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계 히딩크'의 새로운 시작...서울시민들 귀를 홀리다

2024-01-29 05:00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첫 프로그램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황제'와 말러 교향곡 '거인' 선택
협연한 임윤찬에 "한국의 떠오르는 스타…위대한 피아니스트 될 것"
자폐 아동 위한 '파파게노 재단' 설립…부모·간병인·상담사 등 도와
전 축구 감독 히딩크와 절친…카리스마·한국에 대한 사랑 등 닮은꼴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왼쪽)이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취임 연주회 후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뜨거운 열정을 가진 리더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면 놀라운 일들이 펼쳐진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은 지난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얍 판 츠베덴의 새로운 시작: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를 개최했다. 취임 연주회는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에 이어 이틀간 열렸다.
 
세계적인 지휘자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은 취임 연주회에서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했다. 26일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서울시향과 함께하게 된 거장은 취임 연주회 프로그램으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와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선택했다.

말러 교향곡 1번은 츠베덴 감독에게 특별한 곡이다.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와 뉴욕 필하모닉과의 첫 공연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다.
 
말러 교향곡 1번은 20대 청년인 말러의 눈에 비친 극적인 세상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1888년 1월에서 3월에 작곡했지만, 첫 구상에서 최종 수정까지 대략 15년(1884~1899년)이 걸렸다.
 
츠베덴 감독은 지난 11월 열린 ‘서울시향 2024년 시즌 간담회’에서 “1번은 말러 교향곡 중 가장 어렵고, 말러 교향곡들의 가장 기본이자 토대가 되는 작품으로, 오케스트라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이다”라고 설명했다.
 
어려웠던 첫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츠베덴 감독이 서울시향과 함께 선보인 말러 교향곡 1번은 클래식 애호가뿐만 아니라 클래식을 자주 듣지 않는 관객에게도 감동을 선사하는 연주였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취임 연주회를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말러 교향곡 1번은 충실한 연주였다. 정신이 번쩍 나는 대음량의 총주(Tutti)와 여리게 조절하는 악구 사이의 다이내믹 레인지(Dynamic range)가 굉장했다”며 “느물느물하고 쿰쿰한 말러 음악의 통속성이 너무 세련되게 다듬어졌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것도 해석의 한 방향이 될 수 있다”고 평했다.
 
이어 류 평론가는 “정확한 것은 아름답다. 츠베덴과 서울시향은 뭉개지거나 숨기지 않고 음표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신비감을 줄인 대신 파악 가능한 부피를 가지고 작곡가의 세계를 보다 뚜렷하게 전달하는 데 일조했다”며 “고해상도의 음악을 피부로 느끼는 게 음악회의 묘미다”라고 짚었다.
 
임윤찬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과감했고, 그만의 해석이 가득했다. 임윤찬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최선을 다해 펼쳐내며, 서울시향과 츠베덴 감독의 새로운 시작을 뜨겁게 축하했다.
 
츠베덴 감독은 2024년 시즌 간담회에서 “젊은 임윤찬은 미래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다. 지금도 이미 훌륭하다”고 극찬한 후 “한국의 떠오르는 스타와 함께 첫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오른쪽)이 지난해 4월 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서울시향이 드리는 아주 특별한 콘서트’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를 안아주고 있다.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 '절친' 히딩크 닮은 준비된 신임 음악감독
 
놀라움을 선사한 취임 연주회는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츠베덴 음악감독님과 단원들이 지난 1년간 함께하면서 합이 맞고 있다”고 귀띔했다.
 
츠베덴 감독과 서울시향은 2023년을 긴박하게 시작했다. 서울시향은 2023년 첫 정기공연이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다. 오스모 벤스케 당시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낙상 사고를 당해 공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른 지휘자와 접촉했지만 모두 일정이 맞지 않았다.
 
서울시향의 차기 감독이었던 츠베덴 감독은 이미 잡혀 있던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급히 향했다. 지난해 1월 8일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관현악단과의 오후 공연을 마치자마자 한국으로 이동해 짧은 첫 인사를 마치고 바로 리허설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이지만 최선을 다한 서울시향은 1월 12일과 1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브람스 교향곡 1번’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서울시향이 드리는 아주 특별한 콘서트’는 뜻깊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연주를 끝내자 츠베덴 감독은 아버지처럼 공민배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츠베덴 감독은 1997년 아내인 알톄 판 츠베덴과 자폐 아동을 위한 ‘파파게노 재단’을 설립했다. 두 사람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인 그들의 셋째 아들이 음악을 통해 조금씩 치료되는 것을 경험했다.
 
재단은 자폐 아동과 부모, 간병인, 상담사를 돕고 가능한 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에도 츠베덴 감독과 서울시향은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색을 보여줬다.
 
지난 7월에는 ‘베토벤과 차이콥스키’ 공연을 했고, 8월에는 ‘파크 콘서트’를 통해 대규모 야외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11월에는 츠베덴 감독의 주요 레퍼토리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선보였고,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과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으로 2023년을 마무리했다.
 
특히 합창 교향곡 연주에 앞서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곡가 신동훈의 신작 ‘그의 유령 같은 고독 위에서’를 아시아 초연했다. 츠베덴 감독은 2023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을 서울시향과 함께했다.
 
츠베덴 감독은 미국 댈러스 심포니(2008∼2018년)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시향과 더불어 미국 뉴욕필하모닉과 홍콩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그라모폰은 2019년 홍콩 필하모닉을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했다.
 
츠베덴 감독의 이런 행보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연상시킨다.
 
서울시향은 지난 26일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쓴 히딩크 전 감독을 홍보대사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히딩크 전 감독은 서울시향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취임 축하 영상을 통해 “친구인 츠베덴이 한국의 서울시향을 이끌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다”며 “서울시향 홍보대사로서 조만간 서울에 방문해 서울시향의 연습과 공연에 참석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츠베덴 감독과 히딩크 전 감독은 카리스마와 리더십, 새로운 단계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 한국에 대한 사랑 등 닮은 점이 많다.
 
히딩크 전 감독은 “그는 매우 근면 성실한 사람으로 한국의 축구선수들과 같은 성향을 갖고 있다. 동시에 그는 매우 창의적이다”라며 “그가 서울시향과 함께 펼칠 연주를 기대해달라”고 당부했다.
 
거스 히딩크 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왼쪽)과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