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명성] "봉골레 파스타 하나·행복하자"...일찍 져버린 ★ '나의 아저씨' 이선균

2023-12-28 12:04
향년 48세의 나이로 사망한 이선균
'하얀거탑'으로 보여준 존재감
자신의 시그니처가 된 '파스타'
'나의 아저씨'로 '국민 멘토'로 거듭나다
전성시대를 열어준 '기생충'

'기생충'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이선균 [사진='기생충' 스틸컷', 슬라이드 포토='하얀거탑'·'파스타'·'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기생충' 스틸컷, 아이유 SNS]

연예인들은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통해 자신을 각인시켜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톱스타는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남기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주경제는 이들이 명장면과 명대사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또 어떤 비하인드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걸어온 연예계 생활의 발자취를 되돌아봅니다.-by건희-

배우 이선균이 지난 27일 향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선균의 사망에 연예계는 충격에 빠졌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로 대중에게 사랑받던 그와의 갑작스러운 작별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선균의 사망에 동료 연예인들은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배우 조진웅은 깊은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했고, 유재명, 김성철, 설경구, 조정석, 정우성, 하정우, 이정재, 전도연, 류준열, 임시완 등도 조문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도 이선균을 향한 애도의 글이 올라왔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박호산은 "나에게는 선균이보단 동훈('나의 아저씨' 속 이선균 배역)이었던 선균아. 동훈아 내 동생아. 네가 뭘 했던 난 정말 널 믿어"라며 "이따가 말 못하더라도 이 말 가지고 가. '난 널 아는 우리 모두는 정말로 정말로 널 믿어'"라고 추모했다. 박호산에게 있어 이선균은 영원한 '나의 아저씨' 속 동생으로 남은 것이다. 이외에도 배우 문정희, 가수 보아, 김송, 윤택 등이 SNS를 통해 이선균을 애도했다.
 
한예종 1기 출신, 연기에 진심이었던 이선균

이선균은 연기로 유명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1994년 1기로 입학하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 한예종이 처음 설립될 당시에는 크게 유명한 학교는 아니었지만, 배우 장동건이 1기로 입학하며 '장동건 학교'로도 불리며 이름을 알렸다. 한예종 1기 출신으로는 배우 오만석, 장혜진, 진경, 문정희 등이 있으며 19대와 20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오신환도 있다.

이선균은 한예종 졸업 후에도 한동안 배역에 캐스팅되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TV에 모습을 비춘 시점은 2001년 MBC 시트콤 '연인들'이었다. 이선균이 맡은 배역은 백수 신분이었는데, 훗날 이선균은 "촬영 당시 백수였던 나와 닮아서 연기가 수월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연인들' 출연은 이선균에게 독이 되기도 했다. 코믹 연기로 캐스팅에 제한이 있었던 것. 그럼에도 이선균은 포기하지 않고 단막극 등을 통해 자신이 진중한 연기도 가능한 배우임을 입증해냈다.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 이선균에게도 찾아온다. 현재까지도 최고의 '의학 드라마' 중 하나로 손꼽히는 2007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하얀거탑'에 캐스팅되면서 그의 연기 인생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어디서든 넌 존재만으로도 충분해"
김명민을 향해 "어디서든 넌 존재만으로도 충분해"라고 외치는 이선균. [영상=MBC '하얀거탑']

이선균이 '하얀거탑'에서 맡은 배역은 장준혁 역의 김명민과 대립하는 최도영이었다. 최도영은 장준혁과 친구 사이면서도, 서로 다른 소신으로 대립하는 인물이다. 

최도영은 의사 집안의 자제로 의사로서의 소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흙수저' 출신으로 권력을 좇으며 점차 괴물로 변해가는 장준혁과는 대척점에 있었다.

그러나 최도영은 장준혁을 누구보다 인정하기도 했다. 자신이 아끼는 환자의 수술을 간절히 부탁할 정도였다. 장준혁은 친구 사이였던 최도영의 부탁에 "수술할게. 단 종양이 확실하게 줄어들면"이라며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그동안의 갈등을 매듭짓고 다시금 진정한 친구 사이로 거듭났다. 장준혁이 "가는 길은 다르지만 우리 같이 가자. 끝까지 가보자"라는 말에 최도영은 "장준혁이잖아. 어디서든 넌 존재만으로도 충분해"라고 말하는 장면은 '하얀거탑' 속 끊임없이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이는 누군가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거나, 인생을 살아가기 힘들 때 곱씹어볼 수 있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이선균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는 시청자들에게 한 편의 위로를 선사했다.
 
