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트렌드] 단통법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 원하지 않는 사람들
2024-01-26 10:00
尹 정부 단통법 폐지 공식화...시행 10년만
시민·대리점 폐지 찬성, 알뜰폰·야당 신중론
LTE와 5G 시장 상황 달라...이통사 영향 적을 듯
시민·대리점 폐지 찬성, 알뜰폰·야당 신중론
LTE와 5G 시장 상황 달라...이통사 영향 적을 듯
다만 단통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높은 만큼 폐지 시기가 문제일 뿐 폐지 자체는 정부·여야가 합의해 추진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단통법을 폐지하려면 여야가 합의해서 법 개정을 해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둔 만큼 올 상반기 논의는 어렵고, 22대 국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하반기는 돼야 관련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25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단통법 폐지를 추진하기 앞서 이동통신 3사와 단말기 제조사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24일부터 삼성전자·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영업 담당 임원을 불러 의견을 듣고 있다.
이 자리에선 단통법에 규정한 ‘이통사 단말기 지원금 공시 의무’와 ‘유통망(대리점) 추가지원금 상한(공시지원금의 15%)’을 두고 폐지할지,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할지 여부를 두고 관련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부는 지난 22일 서울 홍릉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개최 후 국무조정실·방통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지난 2014년 시행한 단통법을 폐지하고, 단통법에 규정한 요금 할인(선택약정 할인제)은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하는 규제 개혁안을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날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단통법 폐지 전이라도 사업자 간 마케팅 활성화를 통해 단말기 가격이 실질적으로 인하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단통법, 무엇이 문제인가?
단통법은 지난 2014년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가 주축이 되어 시작한 규제로, 이통사와 대리점이 신규 가입·번호 이동·기기 변경 등 고객 가입유형과 가입 요금제에 따라 보조금을 차별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이통사와 대리점이 단말기 구매 보조금을 지급할 때에는 정부가 정한 지원 상한액에 맞춰 얼마나 지원하는지를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시해야 한다. 지난 2017년에는 단통법으로 인해 단말기를 제값 주고 구매한 이용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통사가 요금제 할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단통법의 전형적인 ‘도입 의도는 좋은’ 규제다. 정보 비대칭에 따른 불공정을 제도로써 막겠다는 게 단통법의 목표였다. 한 이용자는 보조금이 몰리는 특정 대리점, 이른바 ‘성지’에서 스마트폰을 싸게 구매하고, 다른 이용자는 비싸게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통법은 도입 전부터 반대 목소리가 컸다. 정부가 단말기 가격 하한선을 정함으로써 통신 시장 경쟁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와 방통위·미래창조부는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 불투명해 이용자가 차별받는 비정상적인 관행을 바로잡는 법”이라며 관련 정책을 밀어붙였다. 여기에 여야가 모두 동의함으로써 반시장적인 법은 현실이 됐다.
단말기 구매 보조금은 대부분 이통사의 마케팅 비용에서 나온다. 대리점이 주는 보조금도 사실은 이통사가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비용 가운데 일부가 이용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여기에 제조사가 특정 단말기 판매가 부진하면 이통사를 통해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관례였다. 시장 점유율과 단말기 판매량을 확대하려는 이통사·대리점·제조사의 뜻이 일치하면 시장에 대량의 보조금이 풀리고 성지와 ‘버스폰(대중교통비 정도만 내면 구매할 수 있는 단말기)’이 등장했다. 일각에선 보조금이 몰리는 대리점에서만 단말기를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고 지적하지만, 실제로는 성지에서 버스폰이 등장하면 다른 대리점들도 이통사로부터 전달받은 추가 보조금과 판매장려금으로 단말기 가격을 낮추는 등 단통법 이전 온오프라인 시장 경쟁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 가격 하한선이 정해지자 이통사 간 보조금을 활용한 마케팅 경쟁은 자취를 감췄다. 종종 특정 이통사의 점유율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면 점유율 복구를 위해 불법 보조금이 살포됐지만, 방통위가 이를 적발하고 강력히 규제하자 2019년 이후에는 이마저도 시들해졌다.
결국 모두가 단말기를 비싸게 구매하는 ‘호갱(호구 고객)’이 됐다. 경쟁이 없어지고 마케팅 비용 지출이 줄어들자 이통사의 영업이익은 늘어난 반면 이용자의 단말기 구매비용 부담은 계속 커졌다. 이통 3사의 영업이익은 2014년 1조6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최근 3년간은 연 4조원대를 기록 중이다. 더 나은 혜택을 찾아 이통사를 옮기는 번호이동의 경우 단통법 시행 전에는 연 1000만건이 넘었으나, 지난해에는 400만건 수준으로 줄었다. 10년 전에는 100만원을 넘지 않았던 단말기 가격은 최근 200만원을 넘어 300만원에 육박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그나마 중저가 단말기를 공급하던 LG전자와 팬택은 단통법 시행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단말기 시장에서 철수했다.
누가 폐지에 찬성하고 반대하나
지난 10년간 시장에선 단통법 폐지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 2016년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후 가계통신비에 변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48.2%가 "이전과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가계통신비가 이전보다 증가했다"는 답변은 30.9%에 달했다. "이전보다 줄었다"는 응답은 11%에 불과했다. 시민단체와 여론조사업체들이 24일부터 단통법 폐지에 대한 여론조사 준비에 착수한 만큼 단통법 폐지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담은 최신 결과는 다음 달 중 공개될 전망이다.
