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먼 신종증권] 첫발 떼는 토큰증권 기반 조각투자, 대중화 향한 '가시밭길'

2024-01-08 05:00

[편집자 주]
금융당국의 제도권 포용과 민간의 사업화 노력으로 조각투자 수단인 ‘토큰증권’이 법적·사업적 실체를 얻고 있다. 정부는 미술품, 한우, 부동산, 음원저작권 등 다양한 기초자산 활용 증권에 ‘신종증권’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했고, 그 발행과 유통을 일부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각투자 시장이 성장하려면 갈 길이 멀다. 당국의 혁신금융서비스로 인정받아 엄격한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을 일부 우회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현행 법령이 개정돼야 한다. 일부 토큰증권 관련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후 정부가 약속한 관련 법령의 정비가 늦춰지면서 산업계에 부담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아주경제는 3회에 걸쳐 당국의 정책적 지향점, 업계의 화두와 과제를 제시한다.


여러 사람이 십시일반으로 고가의 부동산·음악저작권·미술품·한우에 투자하는 ‘조각투자’ 서비스 업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제도권이 인정하는 틀 안에서 올해 초부터 투자자를 유치하고 실제 사업에 돌입하기 위해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10여 개 민간 조각투자 업체들이 금융당국에 지정된 혁신금융서비스를 추진하거나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각종 기초자산에 대한 조각투자 신사업을 추진 중이다. 조각투자용 신종증권 등록과 유통을 돕는 한국거래소 장내 시장이 상반기 열릴 것으로 예고됐지만 제도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업계 목소리가 장차 업체들이 걷게 될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에선 금융당국이 인정하는 ‘신종증권’ 개념에 맞춰 상품을 설계하고 증권을 발행하고 투자자를 모집해야 합법적 조각투자로 간주된다. 한우와 미술품 조각투자 서비스는 금융당국의 ‘신종증권 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에 따라 ‘투자계약증권’이라는 신종증권으로 분류된다. 투자계약증권은 사업자들이 계약상 공동사업의 수익권이나 청구권을 기초 자산으로 삼고 투자자는 그 사업의 이익·권리를 나눠 갖게 한다.

농가가 공급하는 한우를 기초 자산 삼아 조각 투자자와 연결하는 ‘뱅카우’의 운영사 스탁키퍼는 작년 12월 29일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하기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신고서는 서비스에 참여하는 한우 농가와 기초자산인 송아지의 가치 평가액, 규모,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투자계약증권 발행 수량, 액면가, 모집 금액 등을 밝히고 있다. 정정 사유가 없다면 이 증권신고서 효력은 오는 23일 발생한다.

미술품 조각 투자 서비스 ‘아트앤가이드’ 운영사인 열매컴퍼니는 이미 지난달 중순 증권신고서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트투게더’ 운영사인 투게더아트, ‘소투’ 운영사인 서울옥션블루는 작년 말 제출한 증권신고서 효력이 1월 중순부터 발생한다. 또 다른 업체인 테사는 증권신고서 제출을 위해 기초자산이 될 미술품 선정에 집중하고 있다.

◆ 두 가지 ‘신종증권’ 특성 다르지만 사업자 규제 부담·불확실성 요소 크긴 마찬가지

현행법상 투자계약증권으로 실행되는 조각투자는 증권을 발행하고 투자자가 수익을 거두기까지 조각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우나 미술품 등 실물 상품을 자산으로 하는 투자계약증권은 공증과 같은 번거로운 절차 없이는 제삼자에게 소유관계를 명확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양도에 제한이 걸려 있어 발행만 가능하고 투자자 간 유통(매매)할 길이 막혀 있는 셈이다.

기초자산의 소유권 이전을 법적으로 증빙할 수 있는 신종증권 유형은 ‘비금전신탁수익증권’이다. 소유권 이전 증빙이 가능하고 이에 따라 투자자 간 유통 가능성도 열려 있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민간 업체의 조각투자 서비스 5가지는 모두 비금전신탁수익증권이다. 자체 유통(장외 거래) 방식으로 사업할 수 있지만 모든 리스크를 업체 스스로 해소하기 어려운 점은 투자계약증권과 마찬가지다.

한국거래소는 “법령 개정 전까지는 특정 증권사(계좌관리기관)에 증권등록을 연동해 장부에 관리하는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거래 매매는 '사업자별 자체 진입·퇴출 요건을 마련할 것'과 시장 감시 관점에서 '사업자별 자체 이상거래를 적출'하는 방식을 안내한다. 업체가 이를 시도하긴 쉽지 않다.

◆ 높은 접근성, 까다로운 상장 요건···한국거래소 ‘신종증권 장내 시장’ 둘러싼 기대와 우려

조각투자 플랫폼 업체가 한국거래소 신종증권 장내 시장에 조각투자 상품을 상장하려면 그에 맞게 증권 발행인의 자격과 신뢰도를 검증받고, 상품 구조를 재설계하고, 종목을 표준화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블록체인 분산원장 거래 방식을 쓸 수 없게 되고, 초기 기업 치고는 재무 건전성이 높아야 하며, 상장할 증권 수량은 적어도 10만좌 이상으로 대규모 투자자 접근에 알맞은 종목이어야 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등록하고 신종증권 장내 시장에 상장한 신종증권은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에 이상거래 감시를 받게 된다. 기존 증권사 계좌를 보유한 일반 투자자들에게 다른 상장사 주식처럼 거래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다. 조각투자 상품과 플랫폼 자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일반인,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까지 모집할 수 있다.

당국은 작년 상반기에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국회엔 하반기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발의·제출됐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이 법 개정안은 일러야 올 상반기 통과, 늦으면 하반기 통과해 올해 말이나 2025년께나 돼야 예비 시행된다. 개정안 자체가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픽=허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