"봉골레 파스타 하나"
'파스타' 속 주문서를 읽는 이선균. 이 과정에서 "봉골레 파스타"라는 대사가 유행을 탔다.  [영상=MBC '파스타']


이선균은 '하얀거탑'을 기점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2007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2010년 '파스타'가 대히트를 치며 '믿고 보는 배우'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특히 '파스타' 속 이선균은 사실상 '대체불가' 배우였다. 이선균은 '파스타'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스페라'의 까칠한 주방장 최현욱 역으로 분했다. 최현욱은 이탈리아 현지에서 요리를 배운, 누구보다 요리사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최현욱은 '내 주방에서 여자 요리사는 없다', '내 주방에서 연애는 있을 수 없다', '내 주방에서 2명의 셰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유경(공효진 분)을 매몰차게 몰아붙이며, 자신의 주방에서 나가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최현욱은 서유경의 색다른 모습에 반하게 되고, 그와 연애를 결심하며, 자신이 세웠던 원칙을 모두 깨뜨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선균은 또 하나의 명대사를 만들어낸다. "봉골레 파스타 하나"다. 단순히 주문서를 읽는 장면이지만, 이선균이 했기에 남달랐다. 이선균의 시그니처인 중저음 목소리가 합쳐지며, 시청자들의 마음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는 훗날 많은 연예인들이 이선균의 성대모사를 할 때 단골 소재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선균은 주로 "봉골레 하나"라고 말했지만, 성대모사가 이어지며 "봉골레 파스타 하나"라는 말로 굳어졌다.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명짤'을 탄생시킨 '나의 아저씨' 속 아이유에게 맥주를 따라주는 이선균. [영상=tvN '나의 아저씨']

이선균은 드라마 '골든타임', '미스코리아' 등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지속했다. 그리고 2018년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선균은 극 중 건축구조기술사 박동훈 부장으로 변신했다. 박동훈은 우리 사이 힘들게 살아가는 직장인의 표본이다. 어찌 보면 '짠내'가 풀풀 풍기는 인물이다. 사랑하는 아내(이지아 분)는 불륜을 저지르고 믿었던 이지안(아이유 분)에게 배신까지 당했다.

그럼에도 박동훈은 이지안을 용서하고, 그가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이지안이 숨기고 있던 과거를 털어놓자 박동훈은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라며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라면서 위로를 건넨다.

그러면서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름대로 살아. 좋은 이름 두고 왜"라고 말한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또 '나의 아저씨' 마지막화에서 박동훈은 이지안의 "아저씨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했어요"라는 말에 "이제 진짜 행복하자"라는 대답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뿐만 아니라 이선균이 만들어낸 명짤도 있다. 바로 맥주신이었다. 당시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맥주를 따라줬는데, 맥주잔에는 거품이 반 이상을 채울 정도로 풍성했다. 그러나 자신의 잔에는 맥주잔을 기울여 따라 유튜브를 중심으로 '사실 박동훈이 이지안을 싫어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며 인기를 얻었다.

향후 아이유는 이선균과 함께 '나의 아저씨' 속 거품 맥주를 패러디하며 큰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또 아이유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드림'(감독 이병헌) VIP 시사회에 이선균이 참석했다며 "이선균 선배가 '지은아, 그거 할까'라면서 직접 따라주셨다. 맥주 거품이 우연으로 얻어 걸린 잔이라 생각했는데, '선배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저렇게 따를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냄새가 선을 넘지"
영화 '기생충'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인 이선균이 자동차 안에 있는 모습.  [영상=유튜브 'CJ ENM MOVIE']

이선균의 전성시대가 찾아온다. 2019년 1031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통해 '천만 배우'에 등극한 것이다. 또한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며 월드 스타로 거듭났다.

'기생충'에서 이선균은 박 사장(박동익) 역을 맡았다. 박 사장의 명대사는 "아무튼 그 양반 전반적으로 행동이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도 결국엔 절대 선을 안 넘거든. 그건 좋아 인정"이라며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냄새가. 차 뒤쪽으로 X나게 넘어와 냄새가. 지하철 타는 사람들 특유의 냄새가 있거든"이라는 말이다.

이는 박 사장의 운전기사로 채용된 김기택(송강호 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상류층과 하층민의 계급 간 차이를 나타내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생충'은 '돈'을 무기로 인간을 계급화한 사회를 풍자한 작품이다. 이선균이 맡은 박동익은 상류층 인물로, 사람을 냄새와 선으로 구분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에 대해 이선균은 영화 인터뷰를 통해 "선을 넘는 것은 박 사장뿐 아니라 모든 인물이 싫어하는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어 "선은 자기방어막이자 자존감이다. 우리가 계급 사회에 살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선들이 존재한다. 그걸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면서 "박 사장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도 무언가를 정해보며 살지 않았나 돌아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이선균의 유작은 영화 '탈출:PROJECT SILENCE'와 '행복의 나라'가 될 전망이다. 이를 끝으로 그가 연기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있다. 하늘에서만큼은 박동훈 부장처럼 행복하기를.

◇이선균 필모그래피

△데뷔-가수 비쥬 '괜찮아' 뮤직비디오

△주요 출연작

2001년 MBC 시트콤 '연인들'
2007년 MBC 드라마 '하얀거탑'
2007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2010년 MBC 드라마 '파스타
2010년 영화 '쩨쩨한 로맨스'
2012년 MBC 드라마 '골든타임'
2012년 영화 '화차'
2012년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년 MBC 드라마 '미스코리아'
2014년 영화 '끝까지 간다'
2018년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2019년 JTBC 드라마 '검사내전'
2019년 영화 '기생충'
2022년 영화 '킹메이커'
2023년 영화 '잠'
2023년 SBS 드라마 '법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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