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후폭풍][르포] PF대출 연장 막히자 121가구 무더기 공매行 '빌리브 헤리티지' 가보니

2024-01-29 18:09
입주 반 년 지났지만 불꺼진 '유령 아파트'…수성구 핵심 입지에도 외면
PF 얼어붙으며 중소 시행사들 타격…상업용 부동산·지방 사업 줄줄이 좌초 위기

전체 146가구 중 121가구가 미분양으로 공매에 나온 대구 수성구 수성동 '빌리브 헤리티지' 단지 모습. 인근의 다른 아파트 단지와 달리 주말 저녁인데도 불이 켜진 가구가 거의 없다. [사진=박새롬 기자]

"수성구라는 입지에 신세계건설이 시공한 브랜드 아파트인데 이렇게까지 분양이 안 될 줄은 몰랐죠." (대구 수성구 빌리브 헤리티지 인근 공인중개사)

28일 저녁에 찾은 대구 수성구 수성동 '빌리브 헤리티지'는 지난해 8월 입주가 시작된 이후 반년 가까이 흘렀지만 단지 내 인적이 드물었다. 밤 8시~10시에도 지상 주차장은 텅 비어있고, 전체 동을 통틀어 7~8가구 정도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단지 내 휴게시설로 조성된 듯한 벤치 위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매트리스 등이 먼지 쌓인 채 방치돼 있었다. 분리수거장에도 사람이 사는 단지 같지 않게 건축 자재, 대형 폐기물들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인근 단지들과 달리 산책을 하는 입주민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2시간 정도 머물 동안 외제차 한 대를 목격한 것이 전부였다.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은 "매일 밤 지나가면서 봐도 불 켜진 집이 드물고, 아직 거기에 사는 주민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빌리브 헤리티지는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 수성동에 신세계건설이 하이엔드 아파트로 지은 후분양 단지다. 미분양 우려로 지난해 6월부터 10~15% 정도 할인분양에 돌입했지만 결국 전체 146가구 중 단 25가구 분양에 그쳤다. 시행사 그라운드디홀딩스는 지난해 11월 1400억원대 PF대출 만기 연장에 실패했고, 대주단이 약 한 달간 부여한 채무상환 유예기간도 넘기며 지난달 26일부터 공매 절차를 밟게 됐다. 미분양된 121가구는 이달 30일부터 개별적으로 공매가 총 5차에 걸쳐 진행된다. 

빌리브 헤리티지는 대구 지하철 2호선 대구은행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고 수성구 대장단지인 범어두산위브더제니스, 범어롯데캐슬 등이 모여있는 범어네거리와는 차로 5분가량 떨어져 있다. 단지 건너편에서 식당을 20여년간 운영해 온 A씨는 "시기도 안 좋았고, 입지와 학군도 사실 이곳 부자 동네에서는 베스트라고 하긴 힘들다. 금리가 낮을 때라면 돈 좀 있는 사람들이 달려들었겠지만, 금리도 높아졌고 진짜 부자들이 사기에는 애매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주변에 10년 넘은 단지들이 많아 3~4년 전 분위기였다면 다 완판됐을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수성구에도 공급물량 쌓인 게 너무 많아 투자를 추천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진=박새롬 기자]

공매는 전용 159㎡인 101동 102호의 경우 1회차 15억8500만원에서 4회 유찰될 경우 5회차 최저입찰가가 11억8483만원이 된다. 일반적으로 공매 1회 유찰 시마다 최저입찰가는 10%씩 떨어지는데, 빌리브헤리티지의 경우 1차에서 2차로 넘어갈 때만 10%, 2~5회차 때는 5~6%씩 입찰가격이 낮아진다. 위탁을 맡은 교보자산신탁 관계자는 "채권회수 금액을 감안해 대주단 요청으로 가격 하락 폭이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분양시장이 위축되면서 미분양 물건에 대해 금융기관들이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공매 접수하는 건수가 늘고 있다"며 "특히 지방 중심으로 준공후 미분양이 워낙 많다보니 통매각으로 공매 나오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처럼 '최후의 수단'으로 공매가 진행되는 경우에도 새 주인을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유찰이 거듭될수록 시행사는 물론 금융기관 등이 자금을 못 돌려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연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가장 먼저 타격입는 것은 중소형 규모 시행사들이다. 국내 1세대 디벨로퍼로 불리는 참좋은월드는 성동구 성수동2가 5000평 오피스 개발사업 PF대출 연장에 어려움을 겪으며 하도급업체에 공사비를 반년째 미지급하고 있다. 만기가 돌아오는 4월 초까지 대출 이자를 내지 못하면 공매 처분될 예정이다. 해당 시행사가 작년 준공한 경기 부천시 저온 물류센터도 아직 물량이 많이 남아 입주기업을 찾고 있다. 

제주도의 중소 시행사 시산파트너스는 분양대금을 못 받을 위기에 처했다. 부실시공 등 기한 내 준공을 못 마친 시공사가 203억원의 채무를 인수하며 시행사와 협의없이 분양을 취소하고, 신탁사에 위탁해 오피스텔 건물을 공매로 내놓으려고 하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시행사 관계자는 "몇백억원이 시공사에게는 큰 금액이 아닐 수 있지만 영세한 시행사의 경우 당장 길거리로 나앉을 수도 있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한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2~3년 전 경쟁입찰 방식으로 비싼 가격에 토지를 매입한 시행사들이 금리와 공사비용 상승으로 사업성이 떨어져 사업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다"며 "특히 지방이나 수익형 부동산의 토지들 매입한 시행사들은 기존 사업 대출이자조차 내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규모가 큰 곳들은 기존 자산을 매각하는 등 방법을 찾아나서겠지만 영세 업체의 경우 파산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박새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