라 [사진=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