오프라인 대리점도 단통법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단통법 폐지에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협회는 “단통법으로 인해 지난 10년간 이동통신 유통산업이 붕괴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단통법 시행 전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은 2200만대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200만대로 반토막 났다”며 “판매량이 줄어들자 글로벌 단말기 기업도 국내 시장에 관심을 보내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온라인을 중심으로 불법보조금이 살포돼 오프라인 대리점이 피해를 입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단통법 이전 3만개 수준이던 오프라인 대리점이 1만5000개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는 게 협회 측 주장이다.
하지만 당장 단통법 폐지에 반대하며 제도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가장 우려가 큰 곳은 그동안 국민들 통신비 부담 경감에 앞장섰던 알뜰폰(MVNO) 업계다. 알뜰폰 업체들은 단말기와 요금제를 함께 파는 이통 3사와 달리 대부분 중저가 요금제만 파는 만큼 단통법 폐지에 따른 단말기 구매 보조금 확대 혜택을 가입자에게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본력을 갖춘 이통 3사와 겨루며 힘겹게 시장을 일궈온 알뜰폰 업체들의 경쟁력 저하를 피하기 어렵다. 단통법이 폐지돼 구매 보조금이 확대되면 장기 혜택을 주는 알뜰폰 대신 초기 구매 부담이 적은 이통 3사로 가입자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통 3사 자회사를 제외하면 영세한 업체가 대부분인 알뜰폰 업계가 출혈 경쟁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이통 3사가 중저가 요금제를 본격 출시하는 상황에서 단통법 폐지로 보조금 경쟁이 과열되면 알뜰폰 업계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정부가 단통법을 폐지할 예정이라면, (업체들이 요금을 더 낮출 수 있도록) 이에 상응하는 알뜰폰 업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도 단통법 전면폐지보다는 수정·보완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22일 논평을 통해 “단통법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할 때 폐지보다는 원래 취지에 맞게 제도를 대폭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밀한 후속 대책 없이 단통법을 즉시 폐지하면 시장이 보조금 경쟁 과열과 정보 비대칭에 따른 이용자 차별에 직면할 것이란 지적이다. 참여연대는 “지금 단통법을 폐지하면 이통사의 보편적인 지원금 경쟁을 촉진하기는커녕 보조금을 많이 받은 극소수 소비자만 이득을 보고, 그 부담은 마케팅비 명목으로 국민 대부분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통법 수정·보완 방안으로 공시지원금 거품 해소와 분리공시제 도입을 주장했다.
야당도 단통법 폐지라는 방향성 자체는 찬성하지만, 정부·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꺼낸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빠른 폐지에는 반대 뜻을 드러냈다.
이날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정부·여당이 발표한 단통법 폐지 방안에 대해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밝혔다. 그는 “단통법은 이통사가 단말기 가격을 담합하고 모든 국민이 비싼 값으로 (단말기를) 사게 하는 희대의 악법이었다”며 “박근혜 정부가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인다며 단통법을 들고나왔을 때 민주당은 편법적 보조금 지원 등 부작용 요인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단통법을 폐지하겠다고 했는데, 단통법 폐지에 진정성이 있었다면 대한민국 국민을 호구로 만든 것에 대해 먼저 사과하라”고 덧붙였다.
이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단통법 폐지 후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민주당은 단통법 폐지 후 통신비 경감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준비하겠다”고 말하며 단통법 폐지에는 찬성하지만, 조속히 추진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인 조승래 민주당 의원도 “이번 단통법 폐지는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급조한 표 구걸용 표퓰리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단통법 폐지 시 △극심한 이용자 지원금 차별 △디지털 정보력이 취약한 국민의 호갱화(정보 비대칭) △알뜰폰 사업자와 제4 이통사 고사 우려 △무절제한 지원금 확대로 단말기 출고가 상승과 이용자의 통신비 부담 증가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개선 로드맵을 우선 만들어 단통법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데 집중할 것이란 게 조 의원의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정부의 단통법 폐지 정책이 성공하려면 △고가 단말기 지원금 쏠림 현상 해소 △명확한 공시지원금 액수와 주체(이통사·대리점·제조사) 표시 △알뜰폰 등과의 불균형 해소 등 부작용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중한 이통3사…앞으로 대응은
단통법 폐지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이통 3사는 정부 계획을 놓고 신중한 입장이다. 익명으로 언론에 관련 입장을 낼 법도 하지만, 이번에는 관련 대응을 일절 하지 않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향후 전개 방향에 따라 회사 매출·영업이익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통 3사가 시장 안정화와 영업이익 확대를 이유로 단통법 폐지를 반기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알뜰폰·제4 이통사·온라인 단말기 판매자 등 경쟁자가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견제할 보조금이라는 꽃놀이패를 확보하게 되는 점에서 전혀 나쁜 상황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증권가에선 단통법이 폐지돼도 이통사의 마케팅 비용 부담이 크게 늘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김홍식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5G가 도입된 지 5년이 경과해 이미 포화 국면에 돌입했고 9년간에 걸친 학습 효과도 크다”며 “대규모 보조금 살포에 나설 만큼 공격적인 이통사가 나타나기도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정지수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10년 전에는 3G 사업을 포기하고 LTE에 올인했던 LG유플러스로 인해 이통사 모두 가입자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었다”며 “반면 지금은 5G 서비스가 성숙기를 지나 정체기에 진입해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유인이 과거와는 달리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채널을 통한 서비스 가입이 확대되고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점도 단통법 폐지 영향을 최소화할 요인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