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 녹음기 몰래 넣어 아동학대 신고…대법 "증거 능력 없어"

2024-01-11 11:31
교사에 벌금 500만원 선고 원심 파기 환송
"수업 중 발언, '공개되지 않은 대화' 해당"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설치돼 있는 '정의의 여신상' 모습. 2023.12.11[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학부모가 아동학대를 의심해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사의 말을 몰래 녹음한 것은 증거 능력이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18년 3월부터 5월까지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수업 시간 중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라고 말하는 등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러한 A씨의 행위는 피해 학생 학부모의 신고로 드러났다. 학부모는 자녀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수업 내용을 녹음했고, 이를 경찰에 증거로 제출했다. 

이번 사건은 학부모가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둬 A씨의 교실 내 발언 내용을 녹음한 녹음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통신비밀보호법 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 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4조는 "불법 검열에 의해 취득한 우편물이나 그 내용, 불법 감청에 의해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1심은 녹음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해 A씨에게 징역 6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수강도 명령했다. 

2심은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교사의 수업 내용은 공개된 대화에 해당하며 증거 수집의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이에 대해 "피해 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피고인의 수업 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한다"며 "이 녹음 파일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 능력이 부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사의 수업 시간 중 발언은 교실 내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서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다"라며 "대화 내용이 공적인 성격을 갖는지, 발언자가 공적 인물인지 등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 여부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파일의 증거 능력을 부정하는 원칙에 관해 예외가 인정된 바 없다"며 "교실 내 발언을 학생의 부모가 녹음한 경우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 녹음'에 해당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