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7단계 변화로 바라본 中 개혁개방 45년

2023-12-21 09:33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용인대 중국학과]



최근 들어 중국 개혁개방 45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전시회 및 공연들이 진행되고 있고, 언론매체는 지난 45년의 성과와 변화를 소개하는 뉴스와 관련 방송을 방영하고 있다. 12월 18일은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날로 중국 경제성장의 첫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1978년 12월 18-22일 제11차 3중전회를 통해 중국 개혁개방정책이 확정되었고, 그로부터 45년간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있어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개혁개방은 1978년 이전까지의 이데올로기 논쟁보다는 경제건설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발전과 미래성장에 바탕을 두고 빠르게 진화했다. 1978년 개혁개방정책은 그해 5월 광명일보에 게재된 ‘실천이 진리검증의 유일한 표준’ 이라는 논쟁을 두고 공산당 내부 범시파(凡是派)와 실천파(實踐派)의 양대 진영간 토론의 결과물이었다. 범시파는 당시 마오쩌둥의 말은 모두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덩샤오핑 정책에 반대한 정치그룹이었고, 실천파는 마오쩌둥의 권위보다 직접적인 실천을 통해 진리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는 덩샤오핑 그룹이었다. 이를 통해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가 공산당 내부에서 본격화되었고, 결국 1978년 12월 개혁개방정책이 공식적인 국가 거버넌스와 경제발전의 핵심사상으로 자리잡았다.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1978년 중국 GDP가 3645억 위안(세계 GDP 비중 1.8%)에서 2022년 121조 위안(세계 GDP 비중 15.2%)으로 연평균 9%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1인당 GDP도 약 30배 정도 증가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지난 45년간 대내개혁과 대외개방이라는 명분 아래 총 7단계에 걸쳐 발전해 왔다. 1단계(1979~1982년)는 계획경제하에서 시장조절 기능을 확대하는 기간으로 중국경제체제 개혁의 서막을 알리는 단계였다. 토지 소유권은 집단에 있고, 경영권은 개인이 갖는 농가생산책임제(包产到户, 1979년), 향진기업(1978년), 조정·개혁·정돈·발전의 新팔자방침(1979년, 八字方针), 선부론, 4대 경제특구(1980년) 등 다양한 개혁개방 조치가 등장했다. 1979년 창홍전자가 일본 파나소닉의 생산라인을 도입해 첫 흑백TV를 생산했고, 코카콜라가 외국기업 최초로 1981년 베이징에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1980년 12월에는 중국 최초의 개체공상호(개인 사업자) 영업집조가 발급되는 등 시장경제 주체를 인정하는 단계였다.
2단계(1983~1986년)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전환을 통한 실천 개혁을 시도하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공존하는 초기단계였다. 민영경제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시기로 1983년부터 중국은 생산량의 10%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지도가격과 시장가격이 함께 통용되는 '이중가격제도(价格双轨制)'를 시행했다. 소니의 대형 옥외광고가 베이징에 처음 등장했고,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 사상이 1986년 1월 미국 타임지에 소개되면서 미국·일본 등 외국기업들의 중국투자가 점차 확대되는 시기였다.
3단계(1987~1991년)는 국가가 시장을 조율하고, 시장이 기업을 유도하는 단계로 계획과 시장경제 공존의 심화단계였다. 소유권과 경영권의 분리원칙에 따라 민영기업이 빠르게 확산되는 시기로 국가가 법적 강제력을 가지고 기업경영 전 과정을 장악했던 지령성(指令性) 계획을 줄여나갔다. 당시 국가지령성 계획제품의 경우 1984년 123개 품종에서 1988년 50개 품종으로 축소되었고, 같은 기간 국무원 각 산하 국유 지령성 계획 제품의 수가 1900여 종에서 380종으로 축소되었다. 유통영역에서도 1990년에는 시장가격 비중이 75%까지 확대되며 시장경제 체제전환이 가속화 되었다. 또한, 1984년 주식제 개혁이 본격화되면서 최초의 중국 주식회사인 베이징텐치아오(天桥)백화점이 생겨났고, 1990년 12월 상하이 증권거래소가 정식 오픈되었다. 한편, 1988년 중국 하이테크산업발전을 위한 화거계획(火炬计划) 정책과 중국 최초의 베이징 하이테크산업개발구가 설립되면서 하이테크산업 열풍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4단계(1992~2002년)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가 구체화되는 시기로 2001년 11월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과 함께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단계였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를 통해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념과 발전 방향을 공식화했던 시기였다. 1995년 큰 국영기업은 잡고, 작은 국영기업은 민영화시키는 이른바, ’조대방소(抓大放小)‘ 전략을 발표하며 국유기업 개혁작업이 시작되었다. 97년 아시아금융위기로 국유기업의 부채문제가 대두되자 국유기업개혁과 구조조정, 민영화가 본격화되었다. 1997년 이후 국유기업 개혁이 주식제로 전환되면서 국유기업 수도 줄기 시작했다. 2002~2007년 사이 매년 1만개 정도의 국유기업이 줄어든 반면 민영화된 국유기업들의 매출액은 증가했다. 나아가 WTO 가입을 통해 수출주도형 국가로 전환하며 압축경제성장을 한 시기였다.
5단계(2003~2012년)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건설이 확립되는 시기로 노동계약법(2007년)·물권법(2007년)·파산법(2007년)·반독점범(2008년)의 다양한 시장경제 법규들이 제정되면서 2010년 일본을 제치고 G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또한 연해지역 중심의 선부론에서 중서부 내륙지역으로 확대되는 지역균형 발전전략의 시기로 4세대 지도부인 후진타오의 조화로운 사회발전이 개혁개방의 핵심방향이었다. 2000년부터 시작된 서부대개발 전략이 구체화되면서 서부대개발 11.5규획(2006년), 중부궐기 촉진규획(2009년), 동북 노후공업기지 개조진흥전략(2003년) 등 다양한 지역균형 발전전략이 발표되었다.
6단계(2013~2019년)는 산업고도화를 통한 경제체질 변화와 함께 시진핑의 중국몽과 궤를 같이하며 글로벌 외연확장을 본격적으로 한 시기다. 일대일로(2013년), 중국제조 2025(2015년)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동남아·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중동국가로의 국가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다. 마지막 7단계(2020년~현재)는 대내외적 요인과 환경변화로 인해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며, 성장동력이 점차 위축되고 있는 시기이다. 미·중 충돌과 제로 코로나정책, 테크기업 규제, 공동부유론이 가시화되면서 시장 주체의 정부에 대한 불신·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시장의 역동성과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미국의 대중국 제재확대와 반간첩법 시행으로 인해 외국기업의 대중국 투자규모도 점차 하락하고 있다. 정부의 고품질 대외개방 약속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신뢰도가 점차 하락되면서 경제하방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중국정부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면 할수록 향후 어떠한 개혁개방 정책을 쓰더라도 대내외적으로 믿지 않는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에 빠질 수도 있다. 덩샤오핑의 실천주의 개혁개방 사상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다. 중국 개혁개방 45주년이 개혁개방 2.0 시대를 맞이하는 새로운 변곡점이 될지 지켜봐야 한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학교 방문학자와 함께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 중에 있다.