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이의 다이렉트] 키르기스스탄 대자연으로 떠나다 上... 로드트립 원정의 시작
2024-01-19 06:00
키르기스스탄은 유라시아 대륙 중부에 자리한 중앙아시아 국가로 국토의 80%가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지대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3국 국민들은 여권 없이도 국경을 육로로 넘나든다. 이들은 비슷한 언어와 생활 문화를 보유한 ‘형제 국가’로 인식한다. 키르기스스탄은 1924년부터 1936년까지 소비에트 통치 시기를 거쳤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해 현재의 키르기스 공화국이 탄생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국가 ‘키르기스스탄’에서 밴플과 함께 겨울 로드트립을 시작했다. 로드트립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여행지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로드트립 여행 특화 플랫폼 기업 밴플의 첫 번째 해외 여정이었다. 밴플 멤버를 비롯해 총 8명과 2명의 스텝, 4명의 현지 가이드가 여정을 함께했다.
언어·날씨·분위기·문화·여행명소 등 결국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한 채 ‘로드트립’과 ‘대자연’, ‘만년설’이라는 키워드만 갖고 무작정 겨울 여행길에 올랐다.
◆ 키르기스스탄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한국을 떠나 키르기스스탄에 도착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7시간 반의 비행과 5시간의 이동 끝에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국경을 넘었다. 육로로 국경을 넘어가는 경험은 신기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쳤다. 출국과 입국 심사를 위해 지나가는 공간에서 심사원들은 낯선 타지인을 경계하며 매서운 눈빛을 쏘아붙이는 듯했다.
긴 이동시간의 피로를 풀어준 숙소를 떠나온 다음 날, 키르기스스탄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았다. 국민 80%가 이슬람교인 이곳에서 성탄절의 의미를 담은 크리스마스를 보내진 않지만, 화려한 네온사인과 트리, 각종 전구 장식이 가득했다. 도시 전체가 온통 축제 분위기다.
이곳에서 우리는 키르기스스탄 역사박물관에 들러 키르기스스탄의 과거부터 근현대사를 훑어보고, 광장 인근 있는 시장에도 들렀다. 시장에는 연말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각종 채소와 과일 등 먹거리, 손으로 직접 만든 모자나 신발 등을 잔뜩 쌓아두고 파는 모습은 여느 재래시장과 비슷한 풍경이다. 특히 저렴한 물가 덕분에 100솜(한화 1500원)이면 과일을 비닐 가득 담아갈 수 있어 쇼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밴을 타고 매일 다른 자연 속으로 여행... ‘낭만의 로드트립’
키르기스스탄 시내를 벗어나 본격적인 로드트립이 시작됐다. 현지에서 미리 준비된 밴 4대가 동시에 미지의 산으로 이동한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눈 덮인 산과 초원에는 말과 소, 양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있다. 이따금 말들은 새로운 장소로 이동해 풀을 뜯어 먹기 위해 도로를 건넜다. 아무도 내려서 이들을 내몰거나 쫓아내지 않고 천천히 건널 때까지 기다린다. 동물과 교감하며 사는 삶이다.
세 시간 남짓 눈길을 달려 춘쿨착 스키장 리조트에 다다른다. 해발 2000~3000m에 위치한 이곳에 오니 공기마저 탁 트여있다. 오두막으로 지어진 리조트는 따뜻한 연기를 내뿜고 있다. 어릴 적 할머니의 시골집이 생각나는 정겨움이 담겨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설산들이 숙소를 둘러쌌다. 산속에 있는 이 순간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을 든다. 게다가 날씨 운 마저 좋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덕분에 저 멀리 자리한 설산까지 한눈에 또렷하게 보였다.
짐을 풀고 점심을 먹기 위해 리조트 근처 전통 식당을 찾았다. 전통 모자인 깔빡을 쓰고 전통 옷을 입은 직원들이 우리를 안내해 준다. 처음 접해보는 말고기부터 각종 빵과 치즈, 피자, 샐러드는 하나같이 입맛에 잘 맞았다. 특히 직접 만든 치즈와 꿀은 이곳의 별미 중 하나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튀긴 담백한 빵과 우유로 만든 소스는 무한으로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벌집에서 방금 채취한 꿀에 신선한 치즈만 있어도 한 끼를 뚝딱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뒤늦게 가장 큰 백마에 몸을 싣는다. 가이드 손에 이끌려 말이 한발 한발 발을 내디딘다. 내가 너무 무겁지 않을까 긴장한 탓에 말 위에서도 삐걱삐걱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말을 달리게 하려 “츄츄~” 소리를 내본다. 불안한 마음에 고삐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땀이 쥐어진다. 굽이굽이 이어진 언덕길을 따라 말발굽 소리가 이어진다. 초원을 향해 말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내가 고른 말이 가장 크고 건강한 말이라 나와 함께한 말은 앞서가던 다른 말들을 제치고 선두까지 성큼성큼 달려갔다.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고 몸이 익숙해지자, 탁 트인 설원이 시야에 담긴다. 사람의 흔적 하나 남지 않은 깨끗한 눈길 위에 말의 발자국이 하나둘 찍힌다. 말이 한 걸음씩 발을 뗄 때마다 사각사각 눈이 밟히는 소리가 더해진다. 말의 숨소리와 말발굽 소리에 맞춰 호흡하다 보면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에 빠져든다. 고요한 초원에 나와 말의 숨소리만 울려 퍼진다.
말을 타고 언덕 끝 초원에 다다랐다. 일행 중 세 명은 말이 부족해서 언덕까지 걸어 내려왔다. 나와 두 명의 일행은 이들에게 말을 내어줬다. 우리는 다시 처음 말을 탄 언덕을 올라가는 대신 4km가량 떨어져 있는 리조트까지 걸어가는 것을 택했다.
숙소를 향해 걸으며 무릎까지 쌓인 눈 위에 누워도 보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흐트러트려 본다. 뽀얗게 눈 쌓인 초원을 보고 괜스레 이곳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성큼성큼 눈 위를 뛰어본다. 몇 걸음 뛰지도 않았는데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이럴 때면 이곳이 고산지대라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친다. 체력 탓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