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준의 투자노트] 증권사 보고서…믿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2024-01-10 06:00
투자자들이 증권사 리포트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애널리스트가 제시하는 투자의견일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애널리스트들이 논리적인 기업분석을 통해 매수, 매도, 보유라는 명확한 투자의견을 제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리포트를 보면 보통 투자의견이 매수(BUY)인 경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도(SELL) 의견을 제시하는 리포트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투자자가 아니라 리포트를 작성하는 애널리스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투자의견이 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9일 FN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발간된 882건 기업분석 리포트 가운데 투자의견 매도를 제시한 리포트는 단 6건(카카오뱅크,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 삼천리, 한화오션, 제주항공)뿐이었습니다. 투자의견 중립인 리포트는 39건,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리포트는 47건이었습니다.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는 리포트는 791건으로 전체 리포트 가운데 89.68%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매도 의견 내면 투자자 항의에 금감원 신고까지…'매도 보고서' 매도하는 사회
매도 보고서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애널리스트들이 해당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서 그렇습니다.만약 애널리스트가 해당 기업의 전망이 좋지 않으니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면, 그 기업이 애널리스트의 회사 출입을 막거나 정보를 주지 않기도 합니다. 때문에 매도 보고서를 낼 수 없습니다.
증권업계 특성상 중립 및 매도 의견을 내걸기 어렵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국내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증권사들의 주식·채권 발행, 인수·합병(M&A) 등 기업금융(IB) 부문 실적 중요성이 커졌는데, IB 사업 거래를 따내기 위해선 평소 기업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애널리스트 개인의 '신변 위협' 문제도 있습니다. 지난 11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IFC몰 앞에서 한 증권사 연구원과 '박지모'(박순혁을 지키는 모임) 카페 회원들 사이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박지모 회원들이 해당 연구원의 행로를 가로막고, 그의 가방을 붙잡고 항의했습니다. 이차전지 대표주인 에코프로에 대해 매도 리포트를 작성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연구원은 지난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조사를 받았습니다. 강성 주주들이 김 연구원이 공매도 세력과 결탁한다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했기 때문입니다.
목표주가 하향이 매도 의견?…금융당국, 애널리스트 보호장치 시급
이처럼 사안이 심각해지자, 금융당국은 매수 일색인 증권사 애널리스트 리포트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증권사 리포트 관행을 개선하겠다며 테스크포스(TF)를 꾸려 방안 모색에 나서고 있습니다. 매도 리포트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그러나 애널리스트가 리포트 매도 의견을 표명하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이랑 우호적인 관계가 끊기며, 개인투자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며 "사안이 심각할 경우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조사를 받을 수 있는데 금융당국은 매도보고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동상이몽이 아니냐"며 반문했습니다.
증권업계에서는 투자자들이 기업분석 리포트를 검토하는 단계에서 투자의견을 참고하되 목표주가에 더 중점을 둘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애널리스트 관계자는 "애널리스트 입장에서 투자의견 매도를 제시하면 손해가 크다"며 "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할 때가 있다. 목표주가 하향이 매도 의견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882건 기업분석 리포트 가운데 목표주가 하향 조정한 기업은 124곳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기간 목표주가 상향한 기업 85곳보다 39건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목표주가를 유지(535곳)한 것은 분명한 한계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